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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종 Apr 04. 2022

이제는 착한 사람들이랑 일을 하고 싶어

사회생활 10년 차 톺아보기 (1)

얼마 전 동네에서 대학교 동아리 형, 동생들과 저녁을 먹었다. 학생 때부터 졸업 이후 직장인이 되어서도 매주 모여서 축구를 하는 축구 동아리이니 만큼, 여전히 대화의 80%는 축구가 주제다. 오늘은 패스가 안 좋았느니, 커뮤니케이션이 잘 됐느니, 우리 팀의 문제는 뭐니 하는,  질릴 법도 한데 안 질리는 신기한 이야기. 20살 때부터 아주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기 때문에, 성인이 되고 나서 일반 사람들이 겪는 대부분의 것들 -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족의 경조사 등 – 을 같이 공유해왔다. 몇십 년을 이어가며 일주일에 한 번씩 같이 땀 흘려 운동하고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는 모임이 세상에 얼마나 더 있을까 싶다. 행운이다. 


그중 친한 형 한 명이 해외 주재원으로 가게 되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졸업을 같은 해에 했기 때문에, 그 형과 나는 사회생활을 한 기간이 비슷하다. 2011년에 졸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니 벌써 만으로 11년이나 지났다. 나는 장교생활을 하고, 다큐멘터리 조연출을 하고 공기업을 갔다가 스타트업씬에서 지금까지 일을 해왔고, 그 형은 처음 입사한 대기업에서 쭉 일을 했다. 워낙 치열하고 성실하게 회사생활을 해왔던 사람이라 승진도 빨리하고 해외로 나가게 되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은 형이다.


술을 한두 잔 마시고, 축구 얘기도 다 끝나갈 무렵 회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그 형도 해외 주재원이라는 직업상 변화가 있는 시기였고, 나도 오랜 시간 다닌 회사를 마침 휴직한 상태였던 터라, 자연스레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앞으로 더 길게 남아있겠지만, 약 10여 년 간의 지난 사회생활에 대한 소회를 얘기하는 것처럼 이야기가 흘러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그 형이 “이제는 착한 사람들이랑 일을 하고 싶어”라고 얘기를 했다. 술자리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착한 사람이랑 일하고 싶다는 게 무슨 말일까. 흔히 말하는 것처럼 ‘쟤 성격 진짜 착해’ 할 때의,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모난 것을 넓은 배려로 이해해주는 그런 사람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그렇게 많지도 않거니와, 사실 그 형도 그런 면에서는 그 정도로 착한 사람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다 필요 없고’라는 말을 앞에 붙였는데, 다 필요 없고 이제는 착한 사람들이랑 일을 하고 싶어’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 기대선이라는 게 엄청 높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지나 보니 일을 한다는 것이 노동을 통해 소득을 창출하는 직장 생활을 뜻하기는 하나,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생각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많은 시간을 함께 한다는 점에서 ‘어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것인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특히 나는 특정한 커리어 패스나, 반드시 이 길을 걸어야겠다는 소명의식이 크게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더 그렇다. 섣부른 말일 수도 있지만 내 경험상, 집안에 큰 병을 치르는 환자가 있다던가, 보증을 잘 못서서 사기를 당했다던가 하는 어려운 사연이 있는 경우는 제외하고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내가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면, 먹고 살만큼 돈은 벌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이제 그 돈을 어떤 방식으로, 누구와 함께하며 일을 하느냐가 중요해지는데, 그 시간 동안 기왕이면 이심전심으로 좋은 팀워크를 갖추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그 형이 말했던 것처럼, 나에게도 지난 10여 년 간의 사회생활을 통해 ‘누구와 같이 일할 것인가’에 대한 내 나름의 기준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런 사람들만 아니면 되는 일종의 일하는 동료로서의 마지노선이랄까 이런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요즘 유행하는 MBTI처럼 16가지 유형으로 구별돼서 ‘이 유형과는 절대 상극이야’ 또는 진보와 보수 같은 정치적 신념으로 ‘저쪽 사람들이랑은 상종하지 말아야지’ 이런 것은 아니다. 얘기를 하자면 일종의 위화감에 기반한 것에 가깝다. 내 주변에 있으면 어쩐지 조금 위험하다는 느낌을 주는 , 약간은 나랑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실제로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위험을 가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나에게 굉장히 친절한 사람이라도 그렇다. 아마도 순간순간 보이는 그 사람의 행동과 태도가 나에게 누적되어 무의식적으로 쌓여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10여 년의 사회생활을 겪고 나니, 그래서 이제는 그런 사람들은 안 만나고 가능하면 피하면서 살려고 한다. 


피하고자 하는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일베 같은 극우/혐오 커뮤니티에서 통용되는 단어들을 실생활이나 단체 카톡방에서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아마도 실제 그런 온라인 커뮤니티에 속해 있기 때문일 텐데, 요즘 그런 사람들이 워낙 많다. 기억으로는 내가 대학을 다니던 2000년대 중반부터 하나둘씩 그런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었던 것 같은데, 10~20대 어린 나이일 때 누군가를 조롱하고, 혐오하고, 무시하는 자극적인 콘텐츠에 재미를 느끼다 보니, 그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정보가 전부인 줄 알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게 현실에서 툭툭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는데,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알게 된다. 


