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호불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정적인 하루 Oct 12. 2022

스포일 금지

호불호

“야, 사주는 과학이야.”


얼마 전 유명한 철학관을 다녀온 A가 미간에 힘을 주며 말했다. 자신이 본 사주 이야기를 장황히 설명하며 손에 든 맥주캔은 내려놓지도 않고 말하는 A를 보며 나는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매해 신년이 되면 바쁜 우리 집의 누군가에게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들었던 말이거든. 그 누군가는 엄마다. 나와 내 동생이 입시를 볼 때, 아니 그 훨씬 전부터 엄마는 이모들 혹은 절친들과 함께 사주를 보러 다녔다. 용한 철학관은 대체 몇 개인 건지. 이맛 저 맛 아이스크림 맛보듯 엄마는 이 동네 저 동네 가리지 않고 다녔다. 사주를 맹신하지 않고 그저 참고용으로만 본다기엔 거기에 쓰이는 시간과 돈이 꽤 들어 보였다. 무엇보다 그녀의 태도는 사뭇 진지했다. 엄마같이 본인 논리가 강한 사람이 신년운세를 보러 나서며 ‘사주는 과학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친구 a에게서 보였다.


나는 운세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보지 않는다. 가 아니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가끔 무료 운세를 심심풀이 땅콩으로 보기도 하고 풍수지리니, 귀신이니 각종 미신을 조금은 믿기기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것은 아니고, 빨간펜으로 글씨를 쓰면 괜히 찝찝한 정도까지 믿는다. 일상 미신과 사주, 신점을 연결 짓는 것에 반발심을 가지는 이들도 있을 것 같지만, 내게 운세를 보는 일은 딱 그 정도인 것이다. 그런데도 운세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운세를 볼 때의 나의 기억들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세를 가장 처음 봤던 기억은 내가 중학생 때였다. 영화관 건물 내부에 위치했던 작은 타로 집이었는데 동네에 유일하게 있던 영화관이어서 내 또래들도 많이 갔던 꽤 유명한 타로 집이었다. 그때 나는 연애운과 코앞에 있었던 기말시험 운을 봤었다. 공부도 연애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욕심 많은 학생이었군. 타로 점술 사는 그해 내가 운명의 상대를 만날 것이며, ‘이번 기말고사엔 빵빠레를 울릴 것이다’ 라 말했다. ( 정확히 ‘빵빠레’라고 말했다 ) 타로 가게의 신비한 분위기에 압도당했던 나는 그 말을 곧장 믿었다. 그때 교과서 한자라도 더 볼걸. 나의 자기 합리화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던 것일까. 당연히 그해 기말고사는 최악의 성적으로 빵빠레를 울렸고, 운명의 상대는 지금까지도… … 아니, 그런 게 실존은 하는 걸까? 운명의 상대?


정말 운세를 보지 않겠다 마음먹은 것은 한창 취업을 준비할 때였다. 당시 나와 함께 취준생이었던 B와 막막한 앞날을 알 수가 없어 철학관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타로, 신점, 사주 가리지 않고 점 보는 것을 즐기는 친구의 강력 추천을 받아 간 곳이었다. 골목골목을 돌아 들어간 철학관엔 사랑과 전쟁의 판사를 닮은 아저씨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앉아있었다. 아저씨가 딱딱하고 권태로운 얼굴로 내 삶을, 내 친구의 삶을 읊기 시작했다. 용하다더니 정말 용한 사람이었군. 우리는 결혼 운까지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 찐 이다. 진짜 대박이야 대박’ B도 나도 흥분하며 손뼉을 쳤다. 분명 맞아떨어지는 것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그날 집에 돌아와서야 알았다. 내 기분이 바닥을 친다는 것을. 해리포터 마지막 시리즈의 반전을 들었을 때 그때 그 기분과 비슷한 결의 기분 나쁨이었다.


취업 후 취준생이었던 친구와 역시나 용하다는 점집에 간적이 있는데, 어둡고 좁은 동굴 같은 공간을 생각했던 것과 달리 점집은 도심의 오피스텔이었다. 그때 점을 봐주셨던 분은 관상, 타로, 사주 세 가지를 다 보셨던 능력자였는데.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그녀의 마케팅 전략일지는 모르나 아주 날카롭고 직설, 무례에 가까운 말을 살처럼 날렸다. 내 인생은 지금껏 구름 낀 생이었다던가, 친구에겐 재능도 재주도 없으니 남편 잘 만나 그 돈 받아먹을 삶이나 계획하라는 둥. 그러나 다행히 두 사람의 우정 궁합은 좋다로 급히 마무리 지었지만 친구도 나도 딱히 기분 좋지 않았다. 나는 내 인생에 딱히 불만이 없었는데 괜히 내가 대단한 불운의 아이콘이 된 느낌이었다. 그녀의 점괘와는 달리 친구는 그 해 원하던 기업에 들어갔고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은 친구가 아니다. 그러니 내 삶에 대해 그렇게 단언했던 그녀를 붇잡고 묻고 싶다.  왜 그렇게 단언하셨나요?


점이든, 사주 철학이든 그 무엇이든, 또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운세를 보고 돌아오는 내 발걸음은 언제나 무거웠다. 이걸 재미로 본다니. 전혀 재미없는걸. 나의 삶에 단 한 걸음도 들어온 적 없는 사람들이 나와 대화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내 인생에 대해 30분 안으로 축약해서 말해주는 건 정말 별로다. 그들의 혀끝에 내 인생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거 같고 그래서 자연스레 공손해지는 내 모습도 정말 별로다.


“진짜 안 볼래? 진짜 용한데”

“어 난 안 볼래”

다 먹은 맥주캔을 구긴 A가 다시 한번 물었다. 한 달 전에 예약해야 하는 요~옹한 곳이란다. 재미로라도 한번 보라는데 무슨 한순간 재미를 위해 한 달 전부터 예약까지 하니. 그 대신 앉은자리에서 인터넷 운세를 봤다. 3분 만에 본 인터넷 운세에선 올해는 금전운이 나쁘지 않고 주변 사람들한테 잘해야 하며 나태해지기 쉬우니 성실해야 한단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주변 사람들을 더 사랑하고, 성실히 살아야지. 나는 딱 그까지의 운세만 보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밑줄을 긋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