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나에게 ‘소명’이란 있는 걸까?
1. 소명. 혹은 인간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라는 무게. 꼭 역사가 아니어도 크든 작든, 무겁든 가볍든 자신에게는 ‘사명’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당위이기도 하고 책임이기도 하다. 때론 그것을 위해 개인의 삶을 희생하기도 하고 희생을 요구하기도 한다. 제대로 하지 않은 누군가에게는 혹독하게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 것이 있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정말로 사명이라는 것이 있는가? 사명이 정말로 있다고 생각하나? 설령 있다 한들, 그것이 나 개인의 삶보다 중요한가?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지금은 폐지된 국민교육헌장의 첫 문장에 익숙해졌던 것은 아닐까.
사명은 없다. 그것이 개인의 삶과 자유를 훼손할 때. 그것을 무너뜨리고 짓밟을 때 그것은 이미 사명이 아닌 것이다.
한없이 가볍고 한없이 무거운 소설
2. 제목이 보여주듯 이 책은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하는 소설이다. 하지만 뭐라 딱 한마디로 규정지을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역사 속에서 내 존재는 한없이 가볍지만 임무는 한없이 무겁다. 무겁고도 가벼운 것. 가볍고도 무거운 것. 밀란 쿤데라는 어떤 이념이나 사조, 유행 등에 따라는 뻔하고 진부한 삶의 방식이나 형태를 이 책에서 ‘키치’라고 표현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 ‘당연히 ~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나 생각도 키치인 것이다. 밀란 쿤데라에 따르면.
내 삶이 뻔한 키치 속에 매몰될 때 내 존재는 한없이 가벼워진다. 나는 그 순간 익명에 불과한 '행인 1'에 불과하다. 이념, 의무, 키치만 남고 진정한 ‘나’는 한없이 증발된다. 가볍다 못해 증발되어 사라진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유일하고, 독립적인 하나의 주체로 사랑했을 때 우리는 one of them이 아닌 I가 된다.
프라하의 봄, 군부독재, 망명, 감시, 폭력, 협박, 냉소... 소설 속 주인공들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서로 만났다 헤어지고 사랑했다 돌아선다. 쓸쓸하고 냉소적이기까지 하지만 어쩌면 그게 삶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가는 이 소설의 말미에 이렇게 썼을 것이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한두 번 읽어서는 이해할 수 없는 책이다.
한 겹 한 겹 켜켜이 쌓인 삶의 내공이 있을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