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
범수(范睢)는 위나라 사람으로 수가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 함께 따라간다. 제나라 양왕은 범수가 변설에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금 열 근과 소고기와 술을 하사했다. 그 일을 위나라 공자 중 한 명인 위제에게 고자질하고 범수는 늑골(갈비뼈)가 부러지고 이가 빠진다. 하인들이 변소에 그를 버리고 술 취한 빈객들이 그의 몸에 오줌을 누는 모욕을 줌으로써 나라의 비밀을 누설하는 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경계한다.
범수는 간수에게 통사정해 겨우 탈출해 ‘장록’이라 개명한다. 범수와 함께 달아난 정안평은 범수를 진나라 사신인 왕계에게 범수를 천거한다. 진나라는 소왕이 다스리고 있었으나 왕은 권력을 오로지하지 못했고, 모후인 선태후, 태후의 동생인 양후와 화양군, 소왕의 동생인 고릉군, 경양군이 실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범수는 1년 남짓 기다리다 기회를 엿본다. 양후가 장군이 되어 위나라와 한나라 땅을 넘어 제나라 강수를 쳐 자신의 영지인 도(陶)땅을 넓히려고 하자 소왕에게 글을 올린다.
‘용렬한 군주는 자신이 좋아하는 자에게 상을 주고 미워하는 자에게 벌을 주지만, 현명한 군주는 공이 있는 자에게 상을 주고 죄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내린다.’고 했으며
“명의는 환자의 생사를 알고 성군은 일의 성패에 밝습니다. 성공할 것 같으면 행하고, 실패할 것 같으면 행하지 않으며, 의심스러우면 먼저 시험해 봅니다.”
진나라 소왕은 범수가 보낸 글을 읽고 범수를 부르지만 범수는 시치미를 떼며
“진나라에 어디 왕이 있단 말이오, 태후와 양후만 있을 뿐이오.”라고 하며 소왕을 자극한다. 소왕은 범수에게 세 번 무릎을 꿇으며 “선생은 과인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겠소?”라고 간곡히 말한다.
정말로 소왕이 범수에게 세 번 무릎을 꿇고 가르침을 받으려고 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동양에서는 3이라는 숫자를 길한 숫자로 여겨서인지 세 번 무릎을 꿇었다는 대목을 읽는 순간 나는 유비가 제갈량을 얻기 위해 그의 초가를 세 번 방문했다는 고사가 떠올랐다. 실제로는 몇 번을 방문했는지 알 길이 없으나 세 번이라는 의미는 ‘정성스런 마음’을 나타냈음이리라 짐작해 본다. 귀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으니 그만큼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리라.
범수는 먼 나라와 국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계책을 펼친다. 그렇게 되면 한 치가 되었든 한 자가 되었든 모두 진나라의 차지가 된다는 논리이다. 그것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천하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나중에는 어느 나라든 전쟁을 할 수밖에 없다. 진나라가 천하의 패자가 되려면 중원의 세 나라, 한·위·조를 천하의 중심으로 삼고 그곳을 발판으로 초나라와 조나라를 위협하라고 말한다. 범수의 의견은 계속 받아들여진다.
진나라의 4명의 실권자에 대해
“무릇 왕이란 나라의 권력을 쥐고 있고, 사람들에게 이익과 해를 줄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자를 일컫습니다. 나라에 귀인이 네 명이나 있으면 나라가 위태롭지 않을 리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이들 네 귀인 아래에 계시니, 실상은 폐하께서 계시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옛말에도 ‘나무에 열매가 지나치게 달리면 가지가 부러지고, 가지가 부러지면 나무를 해친다. 너무 큰 봉토를 가진 자는 나라에 위태롭고, 높이 오르는 신하는 군왕을 얕잡아본다.’고 했습니다. 저는 폐하께서 조정에서 고립된 것을 보고 만세 후에 진나라를 이어갈 분이 폐하의 자손이 아닐까 봐 은근히 근심하는 바입니다.”
라는 말로 소왕을 자극한다. 이에 소왕은 태후를 폐위하고 양후·고릉군·화양군·경양군을 추방한다. 범수를 승상으로 삼았으며, 응(應)땅에 봉하여 응후(應侯)라고 불렀다.
