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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 Feb 26. 2022

월세 65만 원을 거절합니다.

아빠, 내 돈 내산 스웩 넘치는 노후를 지내줘

세 딸들. 아빠가 할 말이 있는데
이번 주 토요일 점심에 모였으면 합니다.  


가족 단톡방에 공지가 떴다. 세 딸들은 왠지 짐작 가는 이유가 있었지만 일단 시간을 내어 친정에 가겠다고 답했다. 엄마가 해주신 따끈한 백숙을 나눠먹고 부모님과 세 딸들이 자세를 잡고 빙 둘러앉았다.


아버지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적어온 메모지를 펼치며 먼저 말을 꺼내셨다.


-에헴, 일단 할머니 장례까지 잘 치러준 세 딸들에게 너무 고마워. 그동안 할머니 모시느라 엄마도 고생 많았고, 알다시피 지난 할아버지 장례 때는 사촌 간에 사이가 좋지 않아서 마음고생을 했는데 이번 장례 치를 때는  모든 게 잘 지나갔어.


이어서 메모지에 두 번째로 체크된 부분을 손으로 짚어가며 설명하셨다.


-크흠. 그리고 지난번에도 잠깐 말했듯이 아빠가 월세 받는 집이 세층이 똑같이 65만 원씩 받기로 잘 되었어. 그래서 딸들에게 각각 65만원씩 매월 월세 받은 것을 주려고 해


언니가 미간에 잔뜩 힘을 주며 말을 끊으려고 하자, 아버지는 손으로 막아섰다.


-계속 들어. 아빠는 이미 다 결정한 거니까 자꾸 안 받는다고 하지 말고 아빠가 수중에 있는 돈은 (블라블라) 그리고 이 집도 있고 (블라블라) 재개발되는 상가도 있고 (블라블라) 입주권 두 개도 현금으로 청산받으면 아빠, 엄마가 쓰고도 남아 (블라블라)


당신들이 계속 갖고 있어 봤자 나중에 증여세가 얼마이고 상속세가 얼마라는 것도 강조했다.


우리는 아빠 말을 끝까지 들어볼 생각도 없었지만 꾸깃꾸깃 종이에 적어놓은 글씨를 보니 도중에 말씀하시는 걸 끊을 수가 없었다.


-아빠, 이제 우리 이야기 들어 주실래요?

  


베이비붐 세대 중에 고생 안 한 사람이 있겠냐만은 우리 부모님이 겪은 고생을 말하자면 어디 내놔도 빠지진 않는다.


70년 긴 세월을 일일이 나열할 순 없지만 부모와 형제들은 아버지에게 참 가혹했다. 아버지는 어릴적 할아버지의 잦은 가정 폭력으로 집에서 뛰쳐 나왔다. 그리고 자전거 회사에 취업해서 기술공으로 일하다가 직접 공장을 차려 결국 자수성가하셨다.


아버지가 청년이 되자 가족들은 도시로 상경해 경제적으로 의지했다. 큰 아들이란 이유만으로  결혼 후에도 부모님을 모셨고 여전히 부모는 매일을 싸움으로 지냈다. 아버지는 부모뿐 아니라 두 동생들의 학비와 살림집 까지 해다 바쳐가며 대가족을 건사하며 살았으나 부모는 죽기까지 큰 아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 세 딸은 그 모습을 옆에서 고스란히 보며 자라왔다.


자식에게 받는 효는 당연했으나, 자식에 대한 인정과 사랑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대상이 하필 우리 아버지라는 점이 참 가엽고 슬펐다.




대가족을 건사하고도 70세인 아빠는 당신의 노후를 완벽히 준비해놓으셨다. 작년에 세 딸들에게 이미 재개발 빌라 한 채씩을 증여해주셨다. 명의 문제로 급하게 처리한 건이다.


