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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나무 Apr 28. 2022

나는 상대적일까요

2022년 4월 22일

당신에게


집열쇠를 잃어버렸습니다. 정신없이 장을 보고 돌아와 문을 열려고 보니 없었습니다. 내게는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물건들이 그냥 사라져요. 주의력 부족 탓이겠지만, 가끔은 나를 둘러싼 우주에 내가 모르는 블랙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블랙홀은 국경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 내 물건을 집어 삼킵니다. 결국 열쇠를 찾지 못하고 관리인에게 복사키를 요청해야 했습니다. 세금 포함 64유로라는 거금을 주고 말이죠.


마냥 평화롭지만은 않은 오후 두 시를 보내고 있습니다. 날마다 낯선 일감이 주어지고, 우당탕탕 어째저째 미션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은, 도움을 주는 동료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속으로는 대단히 귀찮겠지만 (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내색하지 않고 나를 견뎌주고 있습니다. 본인의 일로 다들 바쁘다는 것을 알기에, 늘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업무도, 시스템 사용도 얼른 익혀서, 이런 민폐도 그만 끼쳐야할 텐데요.


사무실 동료들은 어느 하나 빠지는 사람 없이 개성이 넘칩니다. 인간적인 호불호를 떠나서, 모두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해요. 진심으로 내가 가장 무색무취의 인간 같습니다. 이게  이상합니다. 서울에서 다니던 사무실에서는 내가 가장 유별난 사람 같았거든요. 그곳의 직원들은 대체로 표정이 없고, 작은 목소리로 정돈된 언어를 쓰곤 했습니다. 걸음걸이와 몸짓에서 권태와 나른함이 느껴졌죠. 그게 람이 들고 나는 것도 모를만큼 조용한 회사의 분위기와  어울렸습니다. 뭐랄까.. 모두들 집단에  밀착된 피부 세포 같았습니다.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세계와 꽤 다이내믹한 가십이 있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된 일입니다만, 확실한 것은 나는 그 집단에 어울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나는 목소리도 크고, 흥분도 잘 하고, 구내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는 것도, 점심시간에 삼삼오오 모여 차를 마시는 것도 견디지 못하는 부적응자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정규직으로 사회 초년생 때부터 어쩌면 평생을 그곳에서 보낼 직원들을 볼 때면, 내가 어딘가 이상한 사람, 혹은 어떤 과업에 실패한 사람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건 집단 속에서 규정된 나의 정체성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해외를 방랑하다가 돌아온, 삼십 대 중후반 미혼의 비정규직 사무보조원'이라는 이름표를 달고서 나보다 한참 어린 상사들과 섞이다 보면, 종종 내가 노동시장과 결혼시장에서 한참 낙오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기분을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해외에서 성실히 일하며 행복하려고 노력했고, 그런 의미에서 내 인생은 단 한 번도 낙오한 적도, 실패한 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언젠가 엄마와 언니의 대화를 듣게 된 적이 있습니다. 프랑스 직장에 사직서를 내고 캐나다로 장기 여행을 떠나려고 했을 때였습니다. 언니의 목소리가 제 뒷통수에 꽂히더군요. "사과나무, 쟤는 도대체 어떻게 살려고 저래?" 생애주기별 과업을 잘 수행하여, 안정된 직장과 가정과 차와 집이 있고, 주말이면 손톱손질을 하러 다니는 언니의 눈에, 내 인생은 그저 대책이 없이 한심한 무언가로 보였나 봅니다. 상냥한 미소 뒤에 그런 생각을 감추고 있었다는 것이 내게는 꽤나 큰 충격과 상처였지만, 나는 아무말 하지 못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내가 가장 평범해 보인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이채로운 삶의 이력 속에서, 자신의 개성을 극대화시킨 동료들이 재미있고 신기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을 규정하는 일이 얼마나 상대적인가에 대해 생각합니다. 환경이 개인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큰 변수이지만, 그 환경은 무수한 소우주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세계는 넓고, 사는 방식은 다양하며, 당신이 속한 세상마저도 '정상'과 '보편'이라는 이름으로 규정된 것들보다, 훨씬 더 촘촘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한 개인을, 그 사람의 삶을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물론,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기질이나 성정이 있긴 한 것 같습니다. 마다가스카르라는 이 먼 곳까지 와서도 열쇠를 잃어버리고 다니는 칠푼이 팔푼이가 여기 있네요. 바가지에 한해서는,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새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어떤 세계에서 뭐라고 규정되었든, 나는 당신의 삶이 가치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살고 있는 오후 두 시의 모습이 궁금한 이유입니다.


2022년 4월 22일

사과나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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