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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종 Sep 16. 2018

그래서, 공유주방이 뭔데? - 08

꽃 길은 없고요, 우리 회사가 걸어왔던 길도 걷지 마세요. (1편)

2015년 10월, 회사가 설립한 때. 2017년 1월 내가 회사에 합류한 시점. 그리고 내 체감으로는 2017년 8월 서울창업허브에 파일럿 형태의 공유주방을 오픈했을 때 까지도 공유주방에 대한 시장의 이해도는 거의 무지 상태에 가까웠던 것 같다. 우리 회사의 꾸준한 노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타트업씬의 VC나 F&B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들은 물론이고, 요즘에는 일반인들까지도 왠지 설명을 해주면 이해를 하는 눈치다. 실제로 작년 말부터 이 비즈니스를 해보겠다는 경쟁사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직접 찾아와 사업 컨설팅을 받는 사례도 종종 

있다.


이럴 때마다 정말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데 그중 첫 번째는 '경쟁자가 생겼네. 우리도 더 잘 해야겠다.'이고, 두 번째는 '같이 잘해서 더 좋은 씬을 만들어 가야지.'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가 -조금 이상할 수 도 있지만- '우리처럼 하면 안 되는데... 망하는데...'라는 생각이다. 앞선 글에서 언급을 했지만, 지금 우리가 운영하고 있는 현재의 주방은 내외부적 요인 -공공기관과의 협업에서 발생하는 여러 장애물, 회사 내부의 업무적 미숙, 본 사업과 관련된 국내의 법령과 규제 등- 으로 인해 적어도 우리 기준으로는 정~말 많이 부족한 상태이다. 


우리 회사를 안 좋게 보고 지적하는 것은 괜찮다. 왜냐?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반대로 우리 회사를 칭찬하고, 벤치마킹하는 경우가 괜찮지 않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고, 특히 이 말을 해 주고 싶다. 이게 다가 아니라고. 그리고 만약 당신이 우리의 경쟁사가 되거나 파트너사가 되어 이 씬을 같이 만들어 갈 사람이라면, 우리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정말 같이 잘했으면 좋겠다고. 착한 회사 코스프레 아니냐고 물을 수 있지만, 진짜 그렇다. 믿으려면 믿고 말려면 말아라. 오늘의 글은 공유주방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운영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사항들을 직접 겪은 것들을 토대로 말해보고자 한다. 나름의 영업 노하우인데, 이것도 믿으려면 믿고 말려면 말아라. 다시 한번 말 하지만, 꽃 길은 없다. 그리고 우리 회사가 걸어왔던 길도 걷지 말아라. 자기 나름의 길을 닦아 나갔으면 좋겠다. 


비록 나는 진흙탕 길을 걷고 있지만, 청하 너는 꽃 길을 걸으렴.


영업 (이제 안)비밀 첫 번째.

당신이 공유주방을 통해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그 목적을 명확히 해라. 기획단계에서.


WECOOK의 시작은 '대한민국의 낙후된 F&B(특히 음식점) 생태계를, 공유주방을 통해 근본적으로 바꿔보자'였다. 엄청난 리스크를 갖고 이 아사리판에 뛰어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안전장치를 제공하고 싶었는데, 냉정히 되돌아보면 우리는 의도는 좋았으나 날카롭지가 않았다. 공유주방은 주로 사용하게 될 타겟 고객에 따라, 그리고 그들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서비스에 따라 그에 맞는 형태로 기획-설계-운영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그냥 공유주방이 아니라 어떠한 공유주방을 만들 것인지 도출해야 된다.  


푸드트럭을 위한 공유주방, 배달음식점을 위한 공유주방, 소규모 식품제조 회사를 위한 공유주방, 식품회사의 R&D를 위한 공유주방, 푸드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위한 공유주방, 지역 농가를 위한 공유주방, 파티셰를 위한 공유주방, 주류 제조사를 위한 공유주방,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공유주방, 대학생들을 위한 공유주방, 음식점 창업을 위한 공유주방, 발효식품 제조사를 위한 공유주방, 케이터링 회사를 위한 공유주방, 쿠킹클래스 강사를 위한 공유주방. F&B 사업의 분야가 많은 것처럼, 공유주방도 별의별 모습으로 나타난다. 해보면 알겠지만, 다 할 수는 없다. 아니 어찌어찌할 수 있겠지만, 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냥 공유주방 할꺼면, 그냥 하면 된다. 


영업 (이제 안)비밀 두 번째.

목적을 도출했다면,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공간이 필요할지에 대해서 생각하자. 


아주 쉽게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배달음식점(이하 배달)을 위한 공유주방과 푸드트럭(이하 트럭)을 위한 공유주방을 하겠다고 생각해보자. 개별 공간은 배달에게는 필수지만 트럭에게는 필수가 아니다. 왜냐? 배달은 작업시간이 길고 고정적이고 매일 사용하니까. 주차장은 배달에게는 필수가 아니지만 트럭에게는 필수다. 트럭을 세워야 할 곳이 필요하다. 패키징 공간은 배달에게는 필수지만 트럭에게는 필수가 아니다.  


