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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적인 하루 Oct 19. 2022

공짜 안주 좋아하면 대머리 되나요?

호불호

기본 안주가 없는 술집이 섭섭하다.

손가락과자( 마카로니 뻥튀기) , 프레첼, 강냉이,땅콩 같은 마른안주가 없는 술집 말이다. 안주로 배를 불리고 싶지 않은 그런 날이 있지 않나. 그렇다고 술만 마시기엔 아쉬운 그런 날. 간장 종지의 땅콩이라도 좋으니 작은 환대가 있으면 좋겠다. 웰컴 푸드처럼 “반갑다, 어서 들어와 앉아” 하는 그런 기본 안주가 있으면 좋겠다.

*마카로니 뻥튀기를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손가락과자라 불러왔다.


비싸서 자주는 못 갔지만 도시 여성의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가던 서촌의 위스키 바가 있었다. 여름보단 가을이나 겨울에 가는 걸 선호하는데, 그냥 왠지 재킷이나 코트를 걸치고 조금 불편한 긴 부츠를 신고 가고 싶은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무거운 문을 열고 겉옷을 벗은 뒤 자리에 앉으면 크림브륄레 그릇에 스콘 같은 뚜껑을 가진 디저트가 호두와 나온다. 안이 딸기잼으로 가득 차 있는 그 디저트는 버터 향과 딸기 향이 폴폴 났다. 기본 안주라기엔 정성스러워 감탄했다. 어찌나 감탄스러웠는지 가볍게 한두 잔으로 끝내려던 술이 세잔이 되고, 넉 잔이 되었지.


동네에 있던 수제 맥줏집은 가벼운 옷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털레털레 걸어 자주 갔던 곳으로 와사비 맛 프레첼 과자와 피넛 버터가 가득 찬 프레첼 과자가 나왔다. 무려 두 종류나 말이다. 케첩 종지로 쓰였던 작은 그릇에 수북히 담겨 나왔는데 코젤 흑맥주와 특히 잘 어울렸다. 사장님은 자주 갔던 나를 알아보고 안주로 시킨 감자튀김 그릇에 과자를 잔뜩 부어 주시곤 했다. 그렇게까지 해주시는데 별수 있나, 한 잔 더 시켜야지.


대학교 근처의 맥줏집엔 설탕이 가득 발린 튀긴 건빵이 기본 안주였다. 김치통만 한 투명한 통에 건빵을 가득 담아두고 셀프로 먹는 시스템이었는데 점원 눈치를 보지 않고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가벼운 지갑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친구들과 갈 수 있어 자주 가곤 했다.


여러 안주가 좋지만 내가 가장 선호하는 기본안주는 강냉이다. 요즘 자주 가는 호프집 주방 쪽엔 허리께까지 오는 큰 강냉이 봉지가 존재감을 과시하며 자리해 있다. 더 달라해도 괜찮다는 위안을 주는 크기다. 그 강냉이는 큰 손바닥만 한 깊은 볼에 가득 담겨 나오는데 매번 사장님! 하고 멋쩍게 부를 필요 없이 시작부터 넉넉히 담겨온다. 그런 안주만 있다면 생맥주 4잔은 거뜬하다. 이 대용량 강냉이는 맛이 적당히 삼삼하여 맥주의 고소하고 쌉쌀한 맛을 잘 느낄 수 있게 해주며 무한대로 들어가 헛배를 불려 음주를 방해하지 않는다. 그점이 내가 강냉이를 손꼽는 점이다.


그런 날은 오지 을테니  말해본다.언젠가 로또 1등에 당첨되어 작은 펍을 열게 된다면 강냉이를 기본안주로 내줘야지. 깊은 나무 그릇에 듬뿍,  손님에게 자주 불리지 않도록 처음부터 가득히 쌓아 나가야지.  같은 손님 섭섭하지 않게.


*혹시나 그저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의심받을까 봐 말하자면, 정말 기본안주 그 이상의 술과 안주를 시키니 의심은 넣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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