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원 Sep 21. 2023

#8. 도망

새벽수영 8일 차

첫날, 아니 등록할 때부터 어렴풋이 생각은 했었다.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지만 어쩐지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았을 뿐. 그러나 대자연은 무자비하다. 그것은 인정사정없이 때가 되면 그냥 쳐들어 오는 것이다.......





수영장에 도착해서 샤워를 할 때만 해도 마냥 상쾌했다. 오늘은 또 새로운 강사 선생님이 오셨으니까, 뭘 하시려나 기대를 하면서 레인 한 바퀴 돌 때까지만 해도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두 번째 바퀴를 돌기 위해 움직이던 순간,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실낱같이 쌔-한 느낌이 밀려들었다. 그것은 단전에서부터 시작해서 아래로 내리꽂는 것 같은 찌르르리한 통증이었다. 미묘하게 배가 아팠다. 설마. 얼굴의 핏기가 싹 빠졌다.


그 자리에 얼음이 된 상태로 이 쌔-한 느낌에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알아내야 한다.  검고 무거운 거대한 먹구름이 머리 위로 몰려들고 그 압력이 향하는 곳은, 나의 배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우주의 신호를 해석해 내야 한다.

이거, 확실한가? 맞나? 정말? 이런 x......... 왜 하필 지금.... 울고 싶다.


뒤에 선 회원님들에게 먼저 가라고 순서를 양보하며 얼음이 되어 서있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두 목소리가 싸우고 있었다. 들었다. 1이 말하길 "아직 확실한 건 아닌데 한 바퀴만 더 돌아도 되지 않을까........?" 그러자 2가 말했다. "..... 라니 미쳤구나? 제정신임? 당장 나가 지금 바로 긴급!!"


몸을 대충 씻고 정신없이 운전해서 집에 도착했다.

7시 20분.

침대에 풀썩 눕는다.

참을 수 없는 짜증이 몰려와서 끅끅대면서 몸부림을 친다. 살면서 우주로부터 내 몸으로 보내는 이 신호가 반가운 적은 거의 없었지만 오늘은 특히 더 싫다. 결국 그날이 되었다. 아직은 아니지만 오늘 생리가 시작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 수 있다......


"생리가 시작될 것 같은 쌔한 느낌이 들어서 중간에 나왔어."


입이 잔뜩 나온 나를 보고 남편이 말한다.


"아.... 여자들은 그럼 다 한 달에 거의,,,,일주일 정도는 수업을 못하는 거야? (놀람) 그럼 수업료 할인 해줘야 하지 않나?"


나는 기분이 나빴었는데, 그 말에 기분이 더 아주 아주 아주 아주 나빠진다. 이유는 스물다섯 가지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다. 10시가 넘었는데 아직이다. 음? 아닌가? 중간에 집으로 돌아오면서는 '이럴 거면 일어나자마자 알아차리고 나오지를 말걸' 싶었는데 이러니까'이럴 거면 그냥 수업이나 다 하고 올걸'싶다. 분명히 우주로부터 온 쌔-하고 찌릿-한 신호가 왔었는데,,,, 내가 잘못 느꼈나?....라고 하는 순간. 그것은 찾아온다. 가차 없이, 통증과 함께, 까불거리면서, 예의없이, 또...그리고...... 나는 여성으로서 이 사태에 대해 적나라한 묘사를 두 페이지 정도는 거뜬하게 할 수 있지만 참겠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철분 손실이 심해서 힘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패턴이 다르겠지만 일단 나는 그렇다. 나는 정말 그게 힘들다. 힘들고도 싫다. PMS는 말할 것도 없고, 하여튼 매달 생각한다. 이렇게 다 쏟아내도 나는 살 수 있는 걸까..... 이게 말이 되나....?


이제 막 태어난 새싹 수영인으로서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누워서 하염없이 날짜를 헤아려본다.

월요일이 이렇게 가니까 수요일도 못 가겠지. 금요일엔 갈 수 있을까...? 다들 진도를 얼마나 나갔을까. 재미있겠지...?아까 배아프다고 하고 나왔는데 내가 X 싸러 간 줄 아는건 아니겠지...?아니 그게 뭐가 중요해... 아니 중요한 것 같기도.... 아닌가... 생각의 늪에 빠져든다. 이 생각을 멈추려면 몸을 움직여서 수영을 했어야 하는데.


어쨌든

슬프다.


너무 슬프다.




진짜 너무 슬프다.  

 


   


   






 




작가의 이전글 #7. 뜰 수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