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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메이징 그레이스 Mar 15. 2023

평생을 기억하게 되는 부모님의 말씀이 있나요?

고전 질문 독서 [앵무새 죽이기]

아빠 말씀을 기억한 나 자신이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생각은 3주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




대학생이 되고 여름방학 때,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파리바게트에서 새벽 5시부터 낮 2시까지.

그 시절 파리바게트는 김희선이 광고를 하고 있었다. 하얀 에이프런을 하고 빵가게 앞에 종을 치며 "빵 나왔어요"라고 예쁘게 소리치는 그 모습에 나를 이입시키며 "빵 나왔어요"라고 수줍게 말하는 나를 상상했었다. 물론 그런 모습으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조용히 나가서 기계적으로 종을 땡땡 울리고 들어와 바쁘게 다음 일을 처리했다. 시커멓고 땀에 찌든 모습으로.


아르바이트 시작 전 날, 김희선처럼 일하게 될 나를 상상하며 설레서 잠을 잘 못 자고 있데, 아빠가 나를 불러 앉혔다. 심각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요점은 성실하게 일하라는 건데, '성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셨다.


"방학 동안만 하는 일이지만 한 달만 하고 그만둔다는 생각으로 일하지 말고, 그 사람들이 언제든 다시 너와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해야 해."


그만큼 책임을 다하고 성실하게 하게 일하라는 거였다.

나는 아빠의 그 진지한 표정을 살면서 몇 번 본 적이 없다. 그만큼 장난기 많은 아빠인데 그날 유독 엄숙한 표정으로 말해서 그랬는지 아직도 아빠의 모습과 표정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6시까지 출근이었지만, 사장님은 첫날부터 앞으로는 5시 반까지 오라고 하셨다. 알고 보니 파티시에 언니는 4시 반에 출근하고 있었다. 5시 반부터 나가서 매장을 청소하고 파티쉐 언니에 의해 갓 구워져 나온 빵들을 매장에 진열하고, 케이크 데코레이션 도와주고 철판 닦고, 그러다 보면 7시 반 정도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카운터를 지키고 캐셔로 일하기 시작한다. 그즘부터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9시 1교시 수업도 툭하면 지각하던 내가 볼 때 완전히 신세계였다. 사람들은 이렇게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구나. 그렇게 바쁜 아침을 보내고 숨좀 돌리려고 하면 곧 퇴근시간이었다. 조금 쉬려고 하면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발견한 사장님이 또 새로운 일을 시키고, 정말 아르바이트생 한 명 고용하고 완전히 뽕뽑아 먹는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한 달도 금방 지나갔다. 아빠의 말을 명심하며 한 달을 보냈더니, 역시나 정말로 내가 한 달만 일하고 그만두는 것을 사장님은 너무 아쉬워하셨다. 지금까지 많은 아르바이트생을 써봤지만 나처럼 일머리 좋고 빠릿빠릿하게 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며, 2학기 시간표 잘 짜서 오후 파트로 일해줄 것을 권했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거절했다. 5시 반까지 출근하라고 해 놓고 한 달 급여를 줄 때 그 30분은 계산해주지 않던 것에 일차적으로 마음이 상했던 것이다. 또 휴식시간 5분도 주지 않고 끊임없이 부려먹던걸 떠올리니 여긴 무조건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지금의 나라면 당당히 얘기해서 30분에 대한 급여를 받아내거나 그래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노동부에 신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매일 30분에 대한 급여보다 아빠와의 약속을 지켜냈다는 것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 20대 초반의 나는 어느덧 40대 중년이 되었다. 전업주부로 생활하다가 작년에 원주의 한 대학교에서 직업상담사로 일하게 되었고,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일을 그만두고 나왔다. 이렇게는 더 이상 일 못해요! 하고 나와서 다시 출근하지 않았다. 자초지종이 어떻든 그날 후로 스무 살 때 아빠가 했던 말이 계속해서 내 뒤통수를 따라다녔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빠에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하루는 이런 속상함을 엄마에게 털어놓았는데 엄마는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서 놀라웠다.


"아니 언제 적 한 말을 아직까지 담고 살아 딸,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거고 상황이 그랬던 거잖아. 그냥 잊어버려!"


저 말을 아빠가 해줬으면 잊어버릴 수 있을까...?

4월부터 서울에서 다시 일을 시작할 계획이다. 30대에 함께 일했던 분이 새로 회사를 차리셨는데 내가 서울로 이사온다는 걸 알고 바로 제안을 해 주셨다.

"애들 학교 보내놓고 뭐 할 거야. 얼마 줄 테니까 나와. 와서 나 좀 도와줘."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그분의 제안이 무척이나 설렜다. 원래 하던 일을 다시 할 수 있다니 분명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일을 다시 시작하면, 아빠랑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으리라 스스로에게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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