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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Zintta Nov 21. 2018

우주를 가르는 노스탤지어 #12

140일

미구엘은 여전히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과일 가게에서 부러진 선반을 수리하고 있던 미구엘에게 말했다.

- 마그네슘과 나트륨을 구할 수 있을까?

미구엘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 판 씨, 이것 좀 잡아주세요

내가 선반을 잡고, 미구엘은 스템플러로 고정시켰다.
- 언제까지 구하면 돼요?
- 빠를수록 좋아. 2-3일 안에

미구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 물었다.
- 근데 그거 어디에 써요?
- 여기저기 쓰지, 폭죽 만들 때도 쓰고
- 와~ 발사하는 날 쓰면 근사하겠네요


나는 웃으며 미구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143일

우주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노스토스 nostos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homecoming)을 의미)
별이 된 이들에게 전하는 마을 사람들의 바람이었다.
주위에 있던 마을 사람 몇은 박수를 치며 뿌듯해했다.
마도는 사람들 틈에서 멍하니 우주선의 이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건너편 이발소 벤치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봤다.
안젤리니는 옆자리에 털썩 앉더니 물었다.


- 이름 어때요?
- 사람들이 좋아하니 좋은 이름이겠지
- 남의 일인 것처럼 말하네요? 고용주 판 씨
- 비용이 모자라지 않아 다행이야
- 급료가 밀리지 않아 정말 다행이네요


- 이제 와서 묻는 게 좀 이상하긴 한데 
- 왜 우주에 가려는 거죠?
- 전쟁 때문에 도망가는 건가요? 
- 탈영병이라?
- 그럴지도....
- 정말?


- 우주에는 지구에서 쏘아 올린 쓰레기들로 넘쳐나지
- 왠지 나와 어울릴 것 같아서...
- 당신은 모르겠지만 우리가 만든 우주선을 쓰레기 취급하지 말아요


안젤리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쏘아보며 말했다.
- 그곳에서 미아되지 말고 적당히 머물다 돌아와요   
- 마도 언니에게도 가기 전에 사과하고요


- 용서받지 못해도?

- 미안하다면 사과하라구요 
- 마도를 위한다면 그렇게 해줘요


그 말을 남기고 안젤리니는 뛰어가 마도의 목을 끌어안았다.
난 깊은숨을 내쉬었다.


145일

사무실에서 마도는 등을 돌린 채 창밖을 바라봤다. 
나는 마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미구엘이 사무실로 뛰어들어와 말했다.
- 다 같이 사진 찍기로 했어요. 어서 나와요

우리 둘 다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마도는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우주선을 들판으로 옮기기 전에 토티 씨가 함께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여기저기 창고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이 모였다.
미구엘과 안젤리니 4총사는 마고와 나를 가운데로 잡아끌었다.
그리고 우주선을 배경으로 사람들은 차례차례 카메라 안으로 들어왔다 흩어졌다.
안젤리니를 포함한 4총사, 
미구엘과 축구 멤버들, 
마고 할머니와 체스 멤버, 낮잠 멤버, 
수다를 즐겼던 동네 노인들이 한 번씩 카메라 앵글 안으로 들어왔다 흩어졌다. 
초기 멤버 알레그로 씨, 피를로 씨, 모니카 할머니, 그리고 토티 씨도 미구엘에게 카메라를 맡기고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마도와 나는 서먹서먹한 채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여러 사진 속에 담겼다.


침대에 누웠을 때 아즈라엘은 창가에 앉아 졸고 있었다.
달빛을 받은 녀석의 모습은 평소보다 더욱 기분 나빴다.
피곤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마도에게 했던 말과 그녀의 말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 내가 우주로 가는 이유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입니다
-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입니다
- 이 일이 당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 난 그들이 나를 이곳으로 인도했다고 믿습니다
- 난 그저 당신이 자책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 미안합니다. 내가 저지른 모든 일들이


- 마르코....
- 당신을 볼 때마다 마르코의 모습이 떠올라요
- 난 이제 당신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어요


아즈라엘이 갑자기 깨어나 눈을 희번덕거렸다.
미세한 공기의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그 감촉을 잊지 못한다.
그것이 하늘의 별들을 지우며 빛을 내뿜었다.
그 공허함이 다시 떠올랐다.

<너무 빨라...>

하늘은 대낮처럼 밝았다. 
보누치 씨가 방으로 들어와 물었다.

- 남은 건 이제 없다고 했잖아
- 아마 복구가 끝난 것 같습니다....


- 일정을 앞당겨야 해


창 밖의 빛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 빛은 섬의 모든 것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그림자 중에 마도의 것도 있었다.


마도는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 서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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