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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내댁 Feb 06. 2019

29살에 대한 단상

2019년 현재 나는 32살이다.


20대가 보는 32살은 일과 사랑 모두 성숙한 나이 같아 보이겠지만, 40대가 보는 32살은 아직은 어린 나이일 것이다. 일주일 전 29살인 후배와 점심을 먹게 되었다. IT 업계인지라 여자보다는 남자 직원이 월등히 많고, 일찍 입사한 내게는 후배보다는 선배들이 아주 많다.


여자 후배들이 있지만, 같이 일할 기회도 많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부담스러워할까 봐 미리 선을 긋는 편이다. 안 그래도 꼰대가 많은 세상에 나까지 불필요한 조언을 하지 않아도 그들은 힘들지 않을까.


이 후배도 프로젝트를 같이 하고 있어서 업무적으로는 자주 보고,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회사 시스템이나 프로세스에 대해 문의하면 나름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움이 너무 감사하다며 밥을 산다기에 마치 점심 약속이 없던 터라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너무 놀라서 그대로 얼어버렸다. 어쩜 내가 29살 때 했던 생각들, 말을 이 아이가 내 눈 앞에서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표정과 말투와 동공이 흔들리는 불안함까지도.


29살의 나는 남자 친구도 없었고 승진이 누락되어 커리어도 불안한 상태였다. 내향적인 내가 주말에 할 수 있는 것은 조용히 방에서 독서하는 것뿐이었다. 누굴 만날 에너지도 만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세상의 상처란 상처는 내가 다 받고 있는 것 같고 우주에서 제일 필요 없는 먼지라서 그 먼지가 없어져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나마 책을 읽을 때가 유일하게 내가 살아있는 시간이었고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에너지를 조금씩 모으는 순간이었다. 5일을 출근하려면 주말 이틀은 그렇게 보내야만 힘이 생겨나곤 했다.


하지만 내가 주말마다 방구석에 틀여 박혀 있는 것을 보는 부모님의 마음은 나와 같지 않았었나 보다. 몇 번씩 우울하다고 얘기를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네가 빨리 결혼하고 독립해야 엄마의 숙제가 끝난다는 거였다. 그러면 내가 결혼하려고 태어났냐고 울면서 소리쳤다. 남자 친구도 없는데 결혼이라니... 그렇게 29살을 힘겹게 보내고 다행히 이듬해 신랑을 만나 결혼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29살의 나와 유부녀가 된 지금 32살의 나는 똑같은 나다. 하지만 그때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주위 시선에,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고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산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젊은이의 미래 가치 따위는 무시하는 한국 사회는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한 끗 차이인데. 그렇지만 다시 29살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힘든 시간을 견뎌내겠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운동하고 책 많이 읽고 내가 나를 아끼고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거야. 절대 너 자신을 깎아내리지 마. 너는 너무 소중한 사람이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이런 말들 뿐이었다. 그 아이도 나중에서야 조급하고 불안했던 20대 때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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