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 열전

의도론과 결과론

by 글마루

소진과 장의는 둘 다 귀곡 선생 문하에서 종횡술을 배웠다. 종횡술은 ‘합종’과 ‘연횡’(정치인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모여 뭉치기도 헤어지는 것)을 합친 말이다. 둘 다 각국의 제후들에게 유세 하러 다닌다. 소진이 진나라에서 유세를 받아들이지 않자 여섯 나라를 돌아다니며 강국인 진나라에 대항하여 서로 뭉칠 것을 제안한다. 그에 반해 장의의 입신은 소진보다 늦다. 소진이 전성기를 지나 스러져갈 무렵 장의가 고개를 내민다.


소진은 장의의 뛰어남을 진작 알아본다. 그를 무시하고 내치는 척하지만 장의를 몰래 후원한다. 겉으로는 장의를 업신여기는 것 같이 보이나 속내는 달랐다. 자신의 옛 친구와 함께 대사를 논한다면 경쟁관계에 처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 정쟁으로 이어져 전국시대는 자칫 더 혼란 속으로 빠질지도 모른다. 소진이 장의를 미워하고 경계했다면 장의가 뜻을 펼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크기도 전에 그 싹을 잘라버릴 힘이 분명히 있었다. 아마 소진은 장의가 연횡책을 쓸 것까지 짐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진의 합종책은 힘이 약한 나라에서 더 설득력이 있다. 소진과 장의의 차이점이 있다면 소진은 어느 나라이건 그 나라의 장점만을 내세워 자신의 종묘사직을 지키도록 방편을 세웠다는 것이다. 중국은 땅 덩어리가 어마어마하게 큰 대륙이니 7개의 나라로 쪼개어져도 서로 협력한다면 얼마든지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큰 대륙을 하나로 통일한다고 영원하지도 않을뿐더러 뭉쳤다 흩어지고 또 다시 뭉치고 흩어지는 반복은 그 후로도 계속 일어났다. 형태만 다를 뿐이지 혼란은 계속 있어왔다.


소진이 합종책을 펼쳤으니 장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하겠다.

소진과 달리 장의는 각 나라를 돌며 그 나라의 취약한 점만 내세운다. 그러면서 진나라의 강성함을 은근히 내세움으로 진나라에게 협조할 것을 부추긴다. 각국의 왕들은 그런 장의의 설득에 모두 넘어간다. 조나라 왕을 찾아간 장의는

“폐하께서 합종의 이로움을 믿게 된 것은 소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소진은 제후들을 현혹하여 옳은 것을 그른 것으로, 그른 것은 옳은 것으로 왜곡하여 말하고, 제나라를 뒤집어엎으려고 하다가 일이 발각되자 스스로 저잣거리에서 거열형을 받았습니다. 이런 자가 천하를 하나로 묶으려 했으니 실패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라고 주장하면서 조나라가 진나라가 화친할 것을 제안하고 조나라 왕은 그 뜻을 받아들인다.


이미 합종을 주장한 소진은 죽고 없는 터, 구심점이 없어졌으니 여섯 나라가 사분오열될 것은 뻔한 이치인 것이다. 소진이 여섯 나라가 힘을 합칠 것을 제안했다면 장의는 여섯 나라를 반은 협박으로 이간질을 시키며 진나라에 유리한 계책을 펼친다. 장의의 연횡법은 성공한다. 자신의 벗이었고 몰래 도와주기까지 한 소진을 폄하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영원한 패배자로 낙인찍히게 한다. 결과적으로 승자는 장의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가 승자인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히 짚어보고 싶은 게 있다. 장의의 연횡법이 성공해서 훗날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한다. 어렵게 통일한 진나라도 결국 진시황이 죽자 운이 다한다. 역사에는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나라, 최초의 황제로 기록이 남았지만 사직을 오래 보존하지 못했으니 그 역시 실패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합종’이 옳다. ‘연횡’이 옳다. 누가 단정할 수 있겠는가. 2500년 전의 시대상황과 지금의 시대상황 역시 다르다. 역사를 결과론적으로만 접근하면 우리는 역사적 인물들에 대해 심각한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전해 내려오는 기록들을 떠나서 소진과 장의의 인물됨을 평하고 싶다. 지금 현재도 무슨 일이든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한다. 결과는 ‘수확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소진에게 더 박수를 쳐주고 싶다. 적어도 장의보다는 교활하지 않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적이나 명예와 영달만 추구했다면 소진 스스로 거열형에 처해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소진이 장의를 미워해 해하려는 장면이 보이지 않는다. 그에 반해 장의에게는 인간적인 따사로움은 찾아볼 수 없다. 오직 목적만을 위해 소진의 허물을 부풀려 자신의 주장을 유리하게 함으로써 연횡에 성공했다고 사마천도 말했지 않았던가.


현재도 장의 같은 정치인만 넘친다. 오로지 이기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는 정치인을 보면서 씁쓸하기만 하다. 정치인은 세 치 혀로 흥하고, 세 치 혀로 망하기도 한다. 흥하기는 어렵고 망하는 것은 한순간인 것을 보면 ‘혀’가 중요하긴 하다. 속내가 어떻든 말로 표현하는 것이 그 사람의 전부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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