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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Jul 20. 2023

2029년 3월 29일의 편지

유미씨에게

Date. 2029.3.29.


유미씨에게.


안녕.


잘 지내고 있나요? 아주 오랜만이죠. 어느새 2029년이 되었으니 유미씨는 어느새 중년의 나이가 되어 있겠군요. 늘 곁에 머물고 있지만 당신 앞에 나타났던 것은 어느새 20년 전의 일이 되었어요. 그때 우리가 만났던 것을 유미씨는 아직도 모르고 있겠지만요.


당신이 태어난 순간부터 당신을 지키는 것이 저의 일이었지만 막상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적은 거의 없었군요. 그러니까 20년 전, 당신이 서른네 살의 나이에 직장과 결혼에 대한 고민으로 깊은 시름에 빠져 있던 그때에 찾아갔던 선릉 역의 한 오피스텔을 기억하나요? 평생 처음으로 용기 내어 점을 보러 갔던 그날 말이에요. 점집에 어울리지 않게 트레이닝 복을 입은 앳된 청년이 앉아 있었잖아요. 그게 저였어요. 최선을 다해 점쟁이처럼 보이려고 했는데 잘 통했는지 모르겠어요. 당신은 그날 깊은 절망에 빠져 나를 찾아왔었죠. 사실 내가 당신을 부른 것이었어요. 그날 당신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거든요. 혹시 기억하나요?



10년 넘게 준비했던 고시를 포기하고 나서 들어간 회사는 당신의 상상처럼 멋진 곳이 아니었죠. 부하직원에게 함부로 대하는 상사와 이기적인 동료직원들 때문에 마음고생 꽤나 했었잖아요. 그중 당신의 가장 큰 고민이었던 연애와 결혼 문제. 그때 당신이 만나고 있던 그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이었는데. 그걸 모르고 헤어지고 나서 너무 괴로워하는 당신이 정말로 안타까웠어요. 오죽하면 제가 당신을 만나서 직접 얘기했겠어요. 우리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당신에게 꼭 그 말을 해줘야 했어요.


다 괜찮다고. 그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이었다고. 잘 헤어진 거라고. 머지않아 꼭 결혼하니 제발 걱정하지 말라고요. 유미씨는 나에게 몇 번이나 되물었었죠. 정말이냐고. 진짜로 결혼해서 잘 살 수 있냐고요. 한참을 저와 얘기하고 밝은 표정으로 돌아갔던 당신을 보고 나서야 저는 겨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답니다.



물론 그때, 앞으로 당신 앞에 몰려올 많은 시련들을 다 말해주지 못한 것은 미안해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둘째 아이의 장애 같은 문제는 제가 미리 알려줄 수 없는 문제였어요. 또한, 미리 알았다면 당신은 더욱 괴로운 삶을 보냈을 거예요. 몇 년 후, 더 이상 회사를 다니게 될 수 없게 된 것은 길게 보면 당신에게는 잘된 일이었다는 것을 당신이 지금쯤이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당신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기에, 변호사도 회사원도 될 운명이 아니었음을 젊은 당신은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그 이후로도 저는 쭉 당신의 곁을 지키고 있었어요. 분명히 당신이 그 시련들을 이겨낼 거라고 믿고 기다렸죠. 유미씨는 강한 사람이니까요. 다행히 몇 년 안에 당신은 다시 웃음을 되찾았고 다른 사람들을 헤아리는 원래의 유미씨로 돌아갔어요. 아니, 모든 것이 주어지고 풍요로웠던 어린 시절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도 볼 수 있는 더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이 되었죠. 저는 당신이 분명히 다시 일어서리라고 믿었어요. 만일 또 절망에 빠진다면 이번에는 어떤 모습으로 당신 앞에 나타나야 할지 조금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다행히 지난 20년 동안 제가 당신 앞에 인간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 일은 없었군요. 우리는 그렇게 그럭저럭 잘 지내왔어요.



20년 전 제가 당신에게 말했던 다 잘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괜히 한 말은 아니었어요. 비록 당신의 아들 별이가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게 태어났어도 18세가 된 지금 어엿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잖아요. 당신이 별이의 특수학교 입학에 대해 고민할 때를 기억해요. 미래를 볼 수 없는 인간인지라 당신은 많이 불안해했지만, 저는 알고 있었어요. 별이가 잘 성장하리라는 것을요. 물론, 당신은 별이가 이만큼 컸음에도 아직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지만 제가 말했던 대로 다 잘 될 거예요. 천사는 허튼 말을 하지 않는답니다. 너무 그렇게 마음 졸이며 살지 않아도 돼요.



당신은 글을 쓸 운명이었어요. 베스트셀러 작가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죠. 몇 년 전, 처음으로 당신의 책이 출판되었을 때, 혼자 시내의 서점에 나가 당신의 이름이 쓰여있는 책을 발견하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던 당신의 얼굴은 참 행복해 보였어요. 먼 길을 돌아왔지만 당신이 자신의 궤도에 잘 안착한 것 같아 나도 비로소 마음이 놓였답니다. 20대와 30대에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당신을 볼 때마다 많이 안타까웠었거든요. 이제 50대가 된 당신은 지금처럼 글을 쓰며 계속 행복하게 살아가면 됩니다. 그동안 남들보다 조금 더 모진 시간들을 보냈잖아요. 여전히 나는 당신에게 미래의 일을 말해줄 수는 없지만, 다 잘될 거예요. 그것만은 확실해요. 이것은 절대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언제나 당신의 삶이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제가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 없지만, 늘 지켜보고 있어요. 아, 당신이 여전히 좋아하는 방탄소년단의 콘서트 티켓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제가 최선을 다해 인터파크 서버에 손을 써볼게요. 사실 저뿐 아니라 많은 수호천사들이 그 티켓을 원해서 점점 쉽지는 않네요. 벌써 십몇 년째 말이죠. 그래도 당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제가 힘써 볼게요.



시간이 더 흘러, 당신이 남은 생을 다해서, 우리가 원래 왔던 그곳으로 가는 날까지 함께 잘 지내봐요. 그때에도 내가 당신을 안내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요. 당신의 곁에서 함께 지낸 시간들은 참 좋았어요. 당신이 어렸던 시절에는 호기심이 너무 많아 위태위태한 적이 몇 번 있어 마음을 졸이기도 했었지만, 당신은 결국 잘 자랐고, 멋지게 늙어가고 있으니까요.



남은 시간 동안 지구에서 당신이 펼치고 싶었던 꿈들을 마음껏 펼치길 바라요. 당신이 좋아하는 글쓰기를 통해 그 꿈을 펼칠 수 있을 거예요. 그동안도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모든 것은 잘 될 겁니다. 저의 이런 말들이 부디 당신에게 전달되어 오늘밤도 편안히 잠들었으면 좋겠네요. 앞으로 또 언제 소식을 전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저는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다는 것이죠. 그럼 이만 줄일게요.



2029년 3월 23일



당신의 수호천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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