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전날 늦게까지 차례 준비를 하고, 가버리는 휴일 밤이 아까워 넷플릭스를 보고 거의 잠을 안 잔 게 문제였을까. 치통이 찾아왔다.썩을 만큼 썩어버린 사랑니.그 옆의 골칫거리 충치.
별이의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이후 약 3년동안은내 몸도 마음도 추스를 여유가 없었다.아이의 재활치료가 최우선이었기에내 치과 치료를 챙기지 못했던 게
결국 화를 불렀다.
한 번 두 번 미룬 치과는 날이 갈수록 가기 두려운 곳이 되어버렸고, 급기야 예전에 때웠던 어금니의 금 조각이 쏙 빠지고 나서야극심한 고통을 안고 치과를 다시 찾았다.
뿌리까지 깊이 썩어버렸다는 엑스레이 사진 속의 어금니는
육아로 몸도 마음도 지쳐버려 껍데기만 남은듯한내 모습처럼 느껴졌다.건드리면 바스러질 것 같이 약해져 버린 그 이를우리동네 친절한 치과의사 선생님은기어코 살려냈다.
"좀 더 씁시다. 조금만 더 두고 봅시다.
아직은 빼버릴 때가 아니잖아요.
쓰다가 정 아프면 그때 뺍시다."
그렇게 1년여 기간 동안 더 버텨주었던 충치가 이제 더는 못 견디겠는지 내 안에서 비명을 지르는 듯 했다. 연휴기간 동안 통증으로 이틀 내내 잠을 못 잤다. 미리 받아두었던 소염진통제에 타이레놀까지 먹어도치통은 가라앉지 않았다.그나마 미지근한 물을 입에 넣으면 잠시 통증이 가셔서, 잠자리에 눕지도 못하고 침대에 엉거주춤 앉은 채로, 생수병으로 연신 입을 축이며긴긴밤을 지새웠다.
드디어 아침. 9시반에 문 여는 치과에 9시 10분부터 가서
문 앞에 서있었다. 잠을 못 자 퀭한 눈을 하고 연휴 끝난 날 병원앞에 서있는 환자의 절박함이 느껴졌는지, 예약 없이 제일 먼저 진료를 볼 수 있었다.
결국 사랑니는 빼고, 문제의 충치는 일단 신경치료를 시작했다. 이러고도 여전히 아프면 결국 발치해야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해 보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마취가 풀리고 입에 문 솜을 빼도 아까의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치통은 일단 사라졌다.애물단지 충치는 여전히 내게 불안 요소이지만, 고치고 붙이고 신경치료를 해서 어떻게든 갈 수 있는 곳까지 데려가기로 했다. 마치 재난영화에 나오는 부상당한 동료처럼.내 발목을 잡고 있지만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오늘만큼은 꼭 빼버려야지 마음먹고 병원에 갔지만여전히 내게 남은 충치.아직 버리지 말자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가묘하게 마음을 울렸다.쉽게 손을 놓아버리는 삶을 살아온 나였기에. 내게 주어진 상황을 탓하며 늘 혼자 숨어버리곤 했던 나였기에. 아직 내 잇몸에 붙어있는 충치는내 쉬운 손절을 꾸짖는 것처럼 느껴졌다.
멀어지면, 지킬 자신이 없으면, 내게 필요 없고 의미 없는 존재인양 합리화시켰던 비겁했던 과거의 손절들을. 사람에 대해, 모임이나 단체에 대해. 또는 나 자신의 꿈에 대해 너무 쉽게 손을 놓아버렸던 것은 아닌지.
소염제와 항생제. 치실과 워터픽으로, 이제는 약해지고 멀어져 가는 소중한 관계 하나를 지켜나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