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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Dec 17. 2019

칼 이야기

끝나지 않을 수도 있는 트라우마

주부가 된 이후로 안하던 요리를 하게 되었다. 주방에서 칼로 야채를 다듬고 가끔은 과일을 깎을 일도 생겼다. 나는 칼을 무서워한다. 칼로 무언가를 자르다가 내 손까지 베일까봐 늘 두렵다. 과일의 껍질을 자르거나 조금 미끄러운 식재료를 자를 때에는 엄청 긴장을 한다. 남들처럼 큰 식칼로 무 껍질을 깎지도 못하고 양파의 꼭지를 뗄 때도 도마처럼 평평한 곳 위에 올려놓고 칼로 자른다. 우리 엄마는 가끔 두부를 자를 때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살살 자르는데 보고만 있어도 아찔하다. 칼에 대한 나의 안 좋은 추억은 일곱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곱 살 때 내가 살던 동네는 한옥과 단층집이 많은 골목에 있었다. 우리 집은 골목의 코너에 있었는데 주방의 벽 한쪽에는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창이 있었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나는 집에서 놀고 있었다. 할머니는 자주 옆집에 드나드셨는데 그날도 옆집 아주머니가 무언가 음식을 했다고 할머니를 부르셨던 것 같다. 할머니는 평소 하시던 대로 대문을 살짝 열어두고 옆집에 다녀오셨다. 나는 할머니가 없는지도 모르고 마루에서 놀고 있었다.
 “어른 안 계시니?”
검은 구두를 신고 우리 집 마당에 들어선 사람은 젊은 남자였다. 어린 마음에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일 대낮이었다. 젊은 남자가 동네에 돌아다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옆집 가셨어요. 아저씨 누구세요?”
 “그래? 난 너희 아빠 친구란다.”

남자는 구두를 신은 채로 우리 집 마루에 들어섰다. 왜 신발을 신은 채로 집에 들어온 걸까.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이상한 사람이 분명했다. 겨우 일곱 살의 나이였지만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소리 지를 거예요. ”
남자는 우리 집 주방 식탁에 있던 검정색 과도를 발견했다. 늘 우리 식구들이 과일을 깎아먹을 때 쓰는 과도였다. 과도를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과도를 내 목 근처로 가져왔다.
“장롱 속에 들어가 있어. 소리 지르면 알지?”
   
할머니 방에 있던 검정색 장롱이었다. 남자는 이불이 아니라 옷이 걸려있는 오른쪽 장롱 칸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모든 것은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많이 무섭지는 않았다. 그 남자가 나를 정말 찌를 것 같은 공포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내가 너무 어려서 그런 일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두운 장롱 속에서 숨죽여 울었다.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긴 시간은 아니었다. 잠시 후에 마루에 있는 인터폰에서 초인종이 계속 울려댔다. 그때의 초인종 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엘리제를 위하여’의 멜로디였다. 초인종은 끝없이 울렸다. 마실 가셨던 할머니가 돌아오니 대문이 닫혀있었던 것이다. 남자가 들어오며 문을 닫았을 것이다. 옆집 중학생 오빠가 담을 넘어서 대문을 열어드렸다고 한다. 할머니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난장판인 안방을 발견하셨다. 장롱의 모든 서랍이 꺼내져 있었고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었다.
“유미야! 유미야!”
애타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나가도 안전하지 않을까.
“할머니....”
용기를 내어 장롱문을 열고 나왔다. 할머니가 계셨다. 할머니를 본 순간 울음이 터졌다. 남자는 이미 주방의 넓은 창문을 통해 도망간 후였다.
   
