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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낙타 Dec 17. 2021

책 읽고 오열한 이야기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빠르게 포기하고 체념하는게 사는 법이라고 가르쳤다. 삶에 무언가를 기대한다고? 그건 사치이기 전에 위험한 일이었다.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어?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거지? 같은 의문의 싹을 다 뽑아버리라는 말이었다. ....(중략)..그런 질문을 하는 대신에 이렇게 생각하라고 했다.....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중략)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 <밝은밤> 중 페이지모름.



정다운 관계를 그리워했다. 그러기 이전에 (내가 맺고 있는 관계가)그렇다고 믿었다. 내가 그렇고 너가 그렇고 우리가 그렇다고 말이다. 그런 사이에서 의심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했다. 의심을 하는 내가 문제인 것이다. 나는 무슨 문제일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왜 이런 걸까. 끝없는 죄책감과 질문을 거듭했다. 지금도 간간히 불쑥 불쑥 올라오는 죄책감의 끝자락들이 있다. 그것은 이제 내가 눌러버릴 무엇이 아니다. ‘아, 너니? 너구나?’ 반가워해야할 무엇이다. 아주 오랫동안 나와 함께 살아왔으니 말이다. 내가 너인지, 너가 나인지 모르게 말이다. 그래, 그렇게 가끔 얼굴이나 보여주렴.


소설을 읽다가 오열을 했는데, ‘나 왜 이러지. 뭐하는거야’ 싶었다. ‘나 왜 이렇게 오열을 한거야 이 소설에 대해 글을 써야겠어’ 했다. 더 울고 싶었는데 아쉽다. 옆에 k가 없었다면 그냥 마음껏 더 소리내어 시원히 울었을텐데 말이다. 이렇게 아직 난 많이 자유롭지 못하다. 슬픈 울음도 아니었고, 기쁜 울음도 아니었고, 뜨거운 울음이었다. 뜨겁게 데워지는 것. 나의 가슴이 오랜만에 그렇게 데워졌다. k는 옆에 있었지만 한참을 없는 듯 있다가 아주 나중에서야 그 자리 그대로 앉아 말했다. 그것도 시큰둥하게. 우리 사이에 늘 하는 행동처럼.  “뭔데? 뭔데 그렇게 오열하는거야?”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물어줘서 고마웠다. 이유를 모르는 대화는 그냥 그렇게 끊어졌다.


나는 그리움의 대목(물론, 이 소설에서 뭔 그런 대목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그냥 그렇게 이름 지었다.)에서 그렇게 눈물이 났다.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 사랑. 다시 그리움. 사랑.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상대에 대한 한마디 한마디 마음 씀씀이와 누군가를 부르는 말투 하나 하나에 저렸다. 가슴이 뜨거워 졌다. 용암이 흐르듯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뜨거움이 눈물로 차올랐다. 나로서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느끼며 살아야할 것을 책으로 대체하며 감동하는 모양새라고나 할까. 나의 오열에 대한 정리는 그러했다.


서로를 부르는 **야~ 라는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저렸는데. 그 대목을 옮기자니 소설을 모두 끌어와야할 것 같았다. 그래서, 글의 시작에서 내가 택한 대목은 소설 속의 말하는 이의 말이다. 의문의 싹을 뽑아버리라는 말, 체념하라는 무언의 압력 속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나. 증조모의 재능을 모조리 이어받은 사람.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재능, 부당한 일은 부당한 일로, 슬픈 일은 슬픈 일로, 외로운 마음은 외로운 마음으로 느끼는 재능’ 소설 속에는 그녀들의 사랑이 ‘근심에서 자랐’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 부분 또한 마음이 저리며 동의가 되었다. 사랑이란 게 그냥 그렇게 달콤한 것만아니었지. 걱정하는 마음 씀씀이, 두려워하는 마음 씀씀이, 그 사이에 힘겹게 두렵게 나도 모르게 들어선게 사랑이었지. 그래, 그랬구나. 그렇게 나도 모르게 후루룩 마지막장을 넘겼다.


다음 금도깨비 모임 책이라 내용을 아껴가며 잡다한 나의 기분을 중심으로 적어보았다. 마지막은 소설 속 말하는 이가 시작하는 즈음의 말을 옮겨본다. 많은 이가 공감할 대목이 아닐까 해서.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 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밝은 밤> 패이지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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