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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Feb 03. 2022

치통, 그리고 충치

너무 쉽게 놓아버렸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

설날 전날 늦게까지 차례 준비를 하고, 가버리는 휴일 밤이 아까워 넷플릭스를 보고 거의 잠을 안 잔 게 문제였을까. 치통이 찾아왔다. 썩을 만큼 썩어버린 사랑니. 그 옆의 골칫거리 충치.


 별이의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이후 약 3년 동안은 내 몸도 마음도 추스를 여유가 없었다. 아이의 재활치료가 최우선이었기에 내 치과 치료를 챙기지 못했던 게

결국 화를 불렀다.


 한 번 두 번 미룬 치과는 날이 갈수록 가기 두려운 곳이 되어버렸고, 급기야 예전에 때웠던 어금니의 금 조각이 쏙 빠지고 나서야 극심한 고통을 안고 치과를 다시 찾았다.


 뿌리까지 깊이 썩어버렸다는 엑스레이 사진 속의 어금니는

육아로 몸도 마음도 지쳐버려 껍데기만 남은듯한 내 모습처럼 느껴졌다. 건드리면 바스러질 것 같이 약해져 버린 그 이를 우리 동네 친절한 치과의사 선생님은 기어코 살려냈다.


"좀 더 씁시다. 조금만 더 두고 봅시다.

아직은 빼버릴 때가 아니잖아요.

쓰다가 정 아프면 그때 뺍시다."


 렇게 1년여 기간 동안 더 버텨주었던 충치가 이제 더는 못 견디겠는지 내 안에서 비명을 지르는 듯 했다. 연휴 기간 동안 통증으로 이틀 내내 잠을 못 잤다. 미리 받아두었던 소염진통제에 타이레놀까지 먹어도 치통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나마 미지근한 물을 입에 넣으면 잠시  통증이 가셔서, 잠자리에 눕지도 못하고 침대에 엉거주춤 앉은 채로, 생수병으로 연신 입을 축이며 긴긴밤을 지새웠다.


 드디어 아침. 9시 반에 문 여는 치과에 9시 10분부터 가서

문 앞에 서있었다. 잠을 못 자 퀭한 눈을 하고 연휴 끝난 날  병원 앞에 서있는 환자의 절박함이 느껴졌는지, 예약 없이 제일 먼저 진료를 볼 수 있었다.


 결국 사랑니는 빼고, 문제의 충치는 일단 신경치료를 시작했다. 이러고도 여전히 아프면 결국 발치해야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해 보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마취가 풀리고 입에 문 솜을 빼도 아까의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치통은 일단 사라졌다. 애물단지 충치는 여전히 내게 불안 요소이지만, 고치고 붙이고 신경치료를 해서 어떻게든 갈 수 있는 곳까지 데려가기로 했다. 마치 재난영화에 나오는 부상당한 동료처럼. 내 발목을 잡고 있지만 쉽게 버릴 수가 없다.


 오늘만큼은 꼭 빼버려야지 마음먹고 병원에 갔지만 여전히 내게 남은 충치. 아직 버리지 말자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가 묘하게 마음을 울렸다. 쉽게 손을 놓아버리는 삶을 살아온 나였기에. 내게 주어진 상황을 탓하며 늘 혼자 숨어버리곤 했던 나였기에. 아직 내 잇몸에 붙어있는 충치는 내 쉬운 손절을 꾸짖는 것처럼 느껴졌다.


 멀어지, 지킬 자신이 없으면, 내게 필요 없고 의미 없는 존재인양 합리화시켰던 비겁했던 과거의 손절들을.  사람에 대해,  모임이나 단체에 대해.   또는 나 자신의 꿈에 대해 너무 쉽게 손을 놓아버렸던 것은 아닌지.


소염제와 항생제. 치실과 워터픽으로, 이제는 약해지고 멀어져 가는 소중한 관계 하나를  지켜나가야 할 때다.

통증은 떨어져 나가기 싫다는 외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제발 자기를 봐달라는.


잃어버린 것들이 생각나 미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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