 대문을 열어두고, 어린 손녀를 혼자 두고 외출한 것에 대해 할머니는 얼마나 자책하셨을까. 엄마와 아빠는 또 얼마나 놀랐을까. 검찰청 수사관이었던 아빠는 겁도 없이 수사관의 집을 털었다며 당장 신고부터 하셨다. 하지만 남자에 대한 아무런 단서도 없었다. 어른들은 아마도 그 사람을 붙잡는 것은 힘들 거라고 말했다. 주방의 넓은 창을 보고 우리 집을 노린 것 같다 했다. 도망갈 수 있는 탈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광복절이 지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는데, 특사로 감옥에서 풀려나왔던 좀도둑이었던 것 같다고 결론이 내려졌다. 남자가 훔쳐간 것은 할머니의 가방에 있던 몇 천원이 전부였다. 탐정소설을 많이 읽은 우리 오빠는 검정색 과도의 지문을 채취해야 한다고 흥분했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주방 창문에는 쇠창살이 달렸다. 대문과 담장의 울타리도 손봤다. 우리 식구들은 내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다시는 나를 혼자 두고 외출하지 않았다. 대문은 언제나 굳게 닫아 두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나에게 별다른 후유증이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만도 한데, 나는 생각보다 큰 공포를 느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그때까지 무서운 것을 본 적이 없어 그 일이 얼마나 큰일 날 뻔한 일이었는지 실감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악몽을 꾸지도 않고 잠도 잘 잤다. 그 남자의 얼굴은 아예 기억나지 않았다. 그때의 상황이 자꾸 생각나거나 장롱이 싫지도 않았다. 깜깜한 공간에 가도 무섭지 않았다. 아마 어렸어도 나의 정신은 꽤나 건강한 상태였던 것 같다. 그 뒤로도 나는 할머니의 장롱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예전처럼 장롱에 혼자 들어가 문을 닫고 놀지는 않았다.


 다만,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고등학생쯤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칼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칼을 보고 있으면 자꾸 손을 베거나 어딘가 찔리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날카로운 것에 의해 눈이라던가 아니면 신체의 다른 곳에 상처가 나는 모습이 영상처럼 내 머릿속에 무한 반복되었다. 아마도 내 무의식 속에는 칼에 대한 공포가 남아있었나 보다. 어쩌면 내 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그때의 무서움을 계속 잊도록 명령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 전까지 내 손으로 과일을 깎는 일은 없었다. 연필도 칼로 깎지 않았다. 잔인한 영화를 원래 못 보기도 하지만, 특히 칼로 인해 상처를 입히는 장면은 볼 수 없었다. 영화 ‘킬 빌’(Kill Bill, 2003년작,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우마 써먼 주연, 칼로써 원수에게 복수하는 내용의 영화. 칼을 이용한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을 멋모르고 봤다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가리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 와중에 잠시 눈에 들어왔던 몇 장면은 이후 내 머릿속에서 끝도 없이 되풀이되었다. 아직도 상처 입은 연기를 하던 배우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대학에서 법을 공부했던 것도 그 일과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늘 세상은 무서운 곳이라고 생각했고, 언제 어디서든 범죄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수사관인 아빠의 영향도 있었다. 실제로 공부를 하며 접했던 수많은 형사 판례 속의 범죄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혹했다. 형법을 공부하고 나서야 그 남자의 정확한 죄명을 알 수 있었다. 주거침입죄와 특수강도죄. 감금죄. 살의가 있었다면 살인미수죄. 범죄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범죄다. 겨우 몇 천원을 훔쳐간 그 남자는 그 짧은 순간에 수많은 범죄를 저지르고 나에게 칼에 대한 공포를 안겨주고 갔다. 어리석은 일이다. 그 몇 천원을 가지고 가서 어디에서 무엇을 했을까. 겁에 질려 있던 어린 아이의 눈초리를 쉽게 잊고 살 수 있을까.

 칼에 대한 공포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많이 익숙해져서 적당히 타협하고 살고 있다. 평평한 바닥에서 안전한 상태로만 칼을 쓴다던지, 예쁘게 깎는 것을 포기하고 대충 썰어버린다던지. 잔인한 영화나 드라마는 아예 보지 않는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극적인 콘텐츠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그 덕에 끔찍한 장면에 대한 머릿속 무한반복현상도 사라지게 되었다.

 ‘트라우마’라는 것이 살아가는 동안 계속 나를 괴롭힐 수도 있었겠지만 다행히 큰 탈 없이 칼에 대한 공포 정도로 그 사건은 내 안에서 마무리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끔찍한 사건이 계속 일어나고 그러한 이야기를 다룬 자극적인 영화, 드라마, 소설 등 각종 콘텐츠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사람들이 잔혹함에 대해 점점 무뎌지는 것이 안타깝고, 걱정스럽다. 그들에게는 그저 하나의 사건일 뿐이지만, 피해자에게는 삶이다. 사건 자체를 극복하는 것도, 그 이후의 삶을 온전하게 살아가는 것도 모두 피해자의 몫이다. 그것은 실로 긴 싸움이다. 범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피해자의 고통에 무심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밤도 나와 내가 아는 모든 이가 무탈하게 보낼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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