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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돌 Aug 07. 2024

[Interview] 사소한 행복을 줍는 사람

-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나요?

누구보다 평범하게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얘기해 보면 누구보다 이상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전 남들이 쉽게 하는 걸 쉽게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거든요. 제가 학교라는 체계랑 안 맞는 학생인 걸 몰랐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착실하게 살았는데 그게 속으로 많이 곪아서 고등학교 1학년 말 즈음에 뻥 터진 거예요. 마음이 아프니까 몸이 아프더라고요. 크게 아프면서 고등학교 2학년 시작하면서 자퇴했어요. 1년을 쉬고 내년에 다시 돌아가겠다고 엄마랑 약속했어요. 쉬는 동안 행복하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놀다가 다시 입학했죠. 근데 한번 쉼의 맛을 본 학생이 어떻게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행복할 수 있겠어요. 우리 학교가 유독 엄하고 규정도 빡빡해서 더 스트레스가 심한 거예요. 그래서 유급되기 직전까지만 다니면서 아등바등 간신히 졸업했어요. 그러면서 느꼈던 게, 남들은 쉽게 해내는 걸 전 어렵게 하는 거예요. “남들은 다 졸업하는데 너는 왜 못하냐, 조금만 참으면 되지 않느냐.”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내가 좀 이상한가?’ 그런 생각도 들었고 저한테 남들과 다른 예민함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대학교는 자유의 몸으로 훨훨 날면서 다녔어요. 제가 외동이기도 하고 부모님을 부양해야 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어서 좋은 학교, 좋은 직장 들어가서 돈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무턱대고 대학교를 안 가자니 겁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대학을 갔는데, 가서 많이 방황했죠. 전공이랑 너무 안 맞기도 했고 제가 가고 싶었던 과가 있었는데 사정 때문에 못 가게 되었어요. 그래서 아쉬움도 컸고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래도 재밌었어요. 왜냐하면 고등학교보다는 제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었고 학교 수업 외에 다른 활동이 많잖아요. 그중에서 제가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게 교지 편집위원회 활동이거든요. 하면서 좋아하는 것도 알게 되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요. 친구들이 저한테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많이 해줬어요. 거기서 용기를 얻고 많이 극복한 것 같아요. 저에게 남들과 다른 예민함이 있다는 걸 알고 나서는 그 예민함을 좋은 데다 표출하려고 노력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저도 인터뷰를 많이 했거든요. 제가 예민하다는 걸 안 좋게만 생각했었는데 저의 경험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해 줄 수 있고, 사실 사람들도 다 자기만의 예민함을 하나씩 가지고 있더라고요. 


아프고, 자퇴하면서 했던 경험들이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거죠. 특히 엄마가 저를 믿고 응원해 주셨어요. 처음에는 당황하셨는데 결국은 이해해 주시고 믿어주셨어요. 좋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평탄한 듯 평탄하지 않게 살았지만, 그사이에 좋은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게 해준 삶이었어요. 저 인생에 단 한 줌의 후회도 없거든요. 저는 제 모든 선택에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만족하고 불만족하고 할 것도 없이 어차피 100번을 돌아간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거라서 아무 후회가 없어요. 로또 번호를 알았으면 그거는 돌아가서 했겠지만(웃음).


-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요?

 제가 작년 여름에 엄청 아팠어요. 아까 말한 친구들이 저를 많이 도와줬거든요. 그때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어요. 행복은 크고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면, 이제 행복은 사소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요즘은 사소한 행복을 많이 끼워 넣으려는 하루를 보내면서 살고 있어요. 크고 확실한 행복은 없다(웃음). 아침에 일어나서 강아지랑 놀고 가방에 책을 몇 권 넣어서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읽어요. 블로그 쓰고 다이어리도 쓰면서 하루를 보내거든요. 그게 저한테는 가장 완벽한 하루예요. 26살이 됐는데 애들 다 스펙 쌓고 이럴 때 혼자 카페 가고 강아지랑 놀고 있는 게 웃기기도 한데 어떡해요. 저는 여기까지가 제가 낼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하고, 늘 이 이상으로 힘을 내려고 하면 탈이 났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이 충전 타임인 것 같기도 해요. 이렇게 살고 있는 거에 되게 만족해요.


