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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경김웅기 May 29. 2020

'판'에 낀다는 것

윤동주 시인을 만나다

슬럼프가 아니라 겁이 났던 것이다.



꽃이 핀 줄도 모르고 봄도 가고 여름도 가겠다. 분명 코로나19 탓이 크다. 코로나19라는 이름은 아무래도 정을 붙이려야 붙일 수 없는 것 같다. 질병에 대고 정을 논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로봇처럼 이름에 숫자가 들어간 것도 그렇고, 우리를 너무 아프게 하니까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든 건 지난 4월 말쯤부터다. 그때 나는 <오래된 나의 시인>에 연재할 시인으로 '윤동주'를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 일이 너무 바빴다. 특히 학교의 신문기자 신분으로 서울시 청년청장님을 만나기 위해 한참 준비 중에 있었기 때문에 결국 일곱 번째 연재는 펑크가 나버렸다. 한 번 펑크가 나버리니 그 이후로 다시 컴퓨터를 부여잡고 쓰는 게 어려웠다. 이럴 때 보면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요상하다. 한 번 어긋나면 영원히 어긋날 것처럼 행동해버리니까 말이다. 하지만 거진 한 달 동안 미룬 <오래된 나의 시인> 연재인 만큼 오늘로 전화위복 되길 바라는 심으로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김웅기는 과연 돌아온 탕아처럼 화려한 부활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아 참, 궁금하진 않겠지만 청년청장님은 잘 만나고 왔다. 우선 청년청장이라는 직함이 낯선 독자 분들을 위해 간략히 소개를 하자면, 서울시에 소속된 청년청이라는 분과를 운영하는 공무원을 의미한다. 는 일은 청년정책 아이디어를 청년들이 만들면, 그것이 실질적인 정책으로 탄생하게끔 조력하는 역할이다. 나도 처음에는 일반적인 청년단체의 대장쯤으로 생각하고 찾아갔으나, 시청역 시티스퀘어에서 출입증을 받아 최신식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으로 가면 청년청이라는 행정청이 있는데, 그곳 가장 안쪽 공간에서 만나 수 있는 분이다. 이분을 만나러 갔던 것은 신문 1면에 실릴 인터뷰를 따기 위해서였다. 공무원이라서 정치적인 질문을 할 수 없었기에 큰 기대를 할 수 없었지만, 예상과 다르게 인터뷰가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외부에서 온 공무원이었기에 틀에 박힌 답변이 아니라, 어느 정도 원하는 인터뷰를 구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정치외교학과에 다니는 친구에게 물어니 청년단체는 물론이고 정치사회에서 꽤 유명한 분이었다.


인터뷰에서 나는 청년위기, 학업청년들을 위한 지원, 청년들의 정책 참여 등 다양한 질문을 했으나, 화두는 역시 코로나19였다. 인터뷰 내내 진중한 분위기가 이어졌지만, 코로나발 청년 대량실업과 더불어 코로나블루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 포스트 코로나를 대처하는 청년들에 대해서는 특히 어렵고 심각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 중에서도 청년 대량실업과 관련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 여기에 옮겨 본다. 청년청장님은 현재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수축이 대량 해고를 불러오고 있는데,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가장 많은 실업률을 보인 세대가 20대, 그 다음이 40대, 30대 순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코로나발 실업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20대 청년들인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다음에 있었다. 코로나19로 대량 실업 사태가 이어지니, 실업자들을 복직시키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에 정책이 집중돼서 처음부터 경력조차 없었던 미취업 청년층의 진입장벽 더욱 높아졌다는 것. 그러니까 국내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해서 청년실업 이슈가 대두되고는 있지만, 이런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실업청년보다 아직 취업을 해본 적조차 없는 청년들의 사각지대가 더욱 넓어질 것이라 보고 있다는 것.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청장님?' 하고 되물었다. 현재로써는 '청년수당' 수혜 범위를 확대하고, 파트타임직이라도 늘릴 수 있는 일자리 정책을 준비 중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표정에서 미안함이 느껴졌다. 급한 불이 재난 수준일 때, 우리는 주저앉고 만다. 힘 풀린 다리를 누가 부축하여 줄까.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걸 현실적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장미 병들어
옮겨 놓을 이웃이 없도다.

