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서투른 창작의 시간들
수필을 이론으로 가르칠 때는 몰랐다.
자유롭게 붓가는 대로, 키보드로 누르는 대로 쓴 글들이
하나 둘 모여 인생이라는 큰 그림을 채우는 하나의 조각이 된다는 걸.
그 삶의 퍼즐 조각조각들을 나누어 읽고 공감하다 보면
서로의 삶을 이해하며, 스며들게 된다는 것을.
누구나 '작가님'이 될 수 있다. 누구나 '수필가'가 될 수 있다.
자기만의 소중한 경험이 한 편의 글로 세상에 드러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글을 통해 작가님들의 삶에 벤 향기를 맡는다.
그리고 글로 적힌 텍스트는 활자로 남아 오래오래 누군가에 의해 읽힘을 통해,
읽는 이의 삶의 여백을 채우고, 여운을 주는 '인간미'를 알게 한다.
수필(隨筆)은 청자연적(靑瓷硯滴)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淸楚)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女人)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平坦)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포도(鋪道)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住宅街)에 있다. 수필은 청춘(靑春)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中年)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情熱)이나 심오한 지성(知性)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隨筆家)가 쓴 단순한 글이다.
청자연적과 같이 맑고 청초하고 단순한 글.
화려하지 않고, 담백해서 더 사람냄새 풀풀 풍기는 우리네 일상의 글.
어딘가 극적이지도 않고, 주인공이 완벽하지도 않지만
그래서 더 친구 같고 익숙한 글들.
요시다 겐코라는 작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렇다 할 일도 없이 지루하고 심심하여, 하루 종일 벼루를 붙잡고, 마음속에 오가는 부질없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쓰노라니, 이상하게도 기운이 복받쳐 나도 모르게 미칠 것만 같구나.
할 일도 없고, 사는 게 매일매일 똑같고 지루해서 견딜 수 없을 때,
무언가 할 말은 많은데 내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가 없을 때,
어딘가 비밀스럽게 털어놓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너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기억으로 봉인하고 싶을 때,
감사하고 짠한 마음을 정성스레 전달하고 싶을 때,
일상의 잔잔한 평화를 함께 나누고 싶을 때...
그 모든 순간들을, 소박하게 기록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