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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May 15. 2020

무기력

나는 결코 괜찮지 않았다.

 나는 그럭저럭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상황을 잘 견뎌왔다고 생각했다. 원래 그다지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고, 집 밖에 며칠씩 나가지 않아도 별로 괴롭지도 않다. 카페에 가서 커피를 못 마시는 게 좀 아쉽기는 하지만,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해서 올봄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육아가 가장 문제지만, 가까이 사는 친정 엄마가 여전히 매일 와주셔서 그래도 답답함이 덜했고, 집안일에도 점점 게을러져 안 치우고, 설거지도 몰아서 하고, 가끔 배달 음식도 시켜 먹으면 그럭저럭 할만했다. 최고의 난항은 역시 온라인으로 개학한 큰 아이 봄이의 수업을 챙기는 일이었는데. 아예 원어민 영어 수업시간에는 옆에 붙어 앉아 청강하고, 다른 수업도 하나하나 준비물에 숙제까지 챙겨주는 일은 좀 지치기는 했다. 하루 종일 쉬지 못하는 느낌에 점점 에너지는 떨어져 가고, 밤이 되면 피로가 몰려와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 시청조차 제대로 못하고 그대로 잠드는 날이 늘어다.

 여전히 잠은 부족했다. 아이들이 밤늦게 잠이 들면 할 일은 뭐가 그렇게 많은지 새벽까지 깨어 있다가 잠드는 일이 허다다. 하지만 늘 무언가 마음속에는 갈증이 남아있다.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도 부족했다. 그래도 다음날 아침에는 어김없이 온라인 실시간 수업을 챙겨야 하기에 잠을 조금이라도 자 둬야 했다. 피로가 극에 달할 때쯤이면 주말이 왔고, 그제야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점심때가 다되어 일어났다.

 어제 개학을 일주일 연기한다는 교육부의 발표가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보니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납득도 되었다. 아직 학교는 위험하다는 데에 나도 동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운이 빠졌다.

 확진자가 사는 동네에 누군가 그를 비난하는 벽보까지 붙다는 뉴스를 봤다. 아마 그 사람은 화가 무척 났나 보다. 나는 화가 난다기보다는, 한없이 무기력해졌다. 모두들 각각의 방식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표출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나아질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자신을 한계점까지 끌어다 놨던 것이다. 말로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고 떠들어대고, '집콕 생활'도 나쁘지 않다며 허세를 부렸지만, 나는 결코 괜찮지 않았다. 개학은 1주일 연기되었다 쳐도, 앞으로 얼마나 더 상황이 나빠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미 한바탕 난리가 났었던 대구를 목격한 이후이기에, 이 도시의 안위를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제발 운 좋게 너무 많이 확산되지 않고 넘어가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종일 아이들에게 큰 소리를 낸 것 같다. 숙제를 늦게 하고, 주변을 어지럽히고 다닌다고 잔소리를 했는데, 아이들은 아마 더 예민해진 엄마를 직감하고 눈치를 보며 하루를 지냈을 것이다. 오늘은 드디어 큰 아이도 학교에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학교 안 가서 그렇게 좋다더니, 너도 한계에 다다랐구나 싶었다. 둘째 별이초등 1학년에게 지급되는  학습 꾸러미를 추가로 받으러 학교 보안관실에 같이 갔었는데, 굳이 나를 따라 차에서 내리더니 운동장을 밟아 보고, 한 줄로 주차되어 있는 학교버스를 애잔하게 바라보았다. 둘째는 발달이 느려 공립 특수학교에 입학했는데, 이 학교의 노란 학교버스를 탈 생각에 들떠 학교 갈 날만을 2월부터 손꼽아 기다렸었다. 오늘 오랜만에 버스라도 보고 가니 좋은지, 다시 얌전히 차에 올라 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밤, 잠을 자야 하지만 맥주캔을 땄다. 맥주는 무알콜, 커피는 디카페인. 이 험난한 시대에 내 몸을 지키기 위 선택의 결과물. 덜 짜릿한 거품이 목을 타고 내려간다. 무엇을 기다려야 할지 갑자기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은연중에 기다렸던 것은 무엇일까. 개학일까. 그거라면 겨우 일주일 미뤄진 것뿐인데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언젠가는 좋아지겠지'라는 생각의 '언젠가'가 갑자기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다. 이렇게 계속 상황이 조금 좋아질 만하면 또 일이 생길 것이고, 좋아질 것이라 믿었던, 늦더라도 반드시 올 거라 믿었던 그 '언젠가'가 사실은 실체가 없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들이 나를 초조하고 무력하게 만들었다. 희망이 사라진 세상의 공허한 느낌처럼. 요 며칠간 특정 장소와 관련된 확진자 100명이라는 뉴스가 사람을 이렇게 좌절시켰다.

 정말로 post 코로나 시대를 준비해야 할 때가 온 것일까. 내 마음부터 다시 잡아야 할 것 같은데, 점점 만사가 귀찮다. 우울한 오늘. 아무래도 오늘을 빨리 보내버려야 할 것 같다. 내일은 뭐라도 하나 오늘보다는 낫기를 바라며 어서 잠드는 게 차라리 낫겠다. 무기력이 깊어지기 전에 헤어 나올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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