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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팬, 그 낯선 동화

아이들의 눈으로 다시 읽는 피터팬

by Nova G

차를 타고 이동하던 어느 날, 뒷자리에서 7살 딸아이가 흥얼거리며 노래를 불렀다.

잠자리 동화로 많이 틀어줬던 <키즈캐슬 동화뮤지컬, 피터팬>의 노래였다.


“내 칼을 받아라, 휙휙휙!”


옆에 있던 10살 오빠가 자연스럽게 받아친다.


“갈고리를 받아라, 휙휙휙!”


그렇게 즐겁게 이어지던 노래는 갑자기 끊겼다.
딸아이가 중얼거리듯 한마디 던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피터팬은 참 이상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왜 후크 선장을 죽게 만들어? 죽일 것까진 없잖아.”


순간, 나는 멍해졌다.
아이들이 동화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 쉽게 ‘죽음’을 입 밖에 내는 동화 속 세계를 이미 간파했다는 점 때문일까.


동화 속 인물들은 너무 쉽게 누군가를 조롱하고, 단순한 이유로 벌을 주며, 심지어 의아할 정도로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다룬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백설공주, 인어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 공주 시리즈 이야기들이 대부분 그렇고, 전래동화에서는 죗값으로 하늘에서 떨어져 죽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나를 더 놀라게 한 건, 잠시 뒤 이어진 아들의 말이었다.


“난 더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 왜 웬디한테 네버랜드의 엄마가 되어달래? 엄마가 되는 게 얼마나 힘든데! 게다가 피터팬이 해준 것도 없어. 오히려 피터팬 때문에 네버랜드에 갔다가 죽을 뻔했잖아!”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너무 정확하고 성숙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겨우 입에서 나온 대답은 이것뿐이었다.


“그래도 네버랜드에서 하늘을 날아봤잖아.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모험 아니겠니?”


하지만 대답을 하고 나서도 씁쓸했다. 과연 그것이 신나는 모험이었을까. 죽을 뻔한 두려움과 바꿀 만큼 값진 경험이었을까?

그날 밤, 아이들의 목소리가 자꾸 되새김질되었다.

동화를 동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들을 안타까워해야 할까.
아니면,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기특하게 여겨야 할까.


솔직히 말해, 나는 아들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동시에 아이들의 동심을 오래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 또한 숨길 수 없었다. 어쩌면 이제는 ‘이야기를 단순히 즐기는 나이’를 지나,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해석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나이’로 자라났음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문득, 아이들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왜 엄마 허락도 없이 집을 나가. 집 나가면 개고생이야. 모르는 사람 절대 따라가면 안 돼. 하늘을 나는 게 뭐가 중요해? 후크 선장한테 못 풀려났으면 평생 엄마 아빠도 못 보는 거야.”


나의 말은 꽤 단호했다. 아마 그 순간만큼은 내 속마음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의 날카로운 질문 덕분에, 나의 피터팬은 다시 낯설어졌다.

피터팬은 더 이상 단순히 ‘영원히 아이로 남고 싶어 한 소년’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새롭게 조명되는 낯선 이야기였다.


다음번에는 또 어떤 동화가, 어떤 질문이, 나를 놀라게 할까.

아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다시 쓰게 될까.

어쩌면 동화는 완성된 책이 아니라, 매번 읽는 이의 눈으로 새롭게 쓰이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은 자라나고, 나는 부모로서 또 한 번 자라난다.

네버랜드는 결국 아이들의 상상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상상과 질문이 살아 있는 한 우리 곁에서 날마다 새롭게 열리는 공간일 것이다.

그렇다면, 피터팬의 모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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