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일을 제대로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맨날 일에 질질 끌려 다녔다면 이제 적극적으로 일을 펼쳐 보겠다는 생각이다. 일을 시작한 지 삼십년만에 이런 생각이 들었으니 약간 진심이다.
혼자 쪽책상 앞에서 시작했던 일은 방학때 사탐선생님까지 오면 조교까지 동료 10명의 규모로 성장했다. 아무리 소수 정예라고 해도 각반 학생들과 학부모까지 생각하면 내가 일을 할 때 고려해야 하는 사람의 수 는 꽤 많고 가끔은 나의 정량을 넘어가기도 한다. 그래도 학원 규모는 학원중에서는 아주 작은 꼬꼬마 수준이다. 더이상 규모를 키울 수 없는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나의 능력이 도저히 따르지 않고, 한명 한명을 입시에 성공시켜야하는 가내수공업적인 상황에서는 학생수가 느는 것이 좋기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새학생이 늘 어렵다. 그리고 대규모로 입시 컨설팅을 하는 것은 성격에 진짜 맞지 않다. 나는 입시 디자이너라는 자부심이 크다.
병으로 3년을 쉬었던 것을 만회 하고자 여러 유명한 미술 실기 원장들에게 협업을 제안했지만 밥값 술값만 썼다. 그 분들에게 학생들 수능 성적을 올리겠다고 호언장담을 한 것이 실수였다. 대신 유명 프랜차이즈 여자 대표님이 적극 함께 하실 의향을 보이고 좋은 조건을 보이셨다. 나는 깊은 감사를 표했고 일단은 보류했다. 대신 학원장이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에서 함께 할 수 있은 부분은 적극 함께 하기로 했다.
학원은 전적으로 스스로 일으켜 세우기로 했다. 반은 해냈다. 원장으로써 ‘어떤 상황’이 와도 급여를 제때에 주는 것이 내 원칙인데 정말 급여날이 빨리 돌아온다. 이제 비젼이라는 걸 만들어 가야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행복한 말, 좋은게 좋다 방식은 비젼이고 뭐고 없으니까 눈 똑바로 뜨고 ‘원칙’에대해 얘기할 날이 많아졌다. 비젼은 내가 준다고 주어지는게 아니라 내가 주려고 할때 그게 무엇인지를 알고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영어회화를 배울때도 마찬가지인데 회화를 배우는 것은 한마디씩 배우는게 아니라 상대가 유려하게 하는 말을 잘 듣고 ‘그 상황에서는 그 말’을 어떻게 쓰는지를 캐치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아주아주 중요하다.
나는 좀 무서운 사람이기도 하다. 무섭다는 것은 찡찡대거나 엄살이 없는대신 정면도전에 강하다는 말이다. 눈도 매섭다. 사실 허투루 보는게 없다. 집안이 허술하고 더러운 것은 그런것이 크게 거슬리지 않기때문에 넘어 가기 때문이다. 더러운 게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신, 일 할때는 넘어갈 수 없다.
귀하게 귀하게만 자란 아이들이 입시에서 계속 떨어지는 이유는 한번도 정면 승부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나와 면접 연습을 하거나 서류를 쓸때 무조건 두 번은 운다. 한 번은 무서워서. 한 번은 감동해서. 정신차리라는 얘기에 아버지가 항의 전화를 하기도한다. 그럴땐 조금 무섭지만 아닌 척 하고 <그럼 저랑은 어렵겠습니다.> 해버린다.
나는 계속 입시 일을 할 것이다. 생각해보니 일년에 한 번 성과 확실하게 확인하는 것이 내 적성에 아주 잘 맞기도 하다.
수시에 홍대 이대 다 합격했다.
이제 정시 서울대만 남았는데 일대일로 면접 스케줄 만들 생각하니 아득하다. 하지만 기대는 더욱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