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의 '이해하고 살라'는 말을 더이상 참지 못했다

상처 입은 사람에게 요구된 이해

by Nova G

<시어머니와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이 연재의 씨앗이 된 글이 있다.
『앵무새 죽이기』를 읽다가 가문을 입에 올리며 사람을 재단하던 한 인물의 대사를 보고 문득 시어머니가 떠올랐다. 그날 나는 별다른 망설임 없이 〈시어머니가 싫은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써 내려갔다. 생각보다 길어져서, 허리를 끊듯 중간에서 멈추고 아무튼 나는 시어머니가 싫다고 쓴 그 글은 조회수 4만에 육박했었다.


그 후로 3년 가까이 글을 쓰지 않았다. 그 글 때문은 아니었다. 그 무렵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본업과 육아로 바쁘게 지내다 보니 글을 쓸 여유가 없었던 것뿐이다.
다시 쓰기로 마음먹고, 잠들어 있던 브런치를 깨웠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 지난날의 나의 글들을 다시 읽었다.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나 <시어머니가 싫은 이유>를 읽으며 내가 이토록 무모하게 용감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너무 솔직해서 오히려 무서웠다.


내가 쓴 글을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며 오래 생각했다. 이런 글을 써도 되는 걸까.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보니, 그때 적어놓은 - 글을 썼다는 표현보다 오히려 적어놓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 ‘싫은 이유’들 중 지금은 아닌 게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같은 이유로 시어머니가 싫었다. 그래서 나는 도망치듯 덮어두었던 그 이유들을, 이번에는 천천히 하나씩 꺼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 과정은 괴로웠고 괴롭다. 여전히 글을 쓰며 울고 있는 나를 마주하며 힘들어한다.


아이들 방학과 본업이 바쁘다는 이유로 휴재를 하고 발행일을 지키지 못한 날들이이 많았다.

물론 그런 탓도 있었지만, 사실은 글을 쓰는 게 버거웠다. 그 어떤 날보다 머릿속으로만 글을 쓰느라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이제는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야 할 차례라는 걸 알면서도 쉽게 노트북을 펼 수가 없었다.

차마 쓰지 못하고 있는 이야기를 맴돌다 상대적으로 덜 아픈 장면들만 골라 먼저 글로 완성시키기도 했다.


이번 연재는,

그렇게 미뤄두었던 시간의 한가운데서 조금 더 많은 용기를 불어넣어 기록한다.





남편이 직업군인을 그만두고 시간이 많아졌을 때다. 남편은 그 무렵 혼자서 시댁에 방문하는 일이 잦았다. 다시 일을 시작하면 이런 시간도 아쉬울 테니 나는 남편이 혼자 시댁에 가는 일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 있을 때 부모님과 시간 많이 보내라며 다녀오라고 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다.


시어머니는 아들에게 며느리 험담을 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고 집에 돌아온 남편은, 어머니에게서 들은 말을 무기처럼 쥐고 나에게 휘둘렀다.


“너는 이런 게 문제야.”
“그런 행동이 싸가지가 없다는 소릴 듣는 거야.”
“고쳐!”


뜬금없이 다그치는 말들이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말들이 남편의 생각이 아니라는 걸.

남편이 나에게 고치라고 말한 언행 중에는 연애시절 나의 이런 점이 좋다고 말했던 부분도 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똑같이 받아치고 화를 냈다.


우리의 싸움은 급기야 아이들 앞에서도 이어졌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편과의 싸움을 멈춰야겠다 생각했다.

수없이 대화를 시도했고, 부부간의 대화법에 대한 글이나 영상을 남편에게 공유하며 회유적으로 달래 보기도 했다. 남편이 하라는 대로 해보기도 했다. 죽으라면 죽는시늉을 해서라도 남편의 분노만 가라앉히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점점 소멸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싸움이 끝났으면 나는 나를 죽이고 지금까지 잘 살아왔을까?

나의 여러 가지 시도에도 우리의 관계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남편은 툭하면 이혼하자고 했다. 그럴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내가 지금 어떻게 참고 있는지 알고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이혼이라면 지금 내가 먼저 해도 모자란데 저렇게 쉽게 이혼을 말하는 남편이 급기야 한심하게 느껴졌다. 지금 당신 입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나 아는지 묻고 싶었다.


어느 날, 나는 이 관계를 개인의 인내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일이 있었다.

처음이 아니었고, 반복되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덮어두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일만큼은 숨기지 않는 게 맞다고 여겼다.

그리고 꼭 알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시부모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시아버지를 찾아갔다.

남편과 싸웠는데 왜 시아버지를 찾아가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친정에도 갈 수 없었고,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평생을 비밀이 없이 지내온 내 동생에게조차 말할 수 없었다.

