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진 않지만요.
이미지는 felicia chiao의 작품
본격적으로 영양사 이야기를 해보자 했더니 글을 못 쓰겠다. 영양사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어떤 글을 쓰건 기승전 영양사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멍석을 깔고나니 어떤 글을 써도 적당히 읽고 즐길만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팍팍한 직장생활을 나열할 뿐인 글이 되었다. 아니면 업무 인수인계 처럼 딱딱한 글이 돼버렸다. 안되겠다싶어 기분전환용으로 다른 주제의 글을 썼더니 이야기는 삼천포가 아닌 영양사이야기로 빠졌다.(역시 쓸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런 이유로 글 쓰는게 힘들게 느껴졌다. 아예 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예전만큼 끝내는 힘이 충분치 않았다.
글 중<당신은 십여년간 그 면허로 먹고 살게 됩니다.> 는 내 브런치에서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구독자도 늘게 했다. 그것이 내 발목을 잡았다. 나는 예전부터 누가 나에게 기대를 하고 있으면 그 기대를 빨리 무너트리기 위해 용을 쓰는 버릇이 있다. 일부러 내가 무너트린게 아닌, 내 ‘진짜’ 실력으로 상대가 나에게 실망을 하면 견딜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리 선수를 치는거다. 나 말고도 이런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그건 별로 위로가 되지않는다.
“여러분 모두 힘들군요, 나도 힘들답니다.
별 수 있겠어요. 실망 당하는건 너무 힘들잖아요. 그러다 한번 실망해서 다시 회복할 때까지는 아주 험난할거같아요.
역시 모두 공감하는군요?
이번에도 미리 실망시키는 게 최선인 것 같군요.”
그래서 구독자들을 실망시키고자 퇴고하지 않은 글을 발행해버렸다. 그런데 보통의 대인관계에서는 한 번 내뱉은 말을 다시 주워담을 수 없지만 브런치에는 발행취소 기능이 있다. 그래서 이내 그 글을 발행한 것을 후회하며 취소를 눌렀다.
항상 실망을 미리 시켜놓고 마음은 후회에 휩싸인다. 어찌됐건 두번의 발행취소로 나의 이미지를 잘 지켰다.(고 생각한다.) 발행되자마자 라이킷을 눌러준 000님 미안합니다. 그 글은 영원히 없어졌어요. 하지만 취향에는 정답이 없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글도 다른 이는 마음에 들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알게 해주었어요, 감사합니다.
얼마전 미용실에서 젊은 헤어디자이너님과 이런 대화를 한적이 있다. 나는 두번 다시 영양사 일은 하기 싫다고 했고 나보다는 나이가 좀 있는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웃으며)"그게 쉽지는 않을걸요?" 말을 하는 그녀를 보며 난 움찔하면서도 기분이 아주 나빠졌다. 물론 그분은 잘못이 없고, 배배꼬인 마음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집에서 그 말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을때는 화가 나기까지 했다.
“당신이 나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그런 말을 하는거죠? 내가 영양사 생활을 하며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힘들게 마음을 먹었는데 그런 말을 하는겁니까.”
지금은 안다. 저 말은 미용사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누구의 잘못도 없는 나의 직장생활에서 느낀 지난함을 허공에 대고 소리치고 있을뿐이다.
그렇게까지 화가난데에는 정말로 그렇게 될까봐 겁이 나는 마음때문이었다. 그녀가 과연 그게 가능할까? 하는 표정으로 단호하게 했던 그 말처럼 어느순간 다시 영양사 일을 하고 있을까봐, 너무 두려웠다.
'배운 게 도둑질 인걸 어찌하겠는가.' 라고는 생각하지만 다른 일을 하기 위해 무던히도 알아보고 애썼다. 그리고 실제로 몇군데에 지원하여 일을 할 기회도 얻었다. 하지만 나는 입사를 거부했다. 막상 가려니 사회초년생처럼 처음부터 시작하는게 겁이 났다. 그러니까 처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알아서 싫었다. 사회초년생때처럼 이상한 농담을 거는 사람때문에 하루를 망치는 일은 없겠지만 업무를 내 것으로 만들기까지 걸릴 시간과 노력을 다시 겪기 싫었다. -급한 성격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익히기 위해 안달내며 스스로를 채찍질 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자 다시 영양사 일을 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타다-
예상했던 전개가 시작된다.
집근처에 영양사 자리가 하나 났다.
집에서 가깝고 근무시간이 짧은데 다른곳 보다는 페이가 더 많다. 그리고 챙겨야하는 끼니와 사람수도 적었다.
면접을 보고 출근을 했다. 영양사 일자리 중에 연봉 다음으로 중요시 여기는건 조리원의 성격인데, 두 분은 정말 좋으셨다. 믿을지 모르겠지면 여태 첫인상에서 ‘한성깔 하시겠다’싶은 분이 한 명도 없던 급식시설이 없었다. 인수인계를 시작하니 내 생각보다 더 좋은 분들이었다. 이런 분들만 만났더라면 영양사 일을 안하겠다는 결심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첫째날 퇴근을 했다.
출근 둘째날 어수선한 아침시간이 지나고 단체급식의 하이라이트 중식시간이(고객사의 임원과 직원, 기타 손님들까지 가장 많은 인원이 밥을 먹는 시간)다가왔다. 숨이 막힐것 같다. 어제처럼 사람들이 들어와서 나를 쳐다보고 나의 인사를 받고, 내가 배식해주는 국을 가져가고... 그러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나를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죄없는 그들이 무섭게 느껴졌다. 어떻게 그곳에 서있지?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그런 대단한 일을 내가 할 수 있단 말이야? 말이 안됐다.
나는 고민했다.
이 좋은 기회를 발로 차버릴지 억지로 발을 붙이고 서 있을 것인지. 하지만 다시 배식시간을 떠올리자 여기 있어야할 수많은 이유들이 다 허상처럼 느껴졌다. 나는 여기 서 있을 자격이 없다.
.
.
.
.
.
정장을 입은 채로 자주가던 카페에 갔다. 다행히 친한 바리스타님이 “어디 면접이라도 다녀오셨나봐요?”라는 말은 건네지 않으셨다. (그래서 이집을 사랑하는거지만) 나는 루저 외톨이 쎈척하는 겁쟁이가 되어 앉아있었다. 한 가지 날 위로하는 사실은 미용사의 예측이 틀렸다는것 정도.
하지만 또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내 인생은 그렇게 영양사 일을 관두고 남편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 않을테니. 내일과 내년이 있고 면허증이 살아있는 이상, 미용사에게 섣부르게 당신이 틀렸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때의 불안을 잘 극복하고 지금은 000에서 일하고 있다.라고 끝맺고 싶지만 나는 여전히 백수고 일자리는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