그리고 제가 작년에 아프면서 생긴 큰 변화 중 하나가 강아지랑 엄마가 같이 살게 됐거든요. 원래 자취를 4년 동안 해서 혼자 사는 게 익숙했는데 엄마랑 같이 살고 새 식구도 생기니까 복작복작한 집을 오랜만에 느끼거든요. 강아지 숨 쉬는 소리, 엄마가 부엌에서 뭐 하시는 소리, 그런 생활 소음들 하나하나가 큰 안정감을 줘요. 강아지가 주는 행복은 다른 행복이고 일단 사람한테는 그런 사랑을 못 받을 것 같아요. 강아지가 집에 있으니까, 하루에 한 번은 꼭 산책해야 하거든요. 근데 저는 귀찮음이 심해서 집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는데 안 좋아해요. 옛날에는 일주일씩 집에만 있어서 무력했다면 지금은 하루에 한 번은 밖에 나가게 되니까 행복해져요. 강아지가 나를 끌고 나와줘서 방방 뛰는 거 보면 행복하고, 비둘기 쫓고 있는 거 보면 귀엽고 그러면서 또 힘이 나요.


- 직접 쓴 시를 엮어서 시집을 내셨는데, 시집 속 인물인 ‘가영’에 대해 궁금해요.

가영이는 가상의 인물이고 책 한 권을 끌어나가는 중심 화자예요. 시를 처음에 쓸 때 저를 너무 많이 투영하고 싶지 않아서 새로운 인물을 만든 거예요. 걔한테 저와 유사한 경험을 하게 하고 걔의 입을 빌려서 말하도록 만든 화자예요. 사실은 제 이름이 가영이가 될 뻔했어요. 그래서 ‘내 이름이 혹시 가영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고 살았거든요. 전 제 이름을 싫어했어요. 제 이름이 ‘밝을 예’에 ‘맑을 린’인데 밝고 맑다는 뜻이 너무 싫은 거예요.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고 흔하기도 해서 사춘기 시절에 너무 싫었어요. 가영이가 더 예쁜 것 같은데 차라리 그 이름이었으면 삶이 많이 바뀌지 않았을까 싶어서 가영이가 된 저를 많이 떠올렸어요. 그래서 화자를 만들었을 때 그 이름을 붙여주고 싶더라고요. 제가 살았을지도 모르는 삶을 살고 있을 새로운 가영이. 근데 비하인드는 초등학교 때 제가 제 이름 후보를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엄마가 그때 분명 가영이랑 예린이라고 했거든요. 근데 알고 보니 가영이가 아니라 다경이었대요. 그래서 가영이가 제 이름도 아니게 됐어요. 지금은 완전 별개의 이름이긴 한데 그래서 더 마음에 드는 것 같기도 하고.


- 시집 한 권을 완성해서 냈을 때, 그 직후와 지금의 마음은 다른가요?

그때는 제가 진짜 힘든 시기였거든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저의 찐득찐득한 거를 다 끄집어내서 썼던 거고 그때는 현실 감각이나 성취감도 딱히 없었고 이것만 내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달렸던 것 같아요. 인쇄된 시집을 받아보는 순간까지도 행복하지 않았어요. 이 시집을 꼭 세상에 내보내야 저의 힘듦이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실제로 시를 엮어서 내고 나서 어둡고 침침한 곳에서 벗어났고 요즘은 시를 안 씁니다. 저는 앞으로 살면서 두 번 다시 그런 느낌의 시는 쓸 수 없을 것 같아요. 그건 저의 삶의 우울 총합이고요. 너무 힘들어서 술술 써졌던 시집이라 나오고 나서 한 번도 다시 읽어본 적이 없어요.


-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나요?

지금처럼 살고 싶어요. 지금이 제 삶에서 최고점은 아닌 것 같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살고 싶어요. 저는 지금 적당히 우울하고 적당히 무기력하고 적당히 행복하고 적당히 하루하루 즐기면서 살고 있거든요. 이 적당함이 좋아요. 옛날에 아플 때는 우울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우울함이 낫고 나니까 우울하지 않다고 행복한 건 아니더라고요. 우울하지 않은 건 그냥 우울하지 않은 거지 그게 행복으로 가려면 부가적인 계단이 많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우울하지 않은 지금의 상태로 잔잔바리 오래 살고 싶어요. 행복하게 사는 걸 추구하면 또 불행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잔잔한 행복을 인생에 많이 끼워 넣으면서 주변 사람들이랑 지금처럼 소통하고 작고 소중한 강아지와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 사랑을 부르는 많은 단어 중에 가장 믿고 싶은 단어가 있나요?

아무리 생각해도 믿음인 것 같아요. 사랑이라는 게 실체가 없고 아무도 정의를 내려줄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의심하면 의심하는 대로 뒤틀려 보이고 믿으면 믿는 대로 아름다워 보이는 것 같아요. 제가 느끼는 것과 상대가 느끼는 게 똑같은데 상대는 그걸 증오라고 느낄 수도 있고 저는 사랑으로 느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이 마음을 어떻게 굳건히 믿느냐가 사랑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 사랑이 사랑일 거라고 믿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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