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해경김웅기 Apr 04. 2024

벚꽃오프닝

건강한 청년이 되겠다 다짐한 목요일

연휴를 앞두고 일이 끝나자마자 꼼장어집으로 갔다. 벌건 숯불에 지글지글 익어가는 꼼장어를 보면서 언제 다 익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찰나였다. 우리의 얼굴도 함께 벌개지는데 사장님이 멀리서 외쳤다. 이제 다 익었으니까 드셔도 돼요! 우리는 술잔부터 채웠다. 깻잎에 마늘, 고추, 겉절이 탑을 쌓고 그 위에 꼼장어 두 점을 절묘한 균형으로 안착시킨다. 관건은 빠르고 정확하게 7개에서 8개 정도의 손가락을 사용해 이것을 입에 딱 맞는 크기의 동그라미로 만드는 것이다. 준비가 다 된 나는 술잔을 들었다. 아직 준비를 덜 끝낸 친구들을 너그럽게 기다려준다. 자 이제 한 잔 할까?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세 병이 되고 발끝 손끝이 점점 간지러워진다. 우리는 구워놓고 새까맣게 잊어버린 양파가 정말 새까맣게 타버리고 만 것을 보며 채소는 타도 괜찮아라든가 2차는 어디로 가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생각과 더불어 또 조금은 다른 생각도 겸하고 있었는데 이대로라면 나에게 남은 주량은 두 병 남짓이겠고 만취해서 집에 갈 경우 비밀번호를 틀리는 순간 연휴와 함께 슬기로운 감방생활이 시작되겠군 같은 위기감에 대한 고찰이었다. 그래서 조금 조절하기로 마음을 굳게 먹고 2차를 갔다. 그러나 결국 그 마음을 실패하게 된 이야기를 이제 해보겠다는 것이죠. 첫 번째는 안주의 기가 막힌 조합이었다. 치킨 집에 가서 피자와 팥빙수를 시키겠다는, 먹어보지 않고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의지와 용기에 나는 마음을 홀라당 뺏겼는데 심지어 맥주가 아니라 소주를 시켜버리는 바람에 양식과 소주가 은근 미친 조합이라는 사실에 통감하면서 한 잔 두 잔 세 병 또 부지런히 달리고 있었는데 사장님이 서둘러 마감을 치더니 황도와 함께 남은 한 자리에 앉으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두 번째 사장님의 치킨 집 스토리가 또 너무 재밌고 황도는 또 너무 달고 정신을 차려보니 택시 안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깨우치기 위해 근처 지하철역에 내려달라고 하니 기사님이 왜요? 그냥 편하게 타고 가세요 하는 말을 호의로 듣고 그럴까요 그럼 하면서 기사님과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인생이란 게 원래가 제멋대로죠. 저도 대학 나오고 월급 나오는 회사에 다닐 때까지만 하더라도 운전대 잡을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어요. 선생님은 그래도 많이 배우셨고 또 저보다 훨씬 어리시니까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거예요. 하는데 지금 이 순간 나를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주는 이 일보다 더 큰 일이 있을까 하면서 기사님 얼굴을 쳐다보니 기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디어디로 가도 길은 뚫려 있다잖아요. 그 말이 어디어디로 가도 집에는 갈 수 있다는 말이에요.


나는 왜 문학을 할까.


돌연 그런 생각에 잠겨 깊은 잠을 자고 말았다. 선생님 다 왔어요. 감사합니다. 택시에서 내린 후 집 앞에 섰다. 우리 집. 비밀번호를 틀리지 않는다. 아내는 자애로운 표정을 하고 화장대 앞에 앉아 있고 고양이들은 간식이라도 줄까봐 애옹거리는데 여기가 우리집. 어떻게 왔는진 모르지만 수많은 도로와 신호등과 직업의식과 책임감과 애정이 나를 우리집으로 이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아내는 나보고 도대체 누구한테 그렇게 전화해서 사랑 고백을 하는 거냐고 물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니 한숨을 푹 쉬었다. 고양이 밥 주고 화장실 치워달라는 당부를 남기고 아내는 출근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지만 더듬더듬 손을 뻗어 침대 머리맡에 절묘한 균형으로 틈새에 빠지지 않고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 휴대폰을 간신히 집어들었다. 전화기록에는 같이 술을 마셨던 어제의 동지들 이름이 하나씩 박혀 있었다. 그럼 그렇지. 취하면 전화 거는 이 습관. 언제 고쳐지는 것일까.


몸을 일으켜 세운다. 베란다로 저벅저벅 나간다. 나보다 먼저 와 있던 고양이가 흠칫 놀라며 나를 경계한다. 강변에는 벚꽃이 벌써 다 폈다. 저 벚꽃이 다 떨어질 때까지 나는 또 얼마큼의 술을 마시게 될까 같은 생각을 하다가 접는다. 이젠 좀 건강하게 살아보자. 건강한 청년이 되어보자! 마음 먹는다. 어제 내가 사랑했던 꼼장어와 친구들과 피자와 팥빙수와 사장님과 기사님을 떠올리며 나도 그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보기를 결심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취하면 안 된다. 금주다 금주. 저 벚꽃이 다 떨어질 때까지만이라도.

매거진의 이전글 먹고 사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