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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Zintta Dec 22. 2018

H-ZeroWorld #M-03

 깊은 밤, 동굴을 찾은 침입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동굴 안에 누군가가 깨지 않기를 바라며 주위를 살폈다.
 그들은 각기 다른 형태의 방독면을 쓰고, 창과 칼 같은 조악한 무기를 손에 든 3명의 무리였다. 동굴 안에서 숙면을 취하고 있을 상대를 찾아 어둠을 더듬던 그들은 칸트의 침낭을 발견한 후 서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그들 중 한 명이 창으로 힘껏 침낭을 찔렀다. 
 그때 어둠 한 편에서 여자아이의 괴상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3명의 무리가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반대편에 숨어있던 칸트가 한 명을 낚아채고, 손도끼로 칼을 내려쳤다. 
- 악! 
여자의 음성이었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놓치고는 조그만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칸트는 그 여자의 목을 팔뚝으로 압박하고, 다른 한 손에 쥔 손도끼(토마호크)를 나머지 무리를 향해 겨눴다.

칸트는 침입자들에게 차분하게 경고했다.
- 뒤를 조심해. 물리고 싶지 않으면.
남은 두 침입자는 어쩔 줄 몰라하며 쭈뼛거리더니 겨우 말을 꺼냈다.
- 그녀를 놔주세요. 무기는 위협만 할 생각이었어요.
- 아까 찌른 침낭이 내 거야.
- 그냥.... 다리 쪽만 찌르려고 했어요.
- 그래? 내
 다리를 잃을 뻔했군.
- 그게 아니라....

 자신들도 납득하지 못할 것 같았는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더니, 갑자기 한 명이 칸트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칸트는 몸을 틀어 피한 후에 잡아 두었던 여자를 밀쳐내고, 손도끼를 걸어 상대의 창을 낚아챘다. 다른 한 손으로 창을 잡고, 남자의 면상에 가까이에 다가서자 놀란 그는 갑자기 뒷걸음질 치며 달아나려 했다. 칸트는 그가 앨리스 쪽으로 다가가지 못하도록 손도끼로 낚아챘다. 

 그때 갑자기 옆에 서있던 다른 한 명이 달려들어 칸트를 찌르려 했다. 



 칸트는 창을 팔뚝의 장갑으로 쳐내고, 달려든 그의 얼굴을 도끼의 자루 쪽으로 후려쳤다. 그 충격으로 그의 방독면이 벗겨졌고, 남자는 발작을 일으키듯 숨을 헐떡이며, 방독면을 찾기 위해 어두운 바닥을 더듬었다.
- 여보!
옆에 서 있던 여자는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 형! 숨 참아! 숨 쉬지 마
다른 남자는 함께 바닥을 더듬으며 소리쳤다. 칸트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남자는 동생이 찾아준 방독면을 급하게 눌러쓰곤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여자는 남편에게 이상이 없는지 살피고는 칸트를 항해 울먹이며 말했다.
- 우리가 오지 말았어야 했어요~ 살려만 주세요.
창을 휘둘렀던 동생도 태도를 바꿔 옆에서 거들었다.
- 지금 가진 건 없지만 살려주시면 나중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칸트는 그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말했다.
- 억제제도 구하지 못하는 주제에 무엇으로 보답하겠다는 거지?
남자는 칸트의 손도끼를 한번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 당신은 헌터인가요? 뭐든 시켜만 주세요. 1년이고 2년이고 맨몸으로 갚겠습니다.
칸트는 남자의 말을 듣고 건조하게 대답했다.
- 난 뱀이나 잡는 게 고작이라 당신 같은 보조는 필요 없어.
남자는 물러서지 않고 칸트를 설득하려 했다.
- 그 정도 실력이면 일반 감염체는 충분히 사냥할 수 있잖아요. 제가 미끼가 되겠습니다. 

칸트는 관심 없다는 듯 무심한 어투로 말했다.

- 너같이 무모한 부류가 동료를 위험에 빠뜨리곤 하지.


 앨리스가 낮은 울음소리를 내며 동생의 등가방에 손을 뻗었다. 남자는 앨리스의 모습에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칸트는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 당신 남편은 이미 감염됐을 거야. 이 동굴 들어온 건 실수야. 
- 어서 여기서 나가. 나머지도 감염되고 싶지 않으면.
여자는 울음을 터뜨렸다.



칸트는 그들을 향해 다시 한번 경고했다. 

- 다시 내 눈에 띄면 그때는 죽는다.


3인의 가족 도적단은 패잔병처럼 힘없는 걸음으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날이 밝고, 칸트 일행은 길을 떠날 준비를 마쳤다. 앨리스는 동굴 밖에 앉아 볕을 즐겼다. 앨리스는 유독 아침 햇살을 좋아했다. 
 짐을 모두 정리한 칸트는 앨리스에게 몰래 다가가 마스크를 씌우려 했다. 칸트는 잽싸게 마스크를 쥔 손으로 앨리스의 입을 틀어막았다. 앨리스는 칸트의 갑작스러운 접근에 발버둥 치며 저항했고, 칸트는 완력으로 버티며 남은 한 손으로 겨우 마스크 끈을 조였다.
- 마스크 씌울 때마다 진이 빠지는군.
 앨리스는 몇 번인가 마스크를 손으로 벗기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이내 포기하고, 다시 관심을 먼 하늘로 돌렸다. 칸트는 앨리스의 팔에 연결된 끈을 자신의 허리춤에 묶고 잡아당겨 일으켜 세웠다. 앨리스는 억지로 줄에 딸려오더니, 이내 순순히 줄이 이끄는 대로 칸트의 뒤를 따랐다. 

 칸트와 앨리스는 동굴과 멀어지며 또다시 이정표 없는 사막의 지평선을 향해 나아갔다. 



칸트는 바닥에 손을 대고 진동을 느꼈다. 그리고 먼 지평선에 시선을 고정했다. 땅의 경계에서 무언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점차 또렷한 형태를 갖춰갔다. 여러 대의 차량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칸트와 앨리스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칸트는 앨리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세 손가락단.

- 성가시게 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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