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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Nov 24. 2019

밑바닥

한없이 깊은 우물 아래로 내려가 내가 맞닥뜨린 것은 밑바닥이었다

 예전에 우물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하루키의 소설 '태엽감는 새 연대기' 중에 있던 내용이었던 것 같다. 좁은 우물 밑으로 밑으로 끝없이 내려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상상해 보았다. 내가 우물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을. 소설에서 읽은 우물은 마른 우물이었지만 내 우물에는 검고 차가운 물이 있었다.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나는 숨은 쉴 수 있다. 다만 계속 아래로 내려갈 뿐이다. 고개를 들면 머리 위로 우물 입구가 보인다. 처음에 커다랗던 우물 입구는 내려갈수록 점점 작아져서 동전만 해지더니 결국 작은 점이 되어버렸다. 세상과 나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통로는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간다. 어떻게 여기서 빠져나가야 하는지 방법을 알 수 없어 그 작은 점을 응시하며 끝없이 끝없이 아래로 내려가는 나는 무력하다. 어느 순간 내가 정말로 저곳으로 돌아가고 싶은지 알 수 없어졌다.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어 멈추지 않고 가라앉고 있다.

 한때 그런 깊은 우물이 내 안에 있었고, 나는 한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무기력과 우울함이 지배했던 시기였다. 오랜 공부 때문이었는지, 잘 되지 않는 연애 때문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우물 안에서 나오지 않는 나였기에 그 모든 것이 다 잘 안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한참을 가라앉던 나는 결국 우물 밑바닥에 도달한다. 밑바닥. 나는 그때 알았다. 밑바닥에 닿지 않으면 결코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없다. 내려갈 대로 내려갔기에 바닥을 힘껏 차고 다시 올라올 수 있는 것이다. 수면으로, 우물 입구로. 세상으로 말이다.

 우울함에 빠지는 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밑바닥에 한번 닿아보니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알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가리라는 것을. 어떤 어려움도 끝이 있다는 것을.

 종종 세상과 멀어지고 싶어하는 나를 느낀다. 속도가 너무 빨라 숨이 가쁘거나, 너무 시끄럽거나,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을 때 잠시 나만의 우물로 들어가 버리고 싶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이어폰을 꽂고 낯선 동네로 가서 내가 아는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 이제는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 있어 우물에 오래 머물지는 못하지만, 때로는 나를 철저히 혼자로 만드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인 것이다.

제주의 깊은 바닷속에서 내 안의 우물을 보았다


 사진은 제주의 깊은 바닷속이다. 서귀포에서 탄 잠수함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바다는 깜깜하고 추워 보였다. 그리고 무척 조용했으며, 아무것도 없었다. 그곳에서 나는 내 우물과 비슷한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잠수함도 결국 밑바닥에 도착했고, 우리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왔다. 바다의 표면은 바람으로 세차게 요동치고 있었다.

우물의 밑바닥이 생각날 때마다 그 바다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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