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앞에서초록씨 Aug 09. 2020

안부를 전할게

로꼬 ‘오랜만이야’

기다림이 있다는 것은

적어도 내일을 밀어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얼마 남지 않았다.

2020년 9월, 로꼬가 전역을 한다.


지난해 2월 초, 그는 EP 앨범을 발매하면서 <오랜만이야>라는 곡에서 그의 입대 소식을 밝혔다.


'입대가 많이 늦었지 아마도

2월 7일에 들어갈 것 같아 논산으로'                                  


나는 로꼬의 팬이다.

팬클럽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랩을 좋아하고 그의 노래들을 즐겨 듣는다.

 

노래를 통한 입대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는 놀랐다. 군대 갈 때가 지나기는 했지, 끄덕이면서도 갑작스러웠다. 당분간은 그의 새로운 노래를 못 듣는다는 점에서 아쉬워하다가는 불현듯 양쪽 팔뚝을 어루만졌다. 음악을 통하여 자신의 소식을 전하는 그의 말하기 방식에 전율을 느꼈던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래퍼는 랩을 통해, 노래를 통해 자신의 근황을 전달했다.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문장들을 통하여 나의 현재를 전달하기로 말이다. 그리고 한 사람을 떠올렸다.


안부를 전할게(Photo by Debby Hudson on Unsplash)


안녕!  

오랜만에 안부를 전해.

벌써 팔월이네.

올해의 세 번째 계절이야.


너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가 1월쯤이었나?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던 것 같아.

2월 중순에 퇴사를 하고 4월 말에 이사를 했어.

많은 변화가 있었어.


내가 사람을 참 좋아했잖아.

네가 신기하게 여길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교류했고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일에 늘 흥미가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교류하고 있는 사람들이 몇 되지 않아.

이주하고 나서 새로운 사람은 하나도 사귀지는 못했고.

나에 대하여도, 타인에 대하여도 들여다보고 나니 사람이 어려워지더라고.

맺어온 모든 인간관계를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뭐랄까... 조심스러워졌어.

다른 이에게 먼저 다가가서 손 내미는 일은 하지 못할 것 같아.

내가 그렇게 되었어.



그리고 나는 새로운 도시에 적응하고 있어.

초록 빛깔이 참 많은 게 가장 마음에 들어.

사방이 공원이고 나무고 아이들이야.

십분 정도 거리에 고등학교가 있는데 그 근처를 가게 되는 날엔 네가 생각이 나더라.

요즘도 토요일마다 학교 앞 문구점에서 스티커를 사는 아이가 있을까?

한가득 예쁜 글씨를 담은 포스트잇을 친구 교과서 안에 끼워두는 아이가 있을까?

네 다이어리에 가득했던 스티커들과

나에게 도착했던 너의 동글동글 귀여운 필체가 떠오른다.

너를 향해 조심스럽게 풀어내던 나의 이야기들도 잘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어.

나에게 삼십 분의 시간을 주고는 내 목소리에 집중하던 너는 참 따뜻한 눈빛을 가졌던 것 같아.


문득 알게 된다.

1999년, 나의 독자와 청자는 모두 너였구나.


2020년,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어.

아이들과 지내면서 느끼거나 깨닫게 된 바를 기록하고 있어.

무엇보다 첫 문장을 쓰는 게 가장 힘들더라.

그래서 글 쓰다 보면 첫 문장은 여러 번 바뀌곤 해.

순간의 깨달음, 순간의 고민, 순간의 웃음을 글을 읽는 이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지더라고.

아직은 능숙하지 않아 노트북 앞에서 머뭇거릴 때가 많지만 쓰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겠지, 라는 기대를 해.

열매가 보이지 않지만 조금 더 가봐야 할 것 같아.

그러고 보면 포기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기회인 듯해.

나는 그 기회를 얻을 만큼 열심히 하지는 않았으니 조금 더 움직여 보려고.



비가 많이 온다.

그곳은 괜찮을까?

너와 가정 모두 안전하기를.


잘 지내길 바라.

안녕!



- 이천이십 년 팔 월 구 일,

             너의 친구 수박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