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되었던 일이지만 선생님이 휴가를 내셨다. 두 번의 수업동안 다른 강사님이 오신다는 말이다.
수업이 시작되자 새로 오신 P 선생님은 우리에게 킥판을 잡은 채 발차기 없이 그냥 떠서 쭉 앞으로 가보라고 했다. 우리가 이구동성 "그건 이미 끝냈다"라고 이야기했지만 선생님은 별 대답도 없이 그냥 하라고 했다. 수강생들의 얼굴에는 딱 이런 표정들이 떠올라 있었다.
내가 아무리 기초반이라고 해도 첫 시간에 했던 걸 다시 하라고 하다니...
그러나.
결론을 말하자면 그것은 강사님의 빅피처였던 것 같다. 그때 했던 떠있기와 지금 하는 떠있기는 굉장히 다른 느낌이었다. 진도를 뒤로 간 거라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주... 여유로웠다. 그리고 수영의 기본자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기본자세란 다음과 같다.
1. 양팔을 귀에 바짝 붙이고, 손끝을 위로 뾰족하게 세운다.
그 자세를 잘 유지해야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2. 고개를 뒤통수까지 푹 잠기도록 한다.
그래야만 어깨가 떠오른다. 머리를 대충 넣으면 몸은 사선으로 가라앉는다.
자세에 집중하며 몇 바퀴를 돌고 나자 P강사님은 말했다.
"무슨 영법을 배우건 발차기 없이 그냥 떠있기, 이걸 자주 하세요. 균형을 잡는 감각을 익히는 데 아주 좋습니다. "
균형, 기본. 잘 기억하기로 했다.
P 강사님은 이번에는 이어서, 킥판 없이 그대로 가보자 하셨다.
헉. 킥판은 생명줄인데.... 킥판 없이 뜰 수가 있다고??
정말 자신이 없었지만 도망갈 수도 없으니 에라 모르겠다 그냥 몸을 던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물에 떴다. 물에 뜨고 있었다. 내가 물에 뜨다니. 이렇게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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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수영 수업을 할 때 나는 여러 선생님을 거쳤지만 결국 물에 뜨지 못했다. 사람은 물에 뜨도록 태어났다던데 나는 왜 뜨지도 않는가, 수영을 생각하면 주눅이 들곤 했다. 나 스스로가 뜨지 못하는 희한한 사람인 줄 알았던 그때 내가 들은 설명은 단 한 가지였다.
"몸에 힘을 빼라"
힘을 뺀다고 뺐지만 몸은 자꾸 가라앉았다. 선생님은 힘을 빼라고! 외치고 나는 뺐다고요 ㅜㅜ 변명하고 그 무한 반복이랄까. 나는 죽은 사람이다.....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해 힘을 뺐지만 내 몸은 돌덩이처럼 가라앉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냥 몸에 힘을 빼라는 조언은 나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누군가는 그걸로도 충분할 수 있지만 나에겐 맞지 않는 설명이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생각해도 몸에 힘을 뺀다는 건 귀로 숨을 쉬라는 것만큼 잘 와닿지 않는 주문이다. 그러니까 뭘 어떻게 하란 거야.
그때의 내가 구제척으로 몸과 목을 일자로 하라거나, 귀에 팔을 딱 붙이라거나, 이런 디테일한 설명을 들었더라면 어땠을까.
이제 보니 자세를 제대로 잡으면 몸에 힘을 빼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몸은 자연스럽게 물에 뜨는 거였다. 특히 목의 각도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특정 목의 각도에서는척추가 일직선을 이루는 느낌이 나는데 그때는 문득 내가 나무토막으로 변신한 기분이 든다. 나무토막이라면 물에 뜨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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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는 문제만 없다면 나는 물을 좋아하는 것 같다. 처음 알았지만 둥둥 물에 떠 있는 기분은 상상을 초월하게 좋았다. 그뿐인가. 수영장은 무척 시끄러운데, 물속에 들어가면 갑작스럽게 고요해지는 것은 환상적이었다. 그갑작스런 고요함은 굉장히 아름다워서 감탄이 나오곤 했다. 무엇보다 내가 뜰 수 있다니....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그 다음에 한 것은 킥판 없이 발차기까지 하면서 레인 돌기다.
월등하게 잘하는 보라님과 보라님 친구분이 제일 앞에서 출발하고 그다음으로 내가 출발했다. 참고로 내가 세번째로 잘한다는 뜻은 전혀 아니고 보라님 근처에서 알짱 대다보면 선두 그룹이 되곤 한다. 이제 내가 물에 뜬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아직 킥판 없이 나아갈 자신은 없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출발은 했지만 긴장을 해서인지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간 것 같아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멈추어 섰다. 파하~ 물 위로 고개를 내민 순간, 강사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P 강사님은 나를 가리키며 자세가 좋다고 다른 회원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물속에서 들리지 않았던 칭찬을 우연찮게 주워들은 것. 그게 이렇게 큰 만족감을 주다니! 인정받으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배우는 입장에서 잘하고 있다는 칭찬은 나를 고래처럼 춤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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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깨우친 것 한 가지 더.
선생님은 물속에서 오래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어떻게 오래 머물 것인가? 에 대한 것이다. 나는 음~을 하면서 약 열을 셀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그러고 나면 고개를 들고 숨을 쉬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나는 음~이 끝나도 조금 더 버틸 수 있었다. 공기를 뽀글뽀글 내뱉지 않고 그냥 숨을 멈춘 상태로 한참을 더 갈 수 있었다. 마시는 호흡과 연결하는 데에는 어떤 것이 더 효율적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음~과 파~ 사이에 무호흡의 시간도 있다는 것이 새로운 발견이었다.
수영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깨닫는 것들은 어렴풋이 하나로 모아진다. 어디에나 완충지대가 있다는 것이랄까.
잘함과 못함 사이, 좋음과 싫음 사이에 뭔가가 있다는 감각을 배운다. 그것만으로도 수영은 더 배울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별다른 목표 없이 한 달만 해보자는 수영이었는데, 오늘은 문득 이왕 시작한 것 꾸준히 오래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