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주방을 만들다가 느끼게 된 잡다한 것들 - 01
최근 2018년 출산율이 1.0 미만이 예상된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기존의 인구가 유지되는 대체출산율이 선진국 기준으로 2.1 정도라고 하니, 별다른 일이 없는 한(?) 대한민국의 총인구는 줄어들 예정이다. 인구의 하락은 정치, 경제, 사회 국가 전반에 걸쳐 영향을 주고받는 아주 중요한 문제라, 정치인들과 공무원이 출산장려금이다 뭐다 하며 10년 동안 100조 이상을 쏟아부었지만 역시나 그들이 하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헛짓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역시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는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세계적으로도 아주 드문 출산율 급떡락의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혹자의 말대로 물질적인 풍요와 개인주의 가치관의 확산 때문일까? 요즘 애들은 출산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는 얘긴데, 그냥 개소리다. 미안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한테서 태어난 자식들이 불쌍할 정도다.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고, 아니 해결하기도 싫으니까 핑계를 대며 프레임을 돌리는 게 아닐까. 취업, 맞벌이, 육아휴직, 어린이집, 유치원, 학원, 공교육, 입시, 대학, 중소기업, 하청, 갑질 등. 결혼과 출산과 육아에 아주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헬조선의 사회적 환경을 외면하고 개인에게 탓을 돌리는 간단한 방법을 구사하고 있다.
오히려 반대로 출산율 문제는 개인주의의 발현이 아니다. 이 불행을 내 대에서 끝내겠다는, 예를 들자면 구타와 폭력이 살아있던 조직의 부조리를 내가 다 맞고 아래로는 대물림 안 하겠다는 그런 희생정신의 또다른 모습이다. 나 혼자도 제대로 살아가기 힘든 세상인데, 결혼하고 애를 낳아서 왜 나도 힘들고 애까지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하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그러니까 이것은 개인주의 가치관의 발현이 아니라 미래에 생겨날 내 아이의 행복을 걱정한 상상 모성애, 상상 부성애의 숭고한 실천이다.
갑자기 출산율 얘기를 하고 앉아 있고, 공유주방과 이게 무슨 상관이 있냐고? 사실 별 상관없다. 정치인이나 공무원이나 기자들이나 교수들의 주장에 근거한 것도 아니고, 그저 공유주방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나의 경험과 사고의 흐름에 출산율이라는 게 잠깐 걸리적거렸다. 개인적으로 출산율 떡락의 중심에는 바로 부동산,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부동산으로 돈을 벌겠다는 다양한 사람들의 욕망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그것이 공유주방 비즈니스의 과거, 현재, 미래에 불쑥불쑥 나타났기 때문에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쉽게 아는 부동산과 F&B과 관련된 문제는 바로 상가 임차료이다. 죽어있던 거리를 맛집이 들어와 흔히 말하는 뜨는 동네로 만들어 놨더니, 건물주가 몇 배의 보증금과 월세를 올려 기존의 맛집들을 다 내보내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상가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며, 10년의 계약갱신 요구권이나 6개월의 권리금 회수 기회 보호기간을 임차인이 가지게 되었지만, 천정부지로 솟는 임차료에 분노를 하면서도 돈을 벌면 건물주를 하고 싶다는 양가적 감정을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이상, 부동산 문제는 가까운 시일 내에 해결되기 힘들 것 같다. 이것도 그냥 내 생각이다. 여하튼 이런 부동산 비용 부담이 공유주방 비즈니스의 시작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지만, 공유주방은 임대사업이다. 구멍가게를 시작한다 하더라도 F&B사업을 하려면 초기투자비용이 상당히 많이 든다. 권리금, 인테리어, 설비, 보증금, 임차료 등이 한 번에 초기 목돈으로 들어가는 돈이고 이건 고스란히 고정자산 혹은 부동산 임차료에 해당한다. 공유주방을 임대업의 관점으로 보면 개인이 짊어져야 할 초기투자비용에 따른 리스크를 대신 운영자가 짊어지는 구조다. 사용자는 리스크를 줄이는 대신 빌트인 풀옵션 서비스에 가까운 서비스에 돈을 쓰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엄청난 대출을 껴안고 집을 한채 사는 것보다 호텔이나 고급 오피스텔에 입주하여 사는 것을 택하는 것과 비슷하다. 