두 번째로는 아주 심한 성희롱적 발언을 쉽게 하는 사람들이다. 싸움을 하거나 악에 받쳐서 흥분해서 나오는 욕, 또는 노인들이 하는 세대차이에서 나오는 인식에 기반한 발언과는 좀 다르다. 그냥 평소의 기본적인 인식 자체가 그렇다. 이런 사람들은 웬만하면 와이프나, 내 동생이나, 여자친구 같은 내 주변의 여성들과 만나지 못하게 한다. 도대체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기본적으로 사람들 간의 차별을 바탕에 두고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건 꼭 남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여자들도 꽤 있다. 남녀를 서로가 서로를 이용해 먹으려는 상대로 인식하고, ‘아 그거, 그거 때문에 그런거잖아 다 알아’라는 식으로 얘기한다. 본인이 그런 사람이라 다른 사람도 그렇게 보는 것 같다. 저런 사람의 아내나 딸은 쟤가 저런 놈인지 알까? 생각하기도 하고, 아님 유유상종이라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났을 거야 하면서, 저놈 아내도 밖에서 저런 말 하면서 살겠지 싶기도 하다. 
 

세 번째는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사람이다. 대부분 돈 문제와 관련이 되어있는데,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누군가에게 뒷돈을 받거나, 회사의 자금이나 물품을 빼돌려 자기 것처럼 쓰는 그런 부류들이다. 사회생활을 좀 하다 보니 예상보다 이런 사람이 꽤 많다는 것을 알았다. 기본적으로 안 걸리면 되지, 남들 다 이렇게 한다는 마인드가 깔려있어 애초에 죄의식이 없다. 이런 것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불편해하고 오히려 꼭 그렇게 까지 해야 했냐는 식으로 오히려 문제 제기한 사람을 매도하고 비난한다. 보통사람들이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하며 멈추는 반면, 공사 구분이 안 되는 사람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사적 이익을 취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다 갖다 붙이며 나중에는 정에 호소한다. 상대방에게 형, 동생, 누나, 언니라고 편하게 부르라고 하면서 거리감을 없애고, 같은 부류로 만들어 다른 말을 하지 어렵게 하는 것도 특징이다. 결국에는 비싼 변호사를 쓰던 어떻게든 해서라도 법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만든 다음, 운이 없었다는 듯이 또 살아간다.  


네 번째는 항상 자기만 예외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남에게는 이래라저래라, 뭐가 문제니 지적을 하면서도 본인 스스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유형으로, 회사 생활로 따지자면 미팅에 늦거나 급작스럽게 취소하는 경우가 잦다. 외부의 거래처는 물론, 같은 회사/부서의 사람과 업무 공유와 보고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런 사람들이랑은 일이 잘 진행이 안되고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일하는 것이 조직 생활인데, 내부에서 힘을 합쳐야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예의를 지키지 않으니 같이 일하기가 어렵다.    


 사실은 나도 혼란스러운 게,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닌가 싶고, 괜히 유난 떠는 것 같기도 하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은 아닌가 고민도 된다. 사람을 선입견을 갖고 좋지 않은 면만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랑 같이 일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면 사람들을 잘 부리고 어울려야 하는 것도 능력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그 형이 말한 ‘착한 사람들이랑 일하고 싶어’와 같은 맥락에서, 일종의 희망처럼 위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랑은 같이 하고 싶지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바람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회피하거나 가능하다면 밀어내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저런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빌미가 되어 자신이 큰 피해를 받지 않는 이상 아무리 옆에서 얘기해도 바뀌지 않거니와, 만약 저런 사람들이 회사와 같은 공적 집단에 속해서 다른 사람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그 집단 내 다른 사람들이 계속 피해를 받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내가 굳이 그들을 감내하면서까지 나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가 않다. 돈뿐만 아니라 시간과 인연에도 기회비용이라는 게 있어서, 똑같은 돈을 번다하더라도, 더 좋은 사람들과 더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래서 나중에도 좋은 인연으로 남아 미래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가 않다.


사회생활한 지 10년이 지나 마치 그간의 경험에 기반하여 선언하듯이 글을 썼지만, 글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번 뒤돌아 보니 나는 계속 이러한 인간관계를 계속해왔던 것 같다. 대학 동아리 친구들 중에서도, 학군단 동기들 중에서도, 그리고 그동안의 직장 동료들 중에서도, 심지어 동아리에서도 가까운 사람은 가깝고 멀리할 사람은 멀리해왔다. 올해 처음 쓴 글인데, 글이 어떤 사람들을 피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돼서 조금은 아쉽다. 반성의 차원에서(?) 다음 글은 지난 10년간의 사회생활에서 나에게 배움과 도움을 주었던 글을 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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