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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리나 Sep 16. 2018

세상의 모든 술을 마신 어느 사진작가의 이야기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

폭염이 계속되는 무더운 여름날 저녁,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는 맥주가 그리워지는 순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치킨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여름에는 역시 ‘치맥’이 아니던가. 쌉사름하면서도 달큰한 막걸리에는 해물파전이나 얼큰한 김치전이 제격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거의 모든 국가들은 자기들만의 독특한 술과 안주의 조합을 보유하고 있다. 만약 전 세계를 아우르는 술맛 기행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마다할 리가 없지만 실현하기 쉽지 않은 꿈이다. 그런데 여기 그 꿈을 이룬 행운의 사나이가 있다. 사진작가이자 일본 요리연구가인 저자는 무려 40여 년 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나라의 술과 음식을 마음껏 즐겼다. 


맛있는 술과 안주를 찾아 지구 한 바퀴를 돈 저자의 음주 이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직업이 사진가라면서 카메라를 팔아 술을 마시고, 밀라노에서 500일간 체류하는 동안 무려 1400종의 비노(이탈리아 와인)을 마셨다. 글라스에 따라 빛에 비추어 보니 루비를 쥐어짠 붉은 액을 모아놓은 듯한 포르토 와인, 약간 목을 축였을 뿐인데도 몸이 저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그리스의 우조 등등 술에 대한 감각적인 묘사는 저절로 음주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진정한 애주가로서 수십 년간 술을 마셔온 저자도 술을 제대로 마시는 비결로 “반드시 술에 어울리는 안주를 곁들여야 한다!”는 점을 꼽는다. 요리연구가로서 음식에도 일가견을 지닌 저자는 자신이 맛본 술과 안주의 조합을 세밀화처럼 생생하게 그려낸다.


우리는 이 지방 햄과 양상추를 끼워 넣고 잉글리시 머스터드를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듬뿍 바른 샌드위치와 스카치 병을 들고
히스 언덕 아래로 흐르는 강을 향해 나아갔다.(스코틀랜드★스카치)
눈앞에 놓여 있는 검붉은 라압을 집어 입 안에 넣는 순간,
귀 뒤쪽에서 불꽃이 터지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서둘러 다른 접시에 담겨져 있는 오이, 양배추, 팍치를 입 안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즉시 메콩위스키를 입 안으로 흘려 넣었다.(타이★메콩위스키)


마치 저자와 함께 술과 안주를 즐기는 것처럼, 오감을 동원하는 생생하고 입체적인 맛의 묘사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40년간 세상의 거의 모든 술을 마신 남자, 술에 관한 가장 순수한 열정을 가진 사람, 오감과 침샘을 자극하는 그의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문득 나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술과 맛을 떠올려본다. 2004년 여름날 베이징의 오리 전문점에서 바삭바삭하게 구운 오리 껍질과 함께 마셨던 칭따오 맥주, 향기롭고 풍성한 맛을 지녔지만 살짝 느끼할 수 있는 오리 껍질의 맛을 환상적으로 만들어준 쌉사름한 맥주와 요리의 조합은 늘 혀끝에 감도는 여행의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다. 


애주가와 미식가라면 누구나 푹 빠져 단숨에 읽어 내려갈 만한 책. 그러나 부작용 주의! 책을 읽는 내내 강렬한 음주의 충동과 여행의 충동에 휩쓸릴 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다 읽지도 못하고 좋아하는 술을 사러 가거나 불현 듯 가방을 꾸려 어디론가 휙 떠나게 될지도.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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