한편 범수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위나라에서는 진나라가 위나라를 치려한다는 말을 듣고 수가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낸다. 범수는 남루한 복장으로 수가와 재회하고 수가는 범수에게 명주 두루마기를 준다. 범수가 ‘장록’이라는 이름을 썼기에 승상 장록을 만나고 싶다는 수가에게 주선을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드디어 범수가 승상임을 알아본 수가는 머리를 조아리며 엎드려 사죄한다. 그런 수가에게 범수는
“내가 제나라와 내통한다고 위제에게 고자질했다. 이것이 네 첫 번째 죄다. 위제가 나를 변소로 밀어 넣어 욕을 보일 때 너는 말리지 않았으니, 이것이 두 번째 죄다. 더욱이 술에 취한 자들이 나에게 오줌을 눌 때 너는 참고 있었으니, 이것이 세 번째 죄다. 그러나 내게 명주 두루마기를 주었던 것은 너에게 옛정이 남아 있음을 알았기에 너를 놓아주는 것이다.”라고 수가를 돌려 보낸다.
범수는 자신을 도와준 왕계를 하동 태수로 임명하게 했고, 정안평을 추천해 장군으로 삼도록 한다. 또 자신의 가산을 나누어 자신이 곤궁에 처했을 때 도와준 사람들에게 보답한다. 밥 한 끼라도 얻어먹은 일이 있으면 모두 은혜를 갚았고, 눈 한 번 흘긴 원한마저도 꼭 앙갚음을 했다 한다. 범수가 무지막지하게 권력을 휘두르지는 않았다. 은혜를 갚는 것은 좋았으나 굳이 사소한 원한까지 꼭 갚은 것은 그리 넉넉한 성품은 아닌 듯하다. 진나라 소왕은 범수의 사적 원한을 갚아주려고 위제를 쫓는다. 쫓기다 위제는 결국 자결한다. 그만큼 범수에 대한 소왕의 신임도 깊었음을 알 수 있다.
범수가 천거한 왕계와 정안평이 죄를 지어 범수 또한 삼족을 멸하는 죄에 해당되지만 소왕은 처벌하지 않는다. 범수는 그럴수록 불안해진다. 마침 연나라 채택(蔡澤)이란 사람이 소문을 듣고 진나라로 간다. 범수를 만난 채택이 말한다.
“대저 봄·여름·가을·겨울은 자신의 할 일을 마치면 차례로 물러나 다음 계절과 교대합니다.”
사계절을 상앙, 백기, 오기, 대부 종과 같은 사람으로 비유한다. 네 사람이 대업을 성취한 뒤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화를 입은 것이며 그것이 ‘펼 줄만 알고 굽힐 줄은 모르며,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고 되돌아올 줄은 모른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얼굴을 보고, 남을 거울로 삼으면 길흉을 안다.’고 들었으며 『서경』에 ‘성공한 뒤에는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했다는 구절을 내세워 범수를 설득한다.
이에 범수는 병이 위중하다는 핑계를 들어 승상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채택이 승상이 된다. 채택은 진나라에서 10년간 살면서 소왕·효문왕·장양왕을 섬겼고, 마지막에는 시황제를 섬기면서 연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이에 대해 사마천은 ‘범수와 채택에 못지않은 현인들이 많지만 다 뜻을 이룬 것은 아니다. 나그네의 몸으로 진나라에서 공적을 이룬 것은 국력과 관계있는 것이라며 그들을 때를 잘 만났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전국시대 같은 혼란기에 변사들은 넘치고도 넘친다. 누가 더 낫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혼란한 때 세 치 혀로 권력을 오로지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으나, 어찌 말로써만 세상이 좌지우지 되었을까. 거기에는 넓은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견해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더불어 나라간의 심리전도 한몫했을 것이다. 거기에 운까지 더해져야지만 비로소 빛을 보는 게 아니었을까. 범수와 채택이 호평을 받는 것도 진나라 국운이 상승해 패권을 눈앞에 두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그 두 사람은 스스로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알았고, 그것이 국운과도 상통해 그들이 다른 이들에 비해 마지막이 비참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범수와 채택의 업적이 다른 이들에 비해 높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어쩌면 다른 이들이 이미 닦아 놓은 길을 삽질 몇 번으로 마무리를 했을 수도 있다.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어떤 자리에 목숨 걸지 않았다는 것이다. 권력의 맛을 알면 혈육 간에도 피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우리는 훗날의 역사적인 인물에서도 볼 수 있다. 인간이 불행한 것은 어떤 자리에 올라갔을 때, 내려오지 않으려는 아집 때문이다. 내려가는 것 자체를 불행이라 단정 짓고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니 마지막이 비참해진다.
계절이 지나듯 사람의 인생도 꽃이 피었다 지는 것처럼 결국 소멸하기 마련이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사람의 일이듯, 어떤 일이 내게 닥쳐와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스스로 ‘불행’의 늪으로 빠져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