워킹맘으로 나름 사회생활을 해봤고, 내 나이 40이 가까워 올수록 아버지의 무게감이 실감된다. 나는 아빠보다 좋은 환경에 살아왔는데도 아빠만큼 자수성가하기가 참 쉽지 않다. 감히 그때는 시대가 좋았노라 말할 수 없다. 가슴에 손을 얹어봐도 나는 그 당시 아빠, 엄마만큼의 고생은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가 또 월세까지 주신다는 말씀을 세 딸을 모아놓고 조심스럽게 하셨다. 이미 몇 번 뉘앙스를 비쳤으나 우리가 완강히 반대했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반대하는 이유는 당연하다. 두 분 모두 일흔을 앞두고도 아직까지도 은퇴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아버지 월세를 받을 수 있을까?


아버지는 IMF을 맞아 자전거 사업을 접으셨다. 다행히 빚없이 사업을 하셔서 큰 위기는 면하셨으나 가족 부양과 세 딸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사업을 과감히 접고 인근 부동산을 한채 더 매입하셨다. 그리고 경비원으로 출근하셨다. 내가 고등학교 때라 기억이 생생하다. 사장님 소리를 듣던 아버지가 경비원 복장으로 일하시는 모습 말이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시부모와 세 딸 뿐 아니라 시동생, 시동생의 자식들까지 케어하면서 남의 집 미싱일을 하는 슈퍼 워킹맘이었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주말마다 봉사하던 계기로 인연이 닿아 현재까지 요양보호사로 근무하시며 치매 어르신을 돌보신다.


부모님의 부동산 수입만 해도 왠만한 성인 남성 연봉에 버금가는데 왜 아직까지 일을 하시는건지 이해는 가지 않는다. 자식들은 오로지 부모님이 이제 좀 누리셨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세 딸 모두 결혼하거나 일하면서 자기 앞가름 하고 있다고 설득도 해봤다. 딸들은 편의시설이 여러모로 좋은 분당, 과천에 사는데 경기광주에 거주하고 계신 점도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이다. 특히 어머니는 도보로 출퇴근 하시는데 언덕이 있는 아파트이고 지하철이 멀어서 대중교통 등 입지와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종종 7만 원짜리 와인을 마시며 기분을 낼 때, 이제 막 와인에 입문한 아빠는 세이브존에 1만 원짜리 와인을 마시는 것도 걸렸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문화유산에 대해 설명을 해드렸다. 돈을 주는 것만이 유산이 아니라고. 한평생 고생하신 부모님이 노후를 멋지게 보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돈 보다 값진 문화유산이라고 말이다.


호텔 로비에서 멋지게 커피 마시고 있는 은퇴한 노부부를 보게 될 때, 우리 부모님도 어디선가 저러고 계시겠지 생각하면 행복할 것 같다고 말씀 드렸다. 아버지는 여전히 고개를 저으셨다.


아버지의 마음이 정 그러시면 우리가 월세를 감사히 받겠으나, 그렇다면 우리가 부모님께 용돈으로 얼마를 드려도 터치 하지 마시라고도했다. 통하지 않았다. 우리가 이런 저런 말씀을 드려도 아버지는 완강했다.


마지막으로 진격의 언니가 나섰다.


아빠, 죄송하지만 심한 말씀드릴게요.

아빠가 앞으로 얼마나 사실 것 같아요?
운이 나쁘면 5년? 10년?
인생은 장담할 수 없어요.

그렇게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오늘에라도 갑자기 돌아가시면
남은 세 딸들 마음이 어떨 것 같아요?

월세 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은퇴부터 하시고
가진 돈 펑펑 쓰는 모습 보여주세요.

자식 눈에서 피눈물 나는 거
보기 싫으시면.


아빠는 잠시 생각을 하시더니 우리를 이길 수 없다고 하셨다. 가족회의는 부모님 노후생활 프로젝트로 급선회하게 됐다.  


내년에 두 분 모두 은퇴하시고 여행 다니기로 하셨다. 일단 다음 달 차부터 바꾸기로 했다. 볼보XC를 판매하는 지점부터 알아봐 드리기로 했다.


아빠, 젊어서 고생 많으셨지만
이렇게 노후준비도 잘해놓으시고
자식한테 부담 주시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린 정말 감사하고 존경해요.

여행도, 차도
내 돈 내산
스웩 넘치는 모습 보여 주세요.
저희가 여행 여비는 충분히 드릴게요.
사랑해요. 엄마,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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