그러니까 앞서 말했듯이 잘하려면, 목적과 고객을 명확히 하고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기능이 무엇 일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이것저것 다하면 좋지만, 늘 그렇듯이 우리의 자원(자본, 인력,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해야 할 것은 예상 고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포커스 그룹 인터뷰 등을 실행하는 것이다.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그러나 굉장히 중요해서 정말 빼먹지 말아야 할 기능을 도출할 수 있다. 또 이들은 추후 공유주방을 오픈했을 때 실제로 고객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 작년 이맘때쯤 밤도깨비야시장 푸드트럭 운영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도출했던 것이 하나 있다면 주차장에다 반드시 세차 시설을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 부분은 만나서 얘기해보지 않고는 잘 모르는 것이다.


조사결과를 분석한 자료. 푸드트럭은 낭만이 아니였다. 정말 치열하고 힘들고 고된 전쟁터에 가깝다. 전쟁통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보통사람들이 아니다. 


영업 (이제 안)비밀 세 번째.

추가적으로 앞서 고민한 코어 기능 외 추가적으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 검토해 보라. 그리고 가능하면 이것을 다각화해보자.


공공파트가 아닌 이상에야(공공 파트도 조금이나마 수익을 내야 된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리는 돈을 벌어야 한다. 그리고 아쉽게도 주방과 설비 즉,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 만으로는 단일한 수익모델이 될 수가 없다.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해봐도, 미국의 다수 사업자를 인터뷰해봐도 그렇다. 그렇다면 무엇을 '더'해야 할까? 당연히 멤버에게 '필요'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게 일단 몇 가지 떠오른다. 쿠킹클래스, 창업 아카데미, 자격증 강좌, 파머스 마켓, 쿠킹스튜디오, 플리마켓, 브랜드 컨설팅 등, 투융자 매칭, 멘토링, 그로서리샵 등. 필요한 것들을 다 제공하면 물론 좋겠지만, 잘 생각을 해보자. 우리가 왜 부가서비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는지. 추가적인 수익모델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공유주방 비즈니스는 공유주방을 사용하는 멤버들을 대상으로 서비스 범위가 한정되기 때문에,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 또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멤버들의 수요, 그들이 지불할 수 있는 금액, 회사가 갖고 있는 자산의 범위 등을 고려하여 서비스를 기획해야 한다. 


여기서 멤버들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 내가 말하는 분석이란 우리가 설정한 그 금액을 수용할 수 있는 고객군인가에 대한 부분에 대한 분석이다. 당신이 기획하는 공유주방의 사용자가 뭔가 프레시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자 대기업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신사업 개발팀일 수도 있다. 돈도 많고 풀서비스를 원할 것이다. R&D 주방으로 사용하려는 중소기업 혹은 스타트업이 될 수도 있다. 돈도 빠듯하고 보다 구체적이고 자기 사업에 특화된 기능을 원할 것이다. 푸드트러커? 플리마켓 셀러? 배달음식? 이들은 회사와는 또 다르다. 자영업에 가깝다. 


LA의 the original farmers market. 굉장히 큰 '시장'이라 비교하는 것이 맞지 않지만,  우리도 좀 '아는' 사람들은 이마트 안가고 '띵굴시장'을 간다.


영업 (이제 안)비밀 네 번째.

전문성을 갖고 있는 파트너사와 함께하라. 직접 하려고 하면 다 못한다. 


지난 미국 출장 때, 미국의 공유주방 사업자들과 인터뷰를 하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이 있다면, 얘네들은 참 분업이 잘 되어있다는 것이다. 왜 너네는 브랜드 컨설팅을 안 하니? 왜 너네는 온라인 쇼핑몰을 구축 안 하니? 왜 너네는 코워킹 스페이스를 운영하지 않니? 돌아오는 대답은 조금씩 다르지만 '우린 지금 여기에 집중하고 있고, 그쪽 분야는 좋은 파트너랑 함께하고 있어. 윈윈이지' 가 주요 골자다. 기계적인 분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철학'같은 건데, 우리나라랑 비교를 해보면 더 명확한 것 같다. 


관련해서 말을 해보자면, 돈이 되는 것 까지는 알겠는데, 대기업이 굳이 이런 것 까지 해야 하나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대기업에 국한하는 것만은 아니다.) F&B쪽도 마찬가지다. 부족한 자원 수준, 일제강점기나 625 전쟁의 경험,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 문제풀이식 교육정책, 작은 시장규모 등등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라고 나름 생각을 많이 해봤었다. 명확한 이유는 못 찾았지만 현실의 대한민국 사회가 각자의 영역에서 룰을 지켜가며 시너지를 내는 분위기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나는 대한민국 사회를 갑질 하고 싶어 안달 난 사회라고 생각하는 부정적인 사람이다.)


잠깐 딴 길로 샜지만, 굳이 위의 얘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아주 현실적으로 그냥 이것저것 다 하려고 하면 잘할 수가 없다. 쉽다. 당신이 부동산 개발 전문가이면서, 음식점도 운영을 해봤고, 식품공장에서 식품을 생산했고, 온라인 유통 경험을 해봤고, 오프라인 유통 경험도 있으면서, 물류창고를 갖고 운영도 해봤고, 브랜딩 인사이트는 마케팅 전문가이며, 투융자에 빠삭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을 면대면으로 상대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여 매우 잘해왔던 사람이라면 예외다. 그렇다.


천부적인 재능과 엄청난 노력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오타니. 이런 그도 투타겸업을 하니 고장이 난다. (오타니는 룰이라도 지키지...)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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