만약 우리나라의 임차인 보호 제도가 잘 되어 있었다면,(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공유주방 등장 시기가 아마 몇 년 정도는 후에 발생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여하튼 우리 회사는 이 비즈니스를 선택했고, 그 리스크를 대신 잘 떠안기 위해 많은 건물과 부동산사무소와 여러 건물주를 만났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것저것 다 차치하고서 임차료가 너무 비쌌다. 어떤 데는 평당 53만 원을 얘기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다 이렇다면서 마치 선심 쓰듯이 얘기하는 모습이 정말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어찌어찌 괜찮은 곳(성수동)을 찾아 계약을 진행했는데, 이때 건물주의 갑질이 시작됐다. 어떤 사업을 할지 사업계획서를 갖고 오라는 둥, 마치 자신이 선심 써서 건물을 빌려주는 양 위세가 대단하셨다. 결국 그 사람은 계약을 하기로 해놓고 우리의 뒤통수를 쳤는데, 계약서 검토 후 서명을 하기로 한 날 갑자기 계약은 무효라며 없던 것으로 통보해버렸다. 그동안 공간 구성, 설계, 컨셉, 홍보 등의 업무를 진행하고 있던 우리 회사로서는 집단 멘붕에 빠졌다. 몇 달뒤 그 건물이 팔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양아치다.
집단 멘붕을 빠르게 극복하고, 새로운 건물을 찾아 설계와 시공에 착수했다. 공유주방 비즈니스는 상권에 영향을 받을 수도 안 받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2018년 현재 시점에서 음식을 사먹는 소비자와의 접점 채널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상권은 중요하다. 우리는 종로구 사직동이라는 꽤 도전적인 입지를 선택했다. (‘사직동’이라고 치면 부산 사직구장이 더 많이 나온다.)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굉장히 도전적인 상권이고, 건물의 컨디션도 그다지 좋지 않아 설비투자 비용도 거의 곱절은 드는 것 같다. 망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하는 것을. 그리고 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당연히 정말 잘 되었을 때를 그려본다면 사직지점은 공유주방 비즈니스계의 클래식이 될 것같다...(죄송). 근데 여기서 또 드는 생각. 건물주가 5년 있다가 나가라 그러면 어쩌지?(잘 됐을 때 얘기니 그때 고민하도록 하자…)
대기업들이 사옥 등 부동산을 매각한다, 오피스/상가 공실률이 치솟고 있다, 부동산을 갖고 있는 건물주들이 공유 오피스에 뛰어든다 등 부동산과 관련된 여러 가지 소식이 들린다. 곧 혼돈의 카오스가 펼쳐질 것만 같다. 그러면 여기서 질문. 공유주방 비즈니스는 어떻게 될까? 물론 하나의 생명체처럼 시장환경의 변화에 적응을 해나가겠지만, 적어도 확실한 것은 부동산 비용이 지금만큼 큰 변수가 아니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조금 확장시킨다면 ‘임대업’의 관점에서 공유주방 비즈니스를 바라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장에 뛰어든 사람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아마도, 그 준비의 차이가 공유주방 사업자 간의 차이 나아가 성패까지도 결정하지 않을까?
공유주방을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느냐에 대한 질문을 할 때마다 가끔 읽는 글이 있다(https://ppss.kr/archives/162250?fbclid=IwAR2jf-_ENB7PM5IsKeWihvdAG5zl3Dghq3YPiZl1xwEdxVoykSK7DdURuFI). 최근 소프트뱅크에서 30억 달러를 추가 투자받았고, 기업가치는 약 450억 달러(약 50조)에 달한다는 위워크를 아주 비꼬듯이 작성한 어느 외국인의 체험기인데, 그는 글에서 그는 위워크를 ‘이들이 진정 파는 것은 혁명적으로 느껴지는 어떤 것의 일부가 된 듯한 고양감이다’라고 말한다. 또 위워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며 ‘스페인어를 쓰는,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젊은 여자 청소부만이 실제로 일을 하고 있었다.’라고하며 비웃는다. 정말 진심으로 공유주방에서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수없이 질문하지만 결국 답은 만들어 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끝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