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군 열전

개혁만을 위한 개혁

by 글마루

원래 위나라 서얼 출신 공손앙.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되고, 그 동지가 다시 적으로 돌아서기도 하는 혼란한 시기. 공손앙은 자신을 알아보던 위나라 재상 공숙좌가 죽은 뒤 진나라 효공이 현자를 구한다는 말을 듣고 진나라로 간다. 효공을 알현하지만 처음에는 마음을 얻지 못한다. 몇 번의 알현 끝에 결국 위앙(공손앙)은 효공의 마음을 얻는다.


세상 사람들에게 비방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효공에게 위앙은 말한다.

“확신이 없는 행위는 명예가 될 수 없고, 확신이 없는 사업은 공적이 될 수 없습니다.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식견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서 비난받기 쉽고, 독특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백성에게서 비방을 받기 마련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미 이룬 일의 성과조차 모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압니다. 큰 공을 이루는 자는 뭇사람과 의논하지 않으며, 백성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결코 예법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자 대신 감룡이 말한다.

“성인은 풍속을 바꾸지 않고 교화하며, 지자(知者)는 법을 바꾸지 않고 나라를 다스립니다. 풍속에 따라 교화하면 수고하지 않고도 성공하며, 국법에 따라 통치하면 관리도 익숙하고 백성도 편안합니다.”

두지 역시 말한다.

“백 배의 이로움이 없으면 법을 바꾸지 않고, 열 배의 효과가 없으면 예법을 바꾸지 않는 법입니다. 옛 법을 따르면 과오가 없고, 예를 따르면 사악함이 없습니다.”


그러자 위앙은 세상을 다스리는 길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며, 나라에 이롭다면 옛 법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한다. 결국 효공은 위앙을 좌서장으로 삼고 옛 법을 고치도록 명한다.


그 새 법이라는 것이 매우 엄격했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연좌제를 적용하며, 죄를 고발하지 않는 자는 허리를 자르는 가혹한 벌을 적용한다. 포상은 그와 반대로 죄를 고발한 자에게는 적의 목을 벤 것과 같은 높은 상을 준다. 백성들의 모든 것이 정해진 기준에 따라야 한다. 물론 법대로 시행한 결과 법을 지키지 않는 자가 없을 만큼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법이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생각까지 지배하려는 가혹한 법은 사람들로부터 인심을 얻지 못한다. 스스로 내켜서 따르는 것이 아닌 법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지키게 되는 것이다. 사사로운 것까지 모두 법의 적용을 받으니 도덕으로 지켜야 할 것까지도 통제받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러자면 얼마나 긴장을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아차! 하는 순간 내 손목이 날아갈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한마디 했다가 혀가 잘릴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 정도로 당시의 분위기는 살벌했으리라 짐작한다.


어떤 이들은 군사정권시절 ‘삼청교육대’에 관해 긍정적으로 얘기한다. 법이 워낙 엄격하게 적용되었기에 처벌에 가차가 없었고, 범죄율이 가장 낮았다며 현재는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서 흉악범죄가 날로 증가한다고 안타까워한다. 나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고 동의한 적이 있다. 하지만 너무 강한 법의 부작용은 무고한 사람이 생긴다는 데 있다. 개개인의 인격은 모두 소중하며 존중되어야 한다. 이유도 모른 채 육체적, 정신적으로 짓밟힌 억울한 사람은 어디 가서 누구에게 보상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그게 과연 물질적인 보상으로 치유가 될까.


나는 상군의 개혁안을 보며 진시황이 먼저 떠올랐다. 진시황 역시 크게는 여러 나라로 쪼개진 중국대륙을 통일했고, 왕권을 강화하였으며 외세들의 침입에 대비해 만리장성을 쌓는 대사업을 추진했다. 결국 나라를 위한다는 것이 백성들을 수많은 부역에 시달리게 했고, 진시황이 죽고 난 뒤 진나라는 얼마 안 가 무너진다.


위앙의 제안으로 진나라는 위나라를 치게 된다. 상군은 편지로 위나라 공자 앙을 불러내어 사로잡는다. 결국 위나라는 진나라에 영토의 일부를 내어주고 강화를 맺는다. 위나라를 물리치고 돌아온 그에게 진나라 효공은 많은 땅을 하사하고 상군(商君)이라 부른다.


훗날 조량(趙良)이라는 선비가 상군에게 조언을 한다.

“남의 말을 듣고 반성하는 것을 총(聰)이라 하고, 마음의 눈으로 자기를 밝게 보는 것을 명(明)이라 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强)이라 합니다. 순 임금이 이르기를 ‘스스로 겸손하면 존경을 받는다.’고 했는데, 순 임금의 도를 논할 생각이 없다면 제게 물으실 필요가 없을 줄 압니다.”

조량의 충고를 상군은 듣지 않았고 진나라 효공이 죽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자 역적으로 몰려 위나라로 갔으나, 위나라 사람들에 의해 진나라로 돌려보내진다. 결국 상군은 자신이 만든 법에 자신이 벌을 받는다. 거열형에 처해져 사지가 찢기고 그의 일족들은 모두 죽임을 당한다.


개혁(改革)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 적용이 백성들이 편하고 많은 사람들이 같이 잘 사는 법이어야 한다. 국가(國家)라는 것도 국민들이 있을 때 존재하는 것이다. 그 당시 법을 바꾼다는 것은 지금으로 말하면 헌법(憲法)을 바꾸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물론 시대가 변하면 법이나 도덕도 따라서 변하긴 한다. 그렇지만 밑바탕 위에서 차근차근 바꿔야 부작용이 덜할 것이다.


상군의 법가사상은 훗날 한비자의 법가사상으로 이어지고 진시황이 중국대륙을 통일하는 데 한 축을 담당한다. 5 가구 혹은 10가구씩 묶어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도록 한 것은 후대로 내려와 조선 세조 때 '오가작통법'이 실시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누가 누구를 믿고 의지할 수 있을까.


상앙은 자기가 세운 법의 적용과 집행을 받았으니 ‘자승자박(自繩自縛)’한 꼴이다. 개혁이라는 명목 하에 권력을 오로지 한 것은 아닌지. 상앙뿐만 아니라 진나라 진시황도 우리나라의 조광조도 개혁군주 광해군도 결국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것은 아닐까. ‘지나침은 못 미침과 같다.’는 말이 떠오르는 아침이다. 나는 지금껏 어떤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으며 어떤 마음을 가졌었는지 한 번 더 돌아본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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