달랑달랑 외로이
황마차 태워 산에 보내걸나

뚜-구슬피
화륜선 태워 대양에 보낼거나

프로펠러 소리 요란히
비행기 태워 성층권에 보낼거나

이것저것
다 그만두고

자라가는 아들이 꿈을 깨기 전
이 내 가슴에 묻어다오

<장미 병들어> 전문


슬슬 인터뷰를 끝내기 위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 신문사의 마지막 질문은 학생 청년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리는 것이다. 청년청장님은 '코로나로 다들 힘든데, 이럴 때일수록 작은 성취라도 느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집에서 혼자 밥상 한 번 차려서 먹어보는 일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 말이 참 단순한 덕담 같아도 곱씹어 보면 어떤 말보다도 위로가 됐던 것 같다. 그렇게 인터뷰는 끝났지만 나의 일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나도 청년이었지' 하는 생각이 자꾸 맴돌아서 빨리 작업을 끝내고 싶었다. 그길로 나는 경주로 향했다. 한 집에 다섯 식구가 옹기종기 살던 그곳에는 이제 부모님 두 분만 계시고 다들 독립했다. 그 중 내가 제일 멀리 와서 산다. 코로나19에 교통비도 만만치 않으니, 설날에 한 번 내려가고는 처음이었다. 이참에 한 일주일을 쉬자고, 다른 일은 다 팽개치고 인터뷰 녹음본과 노트북만 가지고 갔다. 그리고 전사를 시작했다. 한 글자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1시간 30분짜리 인터뷰를 꼬박 4시간 동안 컴퓨터에 옮겨 적는 노다가를 했다. '청년들을 호명하는 일, 그래서 청년들이 고립되지 않고 혼자서 끙끙 앓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다 쓰고 보니 나에게 가장 진하게 남 한 문장이었다. 100매 가까이 되는 전사본을 25매로 줄여가면서 내 마음 속에는 250매 분량의 인생 교훈을 만들 수 있는 일이 바로 인터뷰 작업이라면서 애써 아까운 마음을 위로했다. 나 이제 건강한 청년으로 살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을 표출하기에 효도는 참 좋은 방법이다. 마침 경주집에서 일주일을 지내게 됐으니 아버지 일도 도와드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정기식사권을 끊어놓았다는 기사식당 같은 뷔페집에 가서 점심도 얻어 먹었다(이건 효도가 아닌가?). 집에서 쉬는 날이면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도 돌렸다. 어머니가 앉아서 저녁 드라마를 보실 수 있게 됐다. 아버지에게는 도통 어려운 스마트폰 글자 키우기 같은 걸 뚝딱 해결해주거나, 미스터트롯 임영웅 노래를 전부 다운로드해서 어머니 USB에 넣어주는 일을 '효도'랍시고 했던 것이다. 저녁 밥상의 주제는 항상 내 대학원 이야기였지만, 힘든 내색을 하기보다는 이렇게 하면 강사직을 딸 수 있고, 교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지금은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드렸다. 주말에는 작은누나네, 큰누나 없는 큰누나네가 와서 북적북적 맛있는 것도 먹고 소주와 막걸리를 섞어 마시면서 새벽까지 놀았다. 큰누나는 산후조리 중이라 올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경주에서의 일주일도 금방 가버렸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는 대구로 갔다. 대구에서 부자 동네라는 곳에 살고 있는 우리 큰누나와 새 조카를 만나기 위해! 나는 조카들이 많지만, 생후 두달도 채 안 된 아이를 보는 것은 언제나 신기한 일이었다. 그리고 고생한 큰누나를 위해서 백화점에서 마카롱을 사갔더니, '역시 여친 있는 놈은 다르네!'라고 했다. 여친 만나기 전의 나는 얼마나 개차반이었던 걸까? 이렇게 또 반성을 해본다.


큰누나와 작은누나는 나랑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찐(?)어른들이다. 누나들을 보면 진짜 어른들의 세계에서 잘 살아남은 사람들 같다. 취업도 척척, 결혼도 척척, 자녀계획도 척척!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자신들이 뭘 하고 싶어 하는지도 잘 아는 사람들 같다. 하지만 그만큼 포기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도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런 어른들의 세계가 너무나 복잡해서 한동안 그 세계를 외면하면서 살았다. 누구를 기념할 일이 있어도 그냥저냥 넘어 갔고 눈치를 보거나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침묵만이 살 길이었다. 좋아하는 일은 있지만 포기해야 하는 일은 잘 몰랐다. 하지만 나도 이제 어느덧 젊다고만 하기에는 애매한 나이가 되어버렸다. 특히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른들의 세계에 들어가지 않고 다분히 의존적인 막내 노선을 꾸준히 탄다는 것은 상당히 힘들었다. 부모님께도 마냥 허황된 꿈만 꾸는 어린이가 아니라 현실적인 걱정이나 고민을 가진 어른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 그렇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라 분명 '노력'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저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의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판'을 볼 줄 아는 능력을 길러야 했다.


