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인가 실리인가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의 두 아들로 왕이 후사를 정하지 않고 죽는 바람에 서로 왕위를 양보하려고 한다. 두 형제가 왕위를 양보만 하니 고죽국 신하들은 가운데 왕자를 왕으로 세우고 백이와 숙제는 떠돌이 생활을 한다. 인품 좋은 서백 창(주의 문왕)에게 의탁하려고 찾아갔으나 그들이 도착했을 즈음 서백은 사망한다.
아버지인 문왕이 죽고 주나라를 건국한 무왕이 은나라를 치려고 하자 백이와 숙제는 왕은 은나라의 주왕뿐이라며 출전을 막으려 해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강태공이 막아서 간신히 목숨을 보전한다. 무왕이 은나라의 난을 평정한 후 은나라는 멸망하고 주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자 주나라의 녹봉을 먹을 수 없다며 수양산에 은거해 고사리를 꺾어 먹다가 끝내 굶어 죽었다. 그들이 수양산에 숨어 살면서 노래를 지어 불렀다.
오늘도 서산(수양산)에 올라 고사리를 캤네.
폭력을 없앤다며 폭력을 쓰고도
그 그릇됨을 그는 모른다네.
신농(神農)과 순(舜)과 우(禹)의 호시절은 절로 갔구나.
우린 이제 어디로 가지.
아아, 가자 죽음의 길로.
우리 목숨도 쇠잔했으니. (사기, 집문당, 김병총, 1994, 27쪽.)
백이와 숙제가 쓴 시를 들여다보면 은나라의 난을 평정하기 위해 무왕이 군사를 일으켜 진압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표면적인 명분일 뿐, 실제로는 은나라의 난을 빌미로 자신의 왕조를 세우려는 본질적인 속내를 꼬집고 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듯, 전쟁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폭력과 죽음이 동반되기에 그 시대를 살아가는 백성에게는 엄청난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백이와 숙제의 죽음에 대해 공자는 "불의를 혐오했지만 사람을 미워하진 않았다. 그것은 주왕의 악(惡)을 비유했으면서도 스스로 남을 원망하지는 않았으며 자신이 원망받지도 않았다. 이는 자신이 인덕(仁德)을 추구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에 대해 사마천은 의문을 품는다.
공자는 제자들이 의문을 제기하자 자신의 제자 안연(顔淵: 回)이 쌀뒤주가 비어 못 먹어 굶어 죽은 일화를 거론하며 부귀라는 것이 뜻대로 얻어지지 않기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도를 행하고 덕을 쌓겠다고 하며 백이와 숙제를 군자에 비유했다.
사마천은 백이와 숙제가 권세나 재물을 탐하지 않고 의를 지키며 굶어 죽은 후 공자의 칭송을 얻음으로써 현인으로 그 이름이 드러났다고 보았다.
백이와 숙제는 사마천보다 몇백 년 이전의 인물이기에 구전으로 전해진 이야기를 모아 <전>을 모았으므로 <열전>이라 했는데 <사기>가 역사서로 인정을 받지만 전해지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 보태지거나 변형되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중국은 하·은(상)·주나라를 거치고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진시황이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룩해 스스로 '황제'라고 칭했다. 그랬기에 그 당시는 '국가'라는 단어 자체도 없었고 개념도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전체적인 집합체로써의 국가가 아닌 혈통에 기반한 왕조의 개념이 더 강했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공자가 백이와 숙제를 현인으로 칭송한 것은 탐욕이나 권세욕이 없이 청렴하게 살다가 죽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는 개인의 인권이나 성취보다는 나라의 힘을 우선시했기에 그런 혼탁한 세상을 바라보면서 공자는 주변을 아끼고 챙기는 사람다움(仁), 인간의 도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백이와 숙제의 일화를 읽다 보니 문득 계유정난을 일으킨 수양대군에게 항거한 사육신이 떠올랐다. 누가 왕을 하든 세상은 어쨌든 굴러가지만 그들은 원래의 임금을 섬기고자 하는 의리를 목숨으로 대신했다. 자신만 살기 위해 권력에 따라 빌붙는 변절자에 비하면 그 고결함과 강직함은 추앙받아야 마땅하다.
현재라고 어디 다를까. 자기의 정치적인 권력을 잡기 위해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고, 어제의 적과 손을 맞잡는 일도 있다. 어제까지 뜻을 같이 한 동지를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배신하는 모습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마주한다. 워낙 정치적 권모술수가 난무하니 그런 행태를 바라보면서도 무감각해진다. 이젠 의리가 중요하냐, 실리가 중요하냐의 두 가지 관점에서 볼 때 의리보다 실리에 무게 중심이 기울 수도 있다.
현재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백이와 숙제의 '굶어 죽음'은 허무한 죽음이 된다. 현재는 한 개인의 인권과 성취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그 '은나라'가 뭐라고 허울뿐인 명분에 목숨까지 바치는 어리석은 인물로 평가할 수도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현재적인 관점이고 실리보다 의리나 명분을 중요시한 당시에서도 그것을 실천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의식과 삶을 대하는 방식이나 태도도 변화한다. 당시의 세계관에서는 그때만 보일 뿐이고 시간이 흐르면 물이 흐르듯 그런 의식에도 변화가 있기에 어떤 세계관이 더 가치 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처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가 될 수도 있고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가 될 수도 있다.
백이와 숙제가 주나라를 인정하기 싫어서 고사리만 먹다가 굶어 죽었다고는 하지만 그 결과만 가지고 그들의 삶을 평가하기는 무리가 있다. 고사리는 식물이니 그만큼 청렴하게 살다가 죽었다는 '청렴'의 상징성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짧은 이야기만으로 어떻게 단정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열전>에 실린 인물인 걸로 봐서 당시에 그들의 죽음이 시사하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