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
너는 여름을 좋아하잖아. 꽤나 단정적인 말이었다. 내가? 나는 여름이 좋은 게 아니라 여름에 노는 걸 좋아해. 그건 엄연히 다르지. 물놀이라던가, 여름밤에 야외에서 마시는 맥주 같은걸 좋아하는 거야. 그뿐이야.
내가 여름을 좋아한다고 단정한 사람은 한 명이 아니었다. 여름이 왜 싫은지 몇 번의 해명을 하다 지쳐 그렇게 타의적으로 여름을 좋아하게 되었다.
응, 나 여름 좋아하지…
고백건대 나는 여름을 아주 오랫동안 싫어했었다. 여름의 그 습함이 싫었고, 몸에 열이 많아 여름이 되면 축 쳐지는 그 기분도 싫었다. 땀은 또 어찌나 많은지 한걸음 한걸음에 줄줄 흐르는 땀이 불쾌했고 바람이랍시고 부는 한낮의 뜨뜻한 바람도 싫었다. 내가 여름을 싫어한 데에는 엄마도 한몫했다. 뜨거운 여름날 에어컨의 통수권은 엄마에게 있었고 여름은 더운 게 맞다는 그녀의 지론에 따라 에어컨을 켜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겨울은 추운 게 맞고 여름은 더운 게 맞지만 확실한 건 내 체력은 여름과 맞지 않았다. 더위에 약한 내 체질 말고도 여름의 싫은 점은 더 있다. 쉽게 벌레가 꼬이고, 음식이 빨리 상하고... 여름이 왜 싫은지에 대해 더 구구절절 늘어놓을 수 있다. 귀찮고, 신경 쓸게 많은 계절. 내게 여름은 딱 번거로운 계절이었다.
“나는 그렇게 땀이 흐르는 게 좋던데 “
여름은 더운 게 맞다. ( right )라는 엄마는 나와는 반대로 땀이 줄줄 흘러서 여름이 좋다 말했다. 그 뜨거운 열기가 좋다고. 라 말하는 땀에 젖은 나와 달리 보송보송했다.
좋아하는 것이 싫어지기도 하고 싫어하는 것이 좋아지기도 한다. 둘도 없을 것 같이 뜨거웠던 관계가 미적지근한 관계가 되기도 하고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대신했던 관계가 포옹의 인사로 바뀌기도 한다. 뭐하나 단정하기 어렵다. 내가 단언했던 많은 관계들이, 많은 미래들이 예측과 다르게 흘러갔다.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마치 내가 여름을 좋아하게 된 것처럼.
여름을 언제부터, 왜 좋아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선뜻 답하기 어렵다. 여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언젠가부터라 해두자. 여름을 싫어했던 때에도 여름의 눈부신 푸르름을 좋아하긴 했었다. 인스타그램 피드에도 , 내 그림에도 여름의 풍경을 곧잘 담았으니 사실 나도 모르는 새에 여름 입덕 부정기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제 여름이 왜 좋은가.라는 질문지에 꽤 빽빽하게 쓸 수 있다. 낮동안 종일 흘린 땀을 식혀주는 잠깐의 바람, 해를 피해 들어온 카페에서 들이키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눈부시게 반짝이는 여름의 채도 높은 초록, 물가에 가면 주저 없이 뛰어들 수 있는 완벽한 온도, 여름밤이면 선심 쓰듯 불어오는 바람.
여름은 더운 게 맞고, 이젠 여름이 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