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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의인사 Aug 11. 2023

할매 만둣국은 시험 만점의 결정체

운동선수였던 나의 남편은 늘 시합에 앞서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놓는 게 자신만의 기도였단다.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는 나와 내 동생이 시험을 치는

아침이면 만둣국을 꼭 끓여주셨다.

왜? 시험 만점 받으라고!!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서 우리 집 살림은 늘 할머니 담당이었다. 할머니였지만 신식 할머니였기에 손녀들을 향한 지극한 사랑 역시 세련되었다.

만둣국을 시험 치는 날 아침마다 끓여주는 센스를 보아라!


할머니의 고향은 개성.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고향을 두고 온 가족이 남쪽으로

피난을 오셨는데 그래서 우린 부산사람이었지만

해산물보다 육고기가 주를 이루는 식단을 자주 먹었다.


만두피가 두꺼운 개성만두,

고사리, 김치, 돼지고기, 녹두 등이 푸짐하게 들어간  반죽을

기름을 자박하게 붓고 노릇노릇하게 구우면 두툼하고 바삭한 빈대떡이 된다.

그리고 시장에서 팔아도 되겠다며 주변 사람들의 극찬을

받았던 국물김치,

특별히 들어간 것도 없는데 국물 맛이 어쩜 그리도 진한지 모르는 멸치국수와 할머니의 손 맛이 듬뿍 담긴 비빔국수.

하나하나 나열해 보니 보통 정성이 들어간 음식들이 아니다.

내가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위한 밥상을 차리다 보니

할머니의 수고로움을 알게 되었다.

난 솔직히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들을 아이들에게 척척 내어줄 자신이 없다.

하지만 할머니는 뭐가 먹고 싶다 하면 척척 만들어주셨다.

그 사랑의 크기를 엄마가 되고 나서 가늠하게 된 것이다.


엄마에게 참 미안하지만 어릴 때부터 할머니의 밥을 먹고 자란 나는 몸과 맘이 지치면 내 영혼의 밥인 할머니의 음식들이 그리워진다.

이제는 다시 할머니의 음식을 맛볼 수 없다.

결혼 전 할머니를 도와 음식을 하려면 늘 할머니는 말리셨다.

"놔둬라. 시집가면 지겹도록 해야 하는데 뭐 하러 하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 마라."


요즘은 엄마가 바쁜지만 할머니의 음식처럼 만두도 직접

빚어주시고, 국물김치도 담아주신다.

어쩌면 엄마도 할머니의 음식을 그리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함께 살아온 미운 정, 고운 정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시어머니의 음식.


음식이란 참 신기하면서도 마법 같다.

아무리 화려한 레시피로 배를 채워도

결국 우리 인간은 집밥을 그리워하며 엄마의 손 맛을 그리워하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영혼의 밥이 되어줄 만한 음식이 있나 곰곰이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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