(시어머니와는 말조차 하기 싫었다. 사실 이 일이 반복되기 전에 시아버지보다 시어머니에게 먼저 말을 해서 도움을 요청했었다. 하지만 내 말에 시어머니는 블랙홀 같았다. 돌아오는 말은 그저 "이해하고 살아라" 뿐이었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돌봐주고 계셨고, 나는 시아버지와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눈 뒤 시댁을 나왔다.

집으로 출발하려는데 시어머니에게 문자가 왔다.


“서로 이해하고 살아라.”


매번 반복되는 시어머니의 같은 말.

그날은 그 말을 보는데 그야말로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나는 시어머니 말에 늘 “네”라고만 대답해 왔다. 시어머니뿐 아니라 어른들의 말에는 거의 그랬다.

나는 원래 바른말을 꽤 잘하는 명랑한 사람이지만, 어른들에게는 그러지 말라고 배웠다.


"버릇없이 굴지 말아라"

"어른들에게 깍듯해"

"어디서든 네 할 도리를 다 해라"


자꾸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 내 앞에 나타나서 한 마디씩 하는데, 내가 '그렇지만!'이라고 변명을 하려고 하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날은 눈을 꼭 감았다. 또 나에게 잔소리하는 엄마가 나타날까 봐, 아빠가 혼낼까 봐 눈을 질끈 감고 처음으로

‘네’ 대신 긴 답장을 보냈다.


“어머니, 저한테 자꾸 이해하라고 하시는데요,

형님(남편의 누나)이 그랬어도 이해하라고 하실 수 있으세요?

더 이상 저에게 이해하라고 하지 마세요.

이건 이해할 일이 아니에요. 저한테 그런 말씀하시면 안 되세요.

이런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어머니께 보낸 메시지 워딩 그대로 남편의 입을 통해 내 귀에 들어왔다.

시어머니한테 그런 말을 하는 싸가지는 누구한테 배운 거냐고.

남편 혼자 또 시댁을 다녀온 날 저녁이었다.

소름이 끼치고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계절이 두 번 정도 바뀐 후였던 것 같다.

또 다른 어느 날, 싸움 끝에 또 이혼을 말하는 남편의 말에 그래 그러자고 수긍을 해버렸다.

오래도록 참았던, 늘 내가 먼저 하고 싶었던 말을 드디어 했다. "그래, 이혼하자."


다시는 살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각자의 집에 가서 우리의 이혼을 알리기로 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이혼을 통보하러 가며 소리 없이 엉엉 울었다.

엄마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에 울다가도 시어머를 떠올리면 한쪽가슴은 부글부글 끓었다. 이혼이 마무리되는 순간, 시어머니에게 말하리라


"어머니 막내아들, 어머니 때문에 이혼하는 거예요. 꼭 기억하고 사세요"


다짐하고 다짐했다.


(우리의 이혼은 결국 없던 일이 되었지만 이 글에서 그 과정은 길게 쓰지 않겠다.)


아들에게 며느리 험담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계속해서 발견되었다. 어머니에게 며느리가 한 명 더 생겼으니 그런 모습을 보는 일은 조금 더 잦아졌고 나는 오히려 점점 무뎌져 갔다. 나는 시어머니에 대해 '음흉한 사람'이라는 마음을 품기에 이르렀다.


시댁 가족 모임이 있을 때였다.

시어머니와 남편이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때 남편이 내게 와서 물었다.

“우리 애들 이 안 났을 때 양치했어?”

“했지. 거즈로 닦아주기도 했고, 좀 크고 나서는 실리콘 브러시 같은 영아 칫솔도 썼고.”

왜 갑자기 그런 걸 묻느냐고 하자, 형님 이야기가 나왔다. 형님이 어머니에게 아기 이도 닦아줘야 한다고 잔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아주버님네 아기를 봐주시면서 쌓인 불평을, 어머니는 큰며느리 앞에서는 참고 있다가 막내아들인 남편에게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들을 마주 할 때마다, 나는 그냥 아들과 엄마와의 대화로만 넘겼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또 과거의 기억들을 끌어왔다.

신혼 초, 남편에게 전화해 두 시간 넘게 아버지 흉을 보던 일.

남편이 혼자 시댁에 다녀오면, 무슨 말을 듣고 왔는지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고치라는 말을 쏟아내던 일.

그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내가 시어머니에게 했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남편의 입에서 다시 들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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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어머니 문자 메시지에 대한 나의 답장을 후회한다.

마지막에 쓴 문장을 후회한다.


이런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왜 썼을까.
그 말은 사과였을까, 아니면 관계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가 스스로에게 씌운 최소한의 예의였을까.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그날의 갈등을 끝내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
그 말 이후에도 관계는 계속되었고, 나는 나답지 않게 조용해졌다.


이해하라는 말은 늘 가장 쉽게 던져졌다.
그러나 이해는 언제부터, 상처 입은 사람이 대신 감당해야 할 의무가 되었을까.

그래서 나는 이제, 그 이해라는 말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해 왔는지 하나씩 되묻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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