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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적인 하루 Aug 02. 2022

저 전우치 좋아해요.

호호

저 전우치 좋아해요.


얼마 전 모임에서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이야기를 하다 넘어간 주제였다. 잔잔하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들이 나왔고 그 영화가 얼마나 좋았는지 어떤 생각할 거리를 주는지 저마다의 이유를 말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한껏 상기되어있었다.


“서정 씨는요? 어떤 영화 좋아해요”

“저는…”

사람들이 눈치 채질 못할 만큼 짧게 고민했다. 세상에 많은 좋은 영화들이 있지 근데 내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는 영화들은… ‘좋다’의 기준이 몇 번이고 즐겁게 볼 수 있다의 기준이라면. 내 입에서 나올 영화들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나, 잔잔한 일본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저는 전우치 좋아합니다. 히어로물을 좋아하는데, 뭐 마블 영화 어벤저스는 열 번도 넘게 봤고 판타지도 좋아요 트와일라잇, 해리포터는 셀 수 없이 많이 봤어요. 영화관 가서 유일하게 두 번이나 본 영화는 알라딘 실사판이에요. 무려 4디로 봤어요”


전우치? 짧은 정적 후에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 사람들이 깔깔 웃었다. 전우치가 웬 말이냐며. 마블까진 그렇다 쳐도 전우치는 너무하지 않냐고 그런 사람 처음 봤다고. 사실 나는 얼마 전에도 전우치를 한번 더 봤다.


“저는 권선징악이 좋아요”

그럴듯한 이유를 덧붙여야 할 것 같아 재빠르게 의견을 덧붙였다. 사람들을 설득할 만한 그럴듯한 이유를 더해야 할 것 같았지만 전우치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심플하게 남는 것이 좋을듯하여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모임이 파한 뒤 단톡방에 전우치 ost를 추천했다. 쿵착쿵착 얼마나 신나다고.


사실 나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도, 봉준호 감독의 영화도 좋아한다. 박찬욱 감독 영화에서의 강박적인 미장센을 좋아하고, 봉준호 감독 영화의 비꼬는 시선도 좋아한다. 옥자나 설국열차 같이 신선한 상상도 좋아한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시리즈는 전 편을 봤고 몇 번이나 봤다. 비포선셋의 에단 호크를 디즈니 플러스 ‘문나이트’에서 만났을 때 내 기억 속 그와 달리 할아버지가 된 그를 보며 서운한 마음이 들 정도로 많이 봤다. 카모메 식당 같은 잔잔한 일본 영화도 잘 봤다. 대만영화의 순수한 로맨틱 코미디도, 지브리의 애니메이션도 꽤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즐기는 편이다.


전우치를 좋아하는 사람 치고 꽤 다양한 영화를 보는데? 하고 생각한다면 그건 편견이라 말하고 싶다. 왜 전우치를 좋아하는 사람은 영화를 보는 깊이가 낮다고 생각하는가.


훨씬 화려한 마블 히어로 영화들을 뒤로하고 전우치를 말한 것은 요즘 나는 미국식 히어로물에 질렸기 때문이다. 한땐 다양한 히어로들이 세상을 구하는 것이 흥미로웠지만 지금은 아! 또 다른 미국인이 아마 미국 남성이 세상을 구하겠군 하는 마음으로 다음 편이 기대되지 않는다. 세상은 미국이 쥐고 흔든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넣었을 샹치는 어쨌거나 미국인이다. 다들 천하무적처럼 그려지는데 이상한 지점에서 약해지는 모습은 개연성이 떨어진다. 떨어지는 개연성과 더불어 디즈니가 회사 하나하나를 인수할 때마다 더 넓어지는 세계관은 그들 세상에 들어가기 전 높디높은 진입 장벽을 세우는 것 같다. 닥터 스트레인지를 보기 위해 완다 시리즈를 다 봤지만 정작 닥터 스트레인지는 보지 않았다.


그때쯤 다시 본 것이 전우치였다. 오랜만에 다시 꺼내본 전우치는 내 기억 속 전우치 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 물론 그 매력의 상당 부분은 참치 강동원배우의 열연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 외에 전우치가 가지고 있는 매력도 좋았다. 시공간을 오 다니는 그. 요행을 바라고 이기적인 그. 세계를 구한다 하는 너무 진지하고 무거운 임무가 아니라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제 몫을 챙기지만 인류애는 있는 보통의 인간 같은 그. 전우치는 여전히 매력적이었지만 2009년에 개봉된 영화라 2022년의 해상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그러니, 2022년의 새로운 전우치가 나와주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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