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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메이징 그레이스 Jan 27. 2023

나의 여신님, 나는 타인의 삶을 평가할 자격이 있는가

[나의 사람들] 수희 언니

언니는 새로 일하게 된 회사에 잘 적응하고 다니는 듯했다. 평소와는 바뀐 언니의 옷차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대리만족을 하기에 충분했다. 다만 주말에 언니가 일하던 악세사리점에 놀러 갈 일이 없어진다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한국인이 드문 쇼핑몰의 분위기도, 예쁜 귀걸이를 구경하는 재미도 언니가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누렸던 소소한 행복들이었다. 내 아쉬움을 달래주기라도 하는 듯, 언니는 2~3주 정도 주말에만 액세서리 판매 일도 병행했다. 다음에 일하게 될 사람을 구할 때까지만 더 일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 악세사리점 사장은 독일 할아버지였는데 산타할아버지가 빨간색 옷과 모자 대신 평상복을 입고 있는 그런 느낌의 사람이었다. 그만큼 인상푸근하고 좋았다. 언니가 일하는 곳에 놀러 갔다가 그 할아버지와 함께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말하는 분위기도 동화 속에 나오는 할아버지처럼 인자하셨다. 

언니가 마지막으로 일하게 되는 날,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동안 고마웠다며 희와 주영이 언니, 그리고 나까지 초대해 주신 것이다. 독일식 레스토랑을 데리고 가주셨는데, 메뉴를 하나하나 설명하시면서 괜찮겠냐며 동의를 구한 후 식사를 주문했다. 할아버지의 표정과 말투에서 낯선 음식을 접하게 될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과 독일 전통 음식을 맛보게 해 줄 기대감이 느껴졌다. 식사는 꽤 맛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날 그 할아버지는 언니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언니에 대해서라면 왜 그러지 않겠으며, 누군들 그러지 않겠는가.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오면서 언니가 놀라운 이야기를 해줬다.

"저 할아버지는 동양여자애들 정말 좋아해. 솔직히 그게 좀 불편하긴 했는데, 그래도 와이프가 있으니까 별 상관 안 하고 다녔지. 근데 이혼한대."

식사 중에 내가 종종 못 알아듣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거였구나 싶었다. 나는 왜 할아버지가 당연히 혼자 사실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산타할아버지 같은 이미지가 강해서 그랬던 것 같다. 산타할아버지의 와이프는 본 적이 없으니까. 아무튼 할아버지에게 와이프가 있었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 그런데 이혼한다니 그것도 놀라웠다. 그런데 놀라운 이야기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그때  할아버지 나이를 물어봤었는데,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분명히 기억하는 건 수염도 하얀색이었다는 사실이다.

"와이프가 한국사람이야. 그 언니 나보다 두 살인가 세 살 밖에 안 많아. 그럼 많아야 31살이라는 건데. 쇼킹하지?"

나는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쇼킹하지 않냐고 물어보는 언니는 오히려 덤덤하게 말했다.

"근데 왜 이혼하는데?"

"그 언니가 영주권이 나왔거든. 목적을 달성한 거라 볼 수 있지."

"와... 언니 그럼 처음부터 돈 때문에 결혼한 거였어? 영주권이 우리나라돈으로 환산하면 10억 이상의 가치라며. (약 20년 전 기준) 너무 충격적이야.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근데 너는 돈 때문에, 영주권 때문에 저런 할아버지랑 살 수 있어? 잘 수 있어?"

"아니 못하지. 미친 짓이야."

"뭘 미친 짓까지... 그러니까 꼭 돈 때문만은 아니라는 거 아니겠어? 둘 중 누군가는 사랑했을 수도 있고 둘 다 한때는 정말 사랑해서 결혼한 건지도 모르고. 뭐... 모를 일이지만... 비즈니스였던 거지. 그 언니한텐. 할아버지도 그 사실을 모르고 결혼한 것도 아니니 사랑했던 건 맞는 것 같아."

"와... 여기서 한국여자들 이미지가 그렇게 안 좋다더니 다 그런 여자들 때문에 그런 거 아닌가? 너무 실망이다. 저 할아버지도 실망이고."

"그레이스, 그렇게 생각해?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대단한 거야. 남들이 욕하는 건 쉬운지 몰라도 다들 그렇게 못하잖아? 유부남이랑 결혼한 것도 아니고 비난받을 이유는 없어. 결혼했다 이혼하면서 영주권 쉽게 땄다고 생각할 순 있겠지. 근데 그게 정말 쉬운 일이냐고 어디. 영주권 따자고 저런 할아버지랑 잘 수 있어? 엄청난 거야. 영주권 쉽게 땄다고 말할 수 없는 거야."

언니가 하는 말들을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때 나는 고작 26살이었고 그래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언니 역시 나보다 고작 몇 살 더 많은 20대였다. 그렇지만 타인의 삶을 대하는 태도는 하늘과 땅 차이처럼 달랐다.

언니한테 들은 이야기만으로, 그 할아버지의 와이프에 대해 평가하기엔 무리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확히는 몰라도 당시 31살이었으면 지금의 나보다 열 살이 더 어린 셈인데, 이렇게 나이를 세어가며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을 헤아려본다는 것도 내 잣대로 기준을 세우고 평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이해하려 노력해 봐도 나의 삶의 방식이 기준이 되어 이해의 폭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직도 종종 언니의 질문을 떠올려 본다. 돈 때문에 그런 삶의 방식을 택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선택에 스스로 떳떳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지만 답을 찾을 수 없다. 중년이 된 지금 그때와 달리 깨달은 것이 있다면 우리의 삶의 모습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는 것이며, 그걸 내 기준에 따라 옳고 그르다 평가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다만 나와 다른 상대방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 나와 다르다고 비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더불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제각각의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이 사람의 말에, 저 사람의 태도에 흔들리지 않고 나의 중심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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