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원 Sep 14. 2023

#6. 천국과 지옥 사이 수영장

새벽수영 6일 차


수영의 고비가 왔다.

문제는 호흡이다.

오늘 옆으로 누워서 헤엄치기를 배웠다. 왼팔을 위를 향해 쭉 뻗는다. 왼쪽 귀를 팔에 대고 옆으로 눕는다. 턱은 최대한 당긴다. 어깨와 허리를 일자로 펴고 가슴은 내민다. 다리를 앞 뒤로 차면서 헤엄을 친다. 발차기는 축구를 하듯이. 앞으로 나갈 때는 약간 구부려서 부드럽게, 뒤로 뻗을 때는 쫙 펴서 힘 있게. 폭을 적당히 크게 차지만 일자로 뻣뻣하게 힘을 주면 안 되고 살랑, 살랑, 부드럽고 가볍게 차야 한다.


옆으로 헤엄치기에서 다들 어려워하는 것은 다리차기였다. 대부분이 그랬다. 하지만 나는 다리차기에는 신경조차 쓰지 못했는데 더욱 급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숨. 나는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었다.


사실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턱을 당기면 얼굴이 반쯤 물에 잠기는데 어떻게 숨을 쉰다는 거지?


내가 수영을 하면서 다짐한 제1 규칙은 [생각을 깊이 하지 않는다]였다. 이러쿵저러쿵한 이유로 나는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되었고, 물속에서 죽을까 봐 진심으로 두려워하기 때문에 생각을 깊이 하면 도저히 수영을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하라는 대로 기계적으로 따라 하려고 노력한다. 그건 지금까지 효과가 좋았다. 옆으로 헤엄치기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한 바퀴를 돌면서 엄청나게 많은 물을 코로 입으로 마셨고,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기침을 하다가 멘붕이 오고 말았다. 얼굴에 있는 눈을 제외한 모든 구멍으로 수영장의 물이 제 마음대로 오가고 있었다.  


옆에 있던 회원분에게 슬쩍 물어봤다. 숨은 어떻게 쉬셨냐고.  

그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게요? 어떻게 쉬었지?? 생각해보지 않았네요!"


의식하지 않았단 말인가.... 어떻게..?  그래서 선생님에게 물어봤다. 숨은 어디로 쉬어야 하냐고.

선생님은 이런 질문은 처음이라는 듯이 ????한 얼굴로 말했다.  


"당연히 입으로 쉬지요?"


"음 그런데 자꾸 코로 물이 들어가서…"


"그건, 회원님이 코로 숨을 쉬기 때문이에요. 코로는 내쉬기만 하고 입으로 숨을 마시는 거예요! "


나는… 나는 코로 숨 쉬지 않았다! 정말이다….. 정말일까? 내가 혹시 나도 모르게 쉬었을까? 아닌데…아 모르겠다. 나는 자신이 없어진다.


세 바퀴나 도는 동안 나는 결국 숨쉬기를 하지 못했다. 숨 대신 코와 입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물을 들이켰다. 코와 입이 연결되는 물줄기가 느껴졌다. 나중에는 뇌 전체가 수영장의 락스물로 꽉 차고 있다는 망상에 빠져들었다…..

수업을 마치고 산산조각 난 멘탈을 주섬주섬 챙겨서 샤워실로 올라갔다. 음 뭐랄까,,, 엄청나게 무기력한 기분이었다. 숨을 쉬지 못하다니….. 숨을….


내 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낯설다. 팔도 다리도 배도. 내 몸이니까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할 텐데 그게 안 된다. 조절하려는 노력조차 해 본 적 없이 여태 살아왔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나는 몸을 사용하는 것에 놀랄 만큼 서툴다. 몸과 친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다. 하다못해 호흡조차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것이다.

왜 이 심각한 상황을 그동안은 몰랐을까? 왜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왜-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말자고 생각했지만 나는 또 이렇게 생각에 빠져든다. 비누로 수영복을 문질러 헹구면서 알았다. 나는 이 상황을 바꾸고 싶다. 이 태도를 바꾸고 몸의 주도권을 잡고 싶다. 내 몸을 사용하는 것에 두려움과 낯섦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다.


무척 심란한 기분이었다. 몸이 축 늘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 샤워실 한쪽에 있는 온탕을 보았다. 그동안 빠르게 샤워만 하고 나가느라 들어간 적 없는 온탕이다. 아니, 탕에 들어간 것 자체가 엄청나게 오래전 일이다.


허리까지 몸을 담갔다. 순간 깜짝 놀랐다. 이거… 기분이 엄청 좋잖아..? 딱 좋은 온도의 부드러운 물살이 살랑살랑 나를 밀쳤다. 아........?  

목까지 푹 들어가서 노곤한 압박을 느꼈다. 수영장의 물은 펄떡펄떡 뛰는 것 같았다면 이 온탕의 물은 나를 껴안고 토닥이는 것 같았다. 아... 그리고는. 나는 순식간에 너무 행복해져 버렸다. 갑자기 이렇게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건가, 허무할 만큼… 오늘 먹은 물과 충격이 모두 보상받을 만큼 완벽한 온탕이었다.


몸을 다 씻고 나오니까 평소보다 딱 10분 정도 더 걸렸다. 믿을 수 없었다. 분명히 아주 길고 진한 행복이었는데! 그리고 결심했다. 다음부터는 반드시 온탕에 들어갔다가 집으로 가기로.  

오늘 수영장이 싫어질 뻔했지만, 10분 만에 다시 좋아졌다. 이유는 단순. 천국과 지옥 사이에 수영장이 있었던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5. 레인을 가르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