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관계를 무너뜨린 순간들
이혼을 결심하고 친정에 갔던 날이 있었다.
그동안 남편과 얼마나 사이가 안 좋았는지, 딸이 어떤 일로 힘들어하고 있었는지 전혀 몰랐던 엄마와 아빠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오랜 시간 누구에게도 편히 말하지 못한 이야기였으므로 말문을 열자마자 눈물도 함께 터졌다.
말인지 울음인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그간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런 나를 엄마 아빠는 가만히 바라보며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엄마는 조용히 나와 함께 울었다.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중간중간 아빠의 탄식소리가 들렸다.
나의 절규와 같은 이야기가 끝나고,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른 것 같았을 때 엄마가 말했다.
“우리 딸이 엄마가 겪었던 일을 겪는구나.”
그 말은 위로라기보다 정확한 진단 같았다.
엄마는 ‘시집살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대신 조심스럽게, 질투라는 단어를 꺼냈다.
아들이 다른 두 여자를 중심에 두기 시작했을 때, 어떤 어머니들은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는 그 말이 이해되면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엄마와 나의 경우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결론부터 알고 싶다는 듯 물었다.
“근데, 엄마는 어떻게 살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할머니한테… 엄마라고 부를 수 있었어?”
우리 엄마는 평생 시어머니를 ‘어머님’이 아니라 ‘엄마’라고 불렀다.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가 워낙 좋아서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우리 엄마와 할머니를 두고 내기를 한 적도 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냐, 딸과 엄마 사이냐. 그런 엄마와 할머니를 보고 자란 나는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그렇게 가까운 관계인줄만 알았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엄마는 시집살이를 심하게 겪었다. 할머니의 괴롭힘을 지켜보던 아빠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아무도 몰래 방하나를 구해놓고 엄마를 데리고 할머니 집에서 도망 나왔다고 했다.
엄마아빠에게 나의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온 후부터 나는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어머니는 왜 나를 그렇게 못마땅해했을까.'
시어머니와 나 사이에는 어떤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늘 서로에게 조심스레 대했고 친절했다.
다만 늘 어딘가에서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아이들이 많이 어리던 시절, 남편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힘들다고 시어머니에게 투정 부리듯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단순히 투정만은 아니었다. 남편의 건강검진 결과는 늘 좋지 않았고 통풍도 몇번이나 걸렸었다.
남편이 내 말을 안 들으니 혼내달라는 말이었고, 대신 좀 말해달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늘 비슷했다.
“남자들 사회생활하면 다 그런 거지.”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말 안에는 내가 힘들다는 감정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나는 불평을 늘어놓는 며느리가 되었고, 남편의 흉을 보는 아내가 되었다.
그 사실을 한참 후에야 인지하게 된 거다.
내가 늘 싫어하던 시어머니의 모습처럼, 시어머니의 눈에도 내가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기가 애지중지 키워온 아들, 그 아들을 며느리라는 여자가 자꾸 문제 삼고 깎아내리니 싫으셨던 거다.
그렇다면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부아가 나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그 무렵부터 나는 시어머니보다 시아버지와 대화를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고 그저 시어머니보다 시아버지와의 대화가 더 편했다.
둘째가 백일도 채 되지 않았던 어느 날, 남편은 퇴근 후 곧장 술을 마시러 나가 새벽 네 시가 되도록 연락도 없이 돌아오지 않았다.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온 그날의 이야기를 나는 시아버지에게 일러바치듯 털어놓은 적이 있다. 시아버지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정신 나간 놈! 미친놈!”
그 말 한마디에 모든 위로를 다 받은 느낌이었다. 시아버지는 덧붙여 계속 말씀하셨다.
“그래도 네가 한 번 잘 달래 봐라. 본성은 착한 놈이다. 그건 내가 장담할 테니 날 믿고 한 번만 잘 살아봐라.”
결국 아들 편을 드는 건 같았다. 생각해 보면 그건 당연한 결론이다.
하지만 방법이 달랐다. 시아버지는 먼저 내 마음을 읽어주었다.
'아들 편을 드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었다. 시어머니는 아들을 보호하는 말부터 하셨고,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마음을 인정하는 말부터 하셨다.
어느 날은 회사에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서 똑같이 아이 하나를 키우던 남자 동료와 결혼생활이나 고부간의 갈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집 며느리, 그 동료의 아내도 자기가 술 먹고 실수한 이야기를 자기 엄마에게 일러바쳤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어떤 반응이었냐고 내가 너무 궁금하다며 물었더니 그 동료는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오랜만에 엄마한테 등짝 한대 시원하게 맞았습니다. 하하하."
"어머니랑 며느리가 사이가 좋으신가 봐요. 아무리 그래도 아들 흉보는 얘기 하면 싫어하지 않으세요?"
“아니요! 너 요즘 세상에 그렇게 행동하다간 이혼당한다! 니 이혼하고 와도 나는 절대 안 받아 줄 거니까 새아기말 잘 듣고 아빠노릇 똑바로 하고 살아라! 하셨는데, 뭐 다 맞는 말이니까 알아서 납작 엎드렸죠”
나는 그 이야기가 이상하게도 너무 부러웠다. 며느리 앞에서 아들을 속 시원하게 혼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며느리의 말을 유난이나 투정으로 치부하지 않았다는 점이 많이 부러웠다.
누군가는 그걸 ‘요즘 시어머니라서 가능하다’고 말하겠지만,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그저 이상적인 장면처럼 느껴졌다.
내가 바랐던 건 모든 순간에 내 편을 들어달라는 게 아니었다. 단 한 번이라도 “네가 힘들겠구나”라고 말해주는 어른의 얼굴이었다. 그 기대가 있었기에 나는 더 자주 실망했고, 더 깊이 상처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시어머니에 대한 생각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서로 사랑으로 이해하고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었다. 오히려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볼 때면 이해의 폭은 넓어진다.
그 거리에서 나는 시어머니가 안쓰럽기도 하고,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반면 며느리라는 자리에서 관계를 좁히는 일은 끝내 가능하지 않았다. 가까워질수록 기대가 생겼고, 그 기대는 늘 실망으로 돌아왔다. 우리 사이에는 언제나 남편이자 아들이라는 남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옳은 선택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럴 때마다 우리 엄마를 떠올린다. 시어머니를 ‘어머님’이 아니라 ‘엄마’라고 불렀던 사람.
나는 아직 엄마와 같은 답에 닿지 못했다. 엄마의 선택이 위대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 상황에서 엄마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유일한 방식이었는지.
가족이 된다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까지 이해해야 서로를 가족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지금도, 내 결혼생활 전체를 조용히 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