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종이냐, 연횡이냐
소진(蘇秦)은 동주(東周)의 낙양 사람으로 일찍이 제나라 귀곡(鬼谷 전국시대 종횡가의 대표적인 인물로 합종을 주장했던 소진과 연횡을 주장했던 장의의 스승이다. 귀곡 지방에 머물렀다하여 귀곡 선생이라 불렀으며, 저서로 『귀곡자鬼谷子』가 있다.)선생에게서 배웠다. 여러 해 동안 떠돌다 고향으로 돌아오자 그의 집안 식구들이 모두 그를 비웃는다. 이에 부끄러움을 느낀 소진은 두문불출하며 책에만 파묻힌다. 병서의 하나인 『주서周書』의 「음부」를 1년 만에 터득하여 상대의 마음을 설득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곧 주나라 현왕을 찾아가 유세하려 했지만 현왕의 측근들이 소진을 무시하고 상대해주지 않자 진(秦)나라로 향한다. 진나라 혜왕에게 소진은
“진나라는 사방이 요새로서 동쪽으로는 함곡관 (중국의 동쪽 중원과 서쪽의 관중을 가르는 교통과 군사상의 요지로, 동서 8킬로미터에 걸친 황토층의 깊은 골짜기로 되어 있다. 함곡관이라는 이름은 벼랑 위의 수목이 햇빛을 차단하기 때문에 낮에도 어둡고 그 모양이 함처럼 깊다하여 유래했다.)과 황화가 있고 서쪽으로는 한중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파와 촉 땅이 있고, 북쪽으로는 대代와 마馬 땅이 있으니 이는 하늘이 내린 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나라의 많은 백성들에게 병법을 가르친다면 천하를 병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나라 혜왕은 왕위에 오른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상앙을 죽인 뒤라 유세객들을 싫어했으므로 소진을 등용하지 않았다.
소진은 이후 여섯 나라(제, 초, 조, 연, 한, 위)를 찾아가 합종으로 강국인 진나라를 방어해야한다고 역설한다. 각 나라별 지리적 이점을 강조하며 합종만이 진나라에 대항해 나라를 지킬 유일한 방책이라고 설득한다. 마침내 연, 조, 한, 위, 제, 초나라의 여섯 왕으로부터 합종의 맹약을 받아낸다. 소진의 유세로 여섯 나라는 서로 합종하고 협력하게 되었고, 소진은 합종 맹약의 우두머리가 된 동시에 여섯 나라의 재상이 된다.
소진이 조나라 왕에게 보고하러 가던 중 낙양을 통과하게 되었다. 주나라 현왕이 사자를 보내 소진을 영접하고 위로하였다. 소진을 업신여겼던 그의 가족들 또한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엎드려 시중을 든다. 소진이 웃으며 형수에게 묻자 “작은 시아우님의 지위가 높고 재물도 많은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한다. 형수가 몸을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사과하자 소진은 탄식하며 말한다.
“똑같은 사람이건만 부귀해지면 친척까지도 우러러보고 비천해지면 업신여기니, 하물며 일반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만약 내게 낙양 성곽 가까이에 비옥한 땅 두마지기만 있었던들 오늘날 내 어찌 여섯 나라의 재상의 인수(벼슬에 임명될 때 군왕에게서 받는 일종의 표장)를 찰 수 있었겠는가.”
이 대목에서 우리는 얄팍한 세상의 인심에 대해서 느낄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내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아도 가진 자에게는 두려워하고,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까닭 없이 업신여기는 사람들의 단순함을 엿볼 수 있다. 어떤 지위나 자리가 그 사람을 빛내주는 겉치레에 불과할 뿐인데도 사람들은 하나의 자연인으로 대하지 않는다.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도 그 자리에 있을 때 빛날 뿐이지, 그것을 다 벗어던졌을 때는 평범한 서민일 뿐이다.
여섯 나라의 합종으로 진나라는 15년 동안 중원을 넘보지 못한다. 그 후 진나라는 서수를 시켜 제나라와 위나라를 꾀어 함께 조나라를 치게 하여 합종의 약속을 깨트리려고 한다. 두려워진 소진은 연나라에 사신으로 가 제나라의 배신에 보복할 것을 청하지만 소진이 조나라를 떠나자 합종의 약속은 깨지고 만다.
연나라가 국상 중에 제나라는 연나라를 쳐 열 개의 성을 빼앗는다. 합종의 맹약이 깨지자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 소진은 제나라 왕을 알현하여 연나라에서 빼앗은 성을 돌려주도록 하고 연나라로 돌아온다. 연나라 왕은 소진을 예전처럼 신임하지 않는다. 이에 소진은 ‘충성스러운 자는 자신을 위해 행동하고, 나아가 뜻을 이루는 자는 남을 위해 행동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제나라 왕을 설득한 것은 속인 게 아니라고 한다. 미생지신(尾生之信 어리석을 정도로 신의를 굳게 지키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소진은 연나라 왕에게 미신의 일을 들어 자신의 신의를 강조했지만, 장자는 『장자』 「도척편」에서 “쓸데없는 명분에 집착하여 소중한 목숨을 버리는 것은 진정한 삶을 모르는 것이다.”라며 미생과 같은 신의를 통박했다.)의 예로 충성을 다했음을 피력한다.
연나라 이왕의 모후와 정을 통한 소진은 훗날 자신이 주살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제나라로 떠난다. 제나라에서 소진은 객경客卿(다른 나라에서 벼슬살이를 하는 사람)으로 대우 받는다. 소진은 제나라 민왕으로 하여금 궁실을 높이 짓고 정원을 크게 만들어 제왕의 품위가 드러나도록 하라고 부추기지만, 제나라를 궁핍하게 해 연나라에 도움을 주기 위한 계책이었다. 제나라 대부 중에 누군가 자객을 보내 소진을 찌르게 했는데 중상을 입고 곧 죽게 되면서 자신이 죽으면 거열형으로 다스릴 것을 주청한다.
사마천은 말한다. 소진은 첩자의 죄명을 쓰고 죽었기에 천하 사람들은 모두 그를 비웃고 그의 술책을 배우기를 꺼려했다. 소진의 사적에 대해서는 항간에 여러 설이 많다. 이는 소진이 초라한 신분이었음에도 뜻을 세워 여섯 나라를 합종하게 한 것은 그 지혜가 보통 사람보다 뛰어났음을 말해 준다고 했다.
전국시대의 혼란기 속에서 소진의 활약은 지금으로 말하면 평화주의가 아니었을까. 만약 처음에 진나라에서 소진을 영입했더라면 결과가 어땠을까.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는 시기를 앞당겼을까. 그렇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지 알 수가 없다. 어찌되었건 소진의 유세는 힘센 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는 약육강식이 아니라 서로 타협하여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강한 나라에 빌붙어 전쟁을 부추기지 않았고, 각각의 나라의 장점을 부각시켜 여섯 나라의 왕들을 설득했다는 것은 단순히 자신만의 지위를 탐하지 않았기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훗날 연나라를 위한 소진의 계략이 드러났다지만, 합종을 이끌어 낸 것만으로도 나는 그를 평화주의자라 부르고 싶다. 아마 현 시대에 소진 같은 사람이 있다면 노벨평화상을 안겨주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강자가 약자를 집어삼켜 복속시키는 것이 아닌 공존하는 세상.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평함이 있었기에 사마천도 그의 뛰어남을 인정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