나에게 겨울은 집에서 고구마라떼를 해 먹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벌써 두 번의 고구마라떼를 해먹었으니 이미 나의 집(마음)은 겨울이다. 물론, 나는 아직 반팔옷을 입고 다니고 일할 때 옷이 젖을 정도로 더위를 느끼고 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밤고구마를 좋아한다. 밤처럼 타박타박한 목이 메이는 고구마를 목을 메이며 탁탁 끊어 입에서 부셔 먹는 걸 좋아한다. 그런 고구마는 남는게 없어서 라떼를 해먹을 것도 없지만, 걔중에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남아 라떼로 변신한다. 밤고구마만큼이나 라떼를 좋아해서 한냄비 끓여놓고 따끈하게 먹고 남으면 냉장고 두었다가 데워서 먹는다. 단고구마 보다 밤고구마가 훨씬 고소하다. 심심할 땐 후두둑 많은 잣을 띄운다.
절임배추와 부재료를 예약했다. 김장날짜를 정하고 나니 이렇게 한해가 빠르다니 다행이다 싶다가도 현실의 위기에 현타가 와서 마음이 급 불안해진다. 오늘은 퇴근이 좀 늦었다. 후두둑 날아가는 기운을 붙잡는다. 이럴수록 더 필요한건 나의 공간이다. 이제 우리집 거실은 차가워질 것이다. 나는 방에 머물 시간이 더 길어지겠지. 그동안 방에 책걸상이 없어 내내 아쉬웠다. 주로 거실에서 앉아서 뭘 해야할 때가 많았는데 거실에는 t가 머물 때가 많아 나가기가 싫었다. 내 방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사치는 어렵고 어쩌나 고민스러웠는데, 오늘 아침 묘안이 ‘둥’ 떠오른게 아닌가. 거실에 있는 k의 1인용 작은 책상을 방으로 옮기자고 생각한 것이다. 방이 워낙 좁고 방학이면 k도 함께 자야해서 복잡한 방에 뭘하나 들일 생각은 꿈도 못꿨는데, 공간이 없으면 그냥 낑겨 살아야지 뭐 싶었다. 발에 치이더라도 발을 구부리더라도 그렇게 해야겠다 싶었다. 안된다고 아예 생각을 못한 것도 이렇게 바뀌는건 한순간이다.
m을 불렀다. 책상 위의 물건을 치우고 들어서 날라달라고 했다. 네모난 좁은 방에 이삿짐을 밀어넣고 쌓듯 인테리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위치에 책상을 놓았다. 작은 의자 하나도 놓았다. 등받침이 없는 의자였지만, 독특한 구조로 엉덩이가 안전하게 받쳐지는 편안한 의자였다. 깔려진 요의 위치를 바꿨다. 세사람이 더더욱 붙어 누워야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앉아서 뭘할 수 있는 따뜻한 장소를 얻었다. 좀 더 추워지면 건식족욕기를 책상 아래로 옮기기만 하면 된다. 완벽하다.
구들장이 있는 방에 땔감을 그득히 쌓은 것 마냥 든든하다. 지금 나의 책상 위에는 방안에 널부러져 있던 색연필, 물통, 필통, 손수건, 책, 드로잉북, 물감, 노트북가방 등이 올라와 있다. 작은 정사각형 책상위에 이 많은 것이 올라와 있을 수 있다니 그러고도 이렇게 편안하게 앉아 글을 쓸 수가 있다니. 거실에 나가 앉기가 싫어 주로 폰으로 글을 써왔다. 최근에 노트북으로 쓰는 첫글인 듯 싶다. 늦은 저녁에 큰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