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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Oct 06. 2023

병가 중에 깨달은 삶의 진실

나를 지지해 줄 온전한 사랑의 힘. 

병가를 내고 평상 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단촐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처음에는 무슨 약을 써야 하나, 어떤 주사를 맞아야 하나, 어떤 단기적이고 획기적인 치료가 필요할까 궁리를 했다. 그리고 며칠은 다니던 내과에 가서 1일 1링겔을 맞기도 했다. 이 정도면 거의 입원할 지경이니, 신체가 허약한 병자 모드로 미약한 일상을 어떻게 보내야하나 걱정이 태산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파트 단지 산책하는 게 유일한 운동이었으니, 넓은 공원에 가서 산책하는 것도 엄두가 안 날 만큼 체력이 안 좋아져 있었다.

기계에 비유하자면, 방전이 되기 직전까지 내 몸을 방치한 것이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내 몸에 기력이 딸려 일상적인 신체 활동이 어려울 만큼 급했던 것들은 무엇인가?


사실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나의 건강이고, 건강이 무너졌을 때 그 누구도 나를 치유해줄 수 없다. 씁쓸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직장 동료의 위로들은 겉보기식 걱정이나 단편적인 위문에 지나지 않더라. 심지어, 동료가 자살한 경우도 있었지만, 충격적인 그 일이 있고난 뒤, 며칠, 혹은 몇 주, 몇 달이 지나자 아무도 그 일을 입에 올리지도 않았고 그저 잊혀진 해프닝이 될 뿐이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병가로 집에 머물게 된 이후로 좋아진 것은, 아이를 전적으로 케어할 수 있다는 안정감이다. 

이전처럼 의무적으로 아이를 학교에 대충 등교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 아이의 속도에 맞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준비해준다.

연필도 깎아주고, 준비물이나 시간표도 체크해주고, 하교하면 무얼 함께 할지 고민하게 된다.

올해 들어 거의 처음으로 아이가 책가방을 메고 학교까지 걸어가는 것을 지켜봤다.

아홉살,, 아직 너무 어린 나이임에도 남들보다 일찍 철이 들어 투정도 없이 

시간개념 철저히 지켜 씩씩하게 혼자 등교하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고 안쓰럽다. 

세상에, 아직도 엄마 손을 잡고 등교하는 아이들도 많던데, 어쩜 저리 자립적인지.


아이를 보내고 조용한 집안에서 쇼파에 앉아 커피나 밀크티를 마신다. 

좋아하는 디즈니 음악을 연주한 피아노 오케스트라도 듣고, 가을에 어울리는 부드러운 팝송도 들어본다.

때로는 아무 소리 없이, 정적을 반주삼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집은 일 층인데, 창밖의 나무들이 하루가 다르게 물들어가고, 가을이 깊어감을 관찰할 수 있다.

그렇게 자연을 벗삼아 생각에 잠기는 오전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한가롭게,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멍하니 뇌를 비우다보면

과거의 일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를 병들게 했던 일들도 떠오른다. 

내가 챙겨주지 못했던 사람들도 떠오르고, 나를 도와줬던 사람들도 떠오른다. 

그러다가 문득 예전에 이모가 나에게 해주셨던 말이 떠올랐다.


"괜찮아. 네가 믿을 사람, 온전한 네 사람 한 명만 있어도 살아진다." 


온전히 믿을 사람. 

아마도 가족이거나 사랑하는 사람이겠지.

그도 아니면 나를 지지했던 은사님이거나, 피붙이보다 가까운 친구이거나.


누가됐든, 

병이 들어 나약해진 상황에서도 나를 지지하고 믿어줄, 내가 믿고 따를 수 있는 한 사람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런 사람이 바로 절대적으로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겠지.

자신이 어떤 힘들고 무기력하고, 병약해진 상황에 처해있더하더라도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과 믿음과 사랑을 줄 고마운 인연.


그런 인연을 줄 수 있는 몇몇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오히려 몸이 아프고, 직업 전선에서 물러나 쉬고 있으니

인생의 본질적인 것들을 더 잘 알게됐다.

삶의 진실은 이렇게 다가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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