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 회복기
나는 유년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는 것에 큰 흥미가 있었다. 다양한 꿈 보다 하나의 꿈에 행복을 느끼는 어린이였고, 가족이나 친구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림으로 세심하게 표현해 주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서도 나를 향한 어머니의 애정 어린 욕심으로 태권도, 피아노 학원 등 다양한 경험을 해보았지만 그림 그리는 것 이상의 흥미를 주는 일은 없었다.
나에게 그림은 진심으로 대했던, 어렸던 내가 온 마음을 다했던 유일한 일이었다.
운이 좋게 남들보다 일찍 흥미를 발견했고, 나의 노력과 가족들의 헌신 덕분에 초등학교 때부터 고3 입시를 할 때까지 늘 미술학원과 함께 할 수 있었다. 나는 어쩌면 10대의 모든 청춘을 그림 그리는 것에 온전히 할애한 셈인데, 그 과정에서 '나에게 그림은 모든 열정을 할애해도 좋을 만큼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그래서 내가 지금 하는 일에 흥미가 떨어지는 것은 스스로에게 매우 큰 상실감과 괴로움이 동반된다. 30년 동안 온 마음을 다했던, 가장 가까이 지냈던 친구와 한 순간에 관계가 끊어진 것과 같기도 하고, 감사하게 생각했던 지난 시간을 모두 부정해버리고 포기하라는 것만 같기에.
작년 8월, 열정이 많았던 회사를 퇴사했다.
어느덧 6년 차 디자이너가 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절실했고, 그만큼 욕심이 많았다. 일도 사람도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고 한 순간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 자신을 너무 높게 판단했나.
감히 자만했나.
매 순간 일과 사람 모두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하다 지쳐버린 내 모습은 처참했고 미안했다. 나는 이내 다시 정신을 차리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료들, 친구들, 병원, 하나둘 어딘가의 도움으로 다시 이성을 찾았고, 스스로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어 조심스럽게 퇴사를 말씀드렸다. 내가 퇴사를 결정한 건 본인도 타인도 어느 누구의 일방적인 탓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때를 상기해보면, 번아웃이 왔던 걸까? 일도 사람도 열심히만 하려 했고 그런 나 자신에게 지칠 때로 지쳐버렸던 것 같다. 어쩌면 본인을 스스로 더 힘들게 만들었던 나 자신에게 가장 큰 회의감이 들었던 것 같다.
일종의 자기혐오로 시작된 나의 무기력은 잔인하게도 나에게 어떠한 열정도 흥미도 남겨주지 않았다. 타인을 배려한다고 정작 나 자신을 가볍게 여기고 소홀히 대했던 죗값을 퇴사 시점에 갑자기 한 번에 치루라고 독촉하는 듯했다. 나의 모든 열정을 할애해도 좋을 만큼 가치 있던 일이 언제 어느 시점부터 어디로 사라졌는지 파악조차 어려웠다.
내일. 아니 오늘의 삶조차 그려지지 않았다.
흥미를 잃어버린 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힘들고 괴로웠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내 옆에 있던 흥미라는 존재가 생각보다 나에게 더 큰 존재였나 보다.
누가 내 치즈.
아니, 흥미를 옮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