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리지 않는 길목에서
최근 내 삶에는 두 가지 커다란 이슈가 있었다. 하나는 대학원 진학, 다른 하나는 이사였다. 오랜 시간 고민 끝에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고 나름대로 합격을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했다. 이사 또한 처음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들어올 때부터 계획했던 일이었다.
나름대로 공을 들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예감이 좋았다. 어쩐지 잘 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나를 강하게 사로잡았다.
대학원 면접을 보고 온 지 3일쯤 되었을 때 행정실로부터 연락이 왔다. 석박통합과정으로 지원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석사 과정으로 들어올 거면 받아줄 수 있고, 아니면 올해에는 입학이 어려울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상 떨어졌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그냥 석사부터 다시 시작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지만 급할 것은 없으니 다음 학기에 다시 도전하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
불합격 통보 아닌 불합격 통보를 받고 난 다음 날에는 이사 갈 집과의 가계약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미 집을 보고 온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매일 밤 체리 몰딩이 가득한 그 집을 어떻게 인테리어 하면 좋을지 머리를 굴리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빠지지 않게 되면서 다음 집에 들어갈 전세금이 오갈 데 없이 묶여 버리게 되었다. 결국 가계약은 없던 일이 되었다.
내가 그럼 그렇지
짜증도 아니고 분노도 아닌, 무력감이 나를 덮쳤다.
이럴 거면 왜 그렇게 잘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막연한 기대감에 잔뜩 부풀러 올랐던 마음속 풍선이 퍽하고 터져버린 기분이었다.
이제 무얼 해야 하지?
나는 더 이상 출퇴근 길에 면접을 준비할 필요도 없고, 매일 밤 눈이 빠져라 인테리어 용품을 공부할 필요도 없어졌다. 빈틈없이 폭주하던 뇌세포들이 갈 곳을 잃고 멈추어 버렸다.
멍하니 침대에 누워 머리가 띵하게 아플 때까지 드라마를 보았다.
그러다 문득 사실 나는 잃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꿈꾸던 대학원도 새로운 집도 나는 가져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결국 나의 오늘은 바뀐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 오늘을 살아보자
오랜만에 유튜브에서 시시콜콜한 가십거리가 아닌 명상 채널을 찾았다.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면 그뿐입니다.
명상 도중 다른 생각이 나더라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면 그뿐이라는 명상 가이드가 오늘따라 새롭게 들린다.
단순히 앞 길이 조금 막혔다고 해서 내가 쌓아온 것들이 날아가는 것도 아닌데,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오늘을 포기하려 했던 어리석은 모습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바보 같은 내 모습을 발견했더라도 호흡으로 돌아오면 그뿐이다.
좋은 오늘이 모여 좋은 내일을 만들 테니 나는 그저 그것을 믿으면 된다.
들어오고 나가는 숨에 집중해보자 스스로를 되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