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과나무 Sep 05. 2023

잘 뛰고 잘 먹고 잘 잡니다

2023년 9월 1일

당신에게


잘 지내고 있나요? 전세계가 절절 끓는 무더위로부터 막 빠져나온 지금, 마다가스카르는 겨울을 지나고 있습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늘 순탄하지만은 않지만, 대체로 고요한 나날입니다. 마다가스카르는 겨울에 일몰이 유난히 아름답고, 밤하늘은 그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달 표면이 선명한 구체의 달과 총총 빛나는 수십 개의 별자리는 설명으로 다 할 수 없는 나만 아는 기쁨입니다.


두 달 전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2주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고, 바쁘게 보냈습니다. 건강검진을 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오랜 친구도 만났고, 마다가스카르에서 일로 만났던 사람들도 만났고, 아주 새로운 사람도 만났습니다. 이렇게 사람을 찾아서 만나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마다가스카르로 떠나올 때만 해도 사람들의 연락을 피하기 바빴었는데요. 드디어 내게도 여유와 평안이 깃든 걸까요.


돌이켜 보면, 그 때는 내게 감정적인 부담을 지우는 모든 사람들을 내 인생에서 내쫓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 감정이란 게 서운함 같은 상호적인 감정도 있었습니다만, 피해의식이나 열패감 같은 스스로 만들어낸 감정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다 내게서 온 미운 마음들인데, 그저 화풀이할 상대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나를 참 미워했구나, 그러니 모두가 미워보였구나. 이제는 그게 보이는 걸 보니, 여유와 평안이 깃든 게 맞나봅니다.  


언젠가 지선과 미워하는 마음에 대하여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미움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쓰게 하는지, 결국 스스로를 얼마나 지치게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그러고 보니, 나를 향한 미움이 멈추면서 생긴 잉여 에너지가 사람에게 쏟을 힘을 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즐거움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어제는 아주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멕시코 친구와도 통화를 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며 한국에 가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오는 10월에 또 한국에 갑니다. 건강 문제로 가는 것이긴 하지만, 이번에도 많은 사람을 만날 계획입니다. 서울에서 열리는 작은 마라톤대회도 나갈 예정입니다. 겨우 10km이지만, 완주를 위해 얼마 전부터 저녁에 달리는 연습을 합니다. 실내 피트니스에서 운동할 때는 몰랐는지, 야외에서 뛰는 즐거움이 있더군요. 잘 뛰고 잘 먹고 잘 자는 요즘입니다.     


마다가스카르의 오후 두 시는 매일 같은 얼굴을 반복하지만, 저는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천천히 밀려와 조심스레 발끝을 적시는 파도처럼, 그렇게 찾아오는 변화를 느낍니다. 변화하는 나를 보는 게 좋네요. 잘 뛰고 잘 먹고 잘 자는 내가, 사람들 속에서 잘 웃는 내가 좋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내게 밀려오는 변화의 물결이 당신의 삶도 아주 조금 젖게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오후 두 시가 어제와 조금은 다르기를, 다정하게 바라 봅니다.


2023년 9월 1일

사과나무 드림


매거진의 이전글 잠이 오지 않아 씁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