바닷가 사람
물고기 잡아 먹고 살고
산골엣 사람
감자 구워 먹고 살고
별나라 사람
무얼 먹고 사나.

<무얼 먹고 사나> 전문


'판'을 본다는 것에 대해 내 나름대로 해석하면, 그것은 단순히 상황을 판단한다는 의미를 넘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있더라도 내 호구지책 정도는 있어서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소위 '철 없는 어른'이라고 할 때, 그들은 직업도 변변치 않은데 몽상만 하고 있는 '어른이' 같은 느낌이다. 나는 그런 '어른이' 중 하나였다. 대학에 들어와서 문학을 공부한 지 벌써 여섯 해가 지나가는데, 여전히 등단도 못했고 이렇다 할 연구 성과도 없으니 말이다. 문학으로 먹고 살아야 할 사람이 문학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도, 나는 그것이 슬럼프인 줄만 알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당근만 주었다. '오늘은 이정도 했으니까, 조금 쉬고 내일은 더 잘해보자!'라는 말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당근 때문에 연재하기로 마음 먹었던 <오래된 나의 시인>도 이렇게 한 달이나 빼먹은 것이 아닌가.


물론 이 말이 무조건 자기 자신을 밀어붙이는 것이 능사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내 스스로가 무얼 먹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너무 멀리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나는 '판을 본다는 것', 여기에서 딱 두 글자만 바꿔보려 한다. '판에 낀다는 것'으로. 이런 관점에서 좋은 어른이자 시인이었던 한 사람, 동주의 문학 인생 완벽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동주는 비등단 시인이다. 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후일 절친으로 알려진 강처중의 발문과 시인 정지용의 서문으로, 지금 말로 치면 독립출판으로 발간됐고, 그것 동주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유작이 됐다. 그러니까 현대 문학 제도권의 관점에서 냉정하게 이야기 하자면, 동주는 문학'판'에 끼지 못했던 시습작생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도 동주를 시습작생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영화 <동주>에서 지용이 동주에게 '자네 시인이구만'이라고 했던 장면처럼, 그의 작품과 시를 사랑하는 마음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우리는 충분히 동주를 시인이라고 인정한다. 다시 말해, 동주는 누구보다도 문학판에 '' 사람이었다.


나도 시를 참 좋아한다. 하지만 문학판에 끼고 싶어서 했던 일들은 시를 사랑하는 보다는 맹목적으로 달려들어 공모전에 참여하고 준비 안 된 시들을 출품했던 들이었다. 청년청장님이 청년들을 위해 청년들의 판에 끼어들었던 때는 언제부터였을까. 부모님과 누나들이 어른들의 판에 끼어들기 위해 포기했던 꿈과 성취한 현실은 무엇이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4월이 지나고, 5월도 다 지나가는 중이다. 지금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저 문학이 좋아서 문학을 하던 나의 마음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다시 시를 사랑하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간, 지친 마음을 헤아릴 수 없어 너무 답답했다. 하지만 이제 하나는 정확히 알겠다. 그 지친 마음이 문학을 하겠다는 의지가 너무 강해서 일어난 탈진은 아니었음을. '견딤'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만 그 속에 내가 없었다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었음을. 요즘은 현실적으로 내 꿈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에 대해 정리하고 있다. 오늘은 심지어 꾸준히 해오던 재택알바에서 짤렸다. 이런 식으로 현실은 늘상 서슬이 퍼렇기에, 정신을 차리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시도 꾸준히 쓰고, 글도 꾸준히 쓰고, 스마트폰은 적게 할 것이다. 조금씩 건강해질 것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판'의 중심에 가고 싶다. 그럴 것이다.


윤동주(1917-1945)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낭만도 모르겠고 저항도 모르겠고
오늘은 그저 당신께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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