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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적인 하루 Jul 13. 2022

#1. 주토피아

별별 이야기



동물원을 가지 않은 지 아주 오래되었다. 동물원의 마지막 기억은 유치원에서 간 짧은 현장학습이었던 것 같으나, 이 또한 희미해서 이게 정말 내 마지막 동물원인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 기억이 딱히 유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물원 곳곳에서 나던 악취. 그 악취는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나던 비료 냄새보다 더 지독했다. 회색 시멘트 바닥을 맴돌던 사자, 철창을 두드리며 꽥꽥 소리를 지르던 원숭이. 몇 해가 지난 뒤 그 동물원에 다시 간 동생은 미친 원숭이라 불렀다. '침도 뱉고 소리도 지르고, 정말 미쳐 보였어'


그렇게 동물원은 내 기억 저 뒤편에 둔 채로 한동안 내 삶에서 사라졌다. 내 삶에서 사라진 동물원은 내 세상에서도 사라진듯했다. 그리고 어느 날 펫 샵의 실상이라는 영상이 sns를 떠돌았고, 한 동물원에서 방치된 동물들이 떠돌았다. 지금껏 늘 있었던 그 일들에 대해 사람들은 새삼스레 반응했다. 아프리카 사냥 투어에 관한 다큐가, 전통문화를 빙자하여 돌고래를 학살하는 것에 대한 다큐가 쏟아졌다. 그러면서 동시에 귀여운 동물 콘텐츠도 쏟아졌다. 애완~를 기르는 유튜버들, 복슬복슬한 비숑도 많이 보였다.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들은 다시 각광받았다. 친구 s는 그때 페르시안 고양이를 임시 보호하고 있었다. 


"페르시안 고양이는 부의 상징 같은 거였잖아. 왜 버렸지 "

"그러게 이마에 담배빵 자국이 있어. 질려서 버렸나 보더라"


깨비라 이름 붙여진 고양이의 이마를 다시 봤다. 뼈가 살며시 보였다. 깨비는 짧게 만난 제 임시 주인이 문 앞만 다가서도 금방 울었다. 처음 보는 내게도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몸을 비볐다.

이제 나는 펫숍에서 왔을게 뻔한 동물을 보면 죄책감에 멈칫하게 된다. 귀엽고 작고 아름답지만 그렇지만.

이 냉온탕이 공존하는 그때 다시 동물원이, 아니 동물이 내 세상에 들어왔다. 내가 살던 도시에는 아주 길고 큰 펫숍 거리가 있었다. 십여 년이 넘게 걸어 다니던 그 길에서 , 그 유리창 너머에 있던 작은 생명체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저 작은 것이 어디서 왔을까. 저 애의 엄마는, 아빠는. 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시멘트 바닥을 우울하게 맴돌던 사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귀가 찢어질 듯 소리를 질렀던 미친 원숭이를 보며 가여운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다.


스물세 살이 되던 1월, 친구와 한 달간의 남미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여행 중간중간 사막에서, 정글에서 나는 동물원에서만 보던 동물을 만났다.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던 광활한 사막의 여우라던가, 무리 지어 다니며 내가 탄 지프차를 빤히 보던 비쿠냐, 진흙탕 물 위로 얼굴을 잠시 내밀었다가 다시 제 길을 가던 악어 그리고, 나무 위에 평온히 앉아있던 미치지 않은 원숭이. 그들을 만났을 때 나는 어떠한 악취도 맡을 수 없었다. 건조한 모래 냄새나, 축축한 흙냄새뿐이었다.


그래서 상상해 본다. 당신들이 주인공인 세상. 문명의 이기는 저 먼 기억의 뒤편에 있길, 누구도 당신을 독방 같은 곳에 가두지 않는 그곳. 굴복과 순종의 기억만 가득했던 인간 세상의 기억은 옛날이야기라며 떠들 수 있는 그런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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