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다른 결혼 이야기

by 김재완

내가 서른 살이 넘어도 미혼을 유지하자, 아버지는 농담처럼 자의인지 타의인지를 물었다. 서른 중반이 되자 아버지의 물음에 웃음기가 빠졌다.

“정 안되면 내가 나서랴? 난 외국 며느리도 상관없다.”

친구분의 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아버지는 함께 목욕탕에 가자고 하셨고, 나는 엄마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도시로 올라가야 했다.


나는 이미 몇 해 전부터 결혼에 어울리는 인간인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어쩌면 우리는 생에 가장 큰 선택을 주식 종목 고르는 데 보다 시간을 덜 투자하는 것이 아닐까? 남들이 다 하니까 때(?)가 되면 조건이 비슷한 누군가와 하는 것이 결혼이라는 것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었다. 그리고 상대방의 조건이나 인성을 고려하기 전에 살펴야 했던 것은 나 자신이다. 고백하자면 당시 나는 결혼에 대한 환상도 없었고, 혼자 사는 삶에 매우 만족한 상태였다. 그래서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지, 세 가지 큰 테마로 나누어 검토하기 시작했다.


<1. 외로움에 대한 내성>

나는 취향이 맞지 않는 오래된 지인보다 취향이 통하는 방금 만난 타인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즐겁다. 학교, 회사, 주변지인이 아니어도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기 쉬운 세상이 되었고, 나는 변화된 세상에 최적화된 인간이었다. 퇴근 후와 주말에는 일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외로움을 느낄 틈도 없이- 다양한 활동으로 일상을 채웠다. 물론 흥겨운 모임 후, 집에서 홀로 느끼는 헛헛함이 있었지만, 그런 것도 극복하지 못하면 평생 엄마랑 살아야 한다.

<2. 살림의 적합도>

서른이 되기도 전에 결혼을 유달리 서두르는 친구에게 이유를 물었다.

“결혼하면 밥도, 청소도 안 해도 되잖아.”

그와 나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그에게 필요했던 건 결혼상대가 아니라 가사 도우미였다. 반면 나는 내 공간을 청소하고 가꾸며,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즐기는 현부양부의 기질을 타고났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들으면 펄쩍 뛸 말이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3 자녀에 대한 욕망>

간접경험을 통해 육아가 주는 기쁨도 크지만, 고통도 따르고, 부모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하고, 상처를 쉽게 받는 -거친 외모를 가진- 여린 심성의 아저씨이다. 나를 닮은 아이를 키우는 일은 행복하기도 하겠지만, 내 아이가 살아가며 받을 상처와 극복해야 할 고난을 지켜볼 자신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시간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시간보다 소중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렇게 자기 객관화 작업이 끝나자 나는 결혼이 필요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고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결혼시장에 나서지 않는다면 나는 좀 더 나은 점수로 남아 있을지도, 아니 점수로 평가받지 않을 수 있었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해외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었고, 외향적인 성격과 유머감각으로 어느 조직에나 잘 융화되었다. 잘 생긴 얼굴도 큰 키도 아니지만, -드라마 주연 할 것도 아니니- 무난한 외모의 소유자인 나를 굳이 점수화한다면 70점은 되지 않을까?

그러나 타인이 설계한 결혼시장에 나간다면 낙제점을 받을 것이다. 물려줄 재산이 전무한 부모님, 명문대학과 몇 광년은 떨어진 학벌, 20년이 넘은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30대 후반의 남성이 나의 현실이었다. 성실히 살아온,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 낸 자랑스러운 나의 인생을 타인의 잣대에 의해 평가받고 싶지 않았다. 이번 생은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나를 위해서 옳은 일이라고 결론 내리자, 슬픔도 자괴감도 없이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럼에도 대외적으로 비혼 선언을 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었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생각은 생각보다 자주 바뀐다.

39살이 되던 해 HJ를 만났고, 땅 위에 용암이 흐르는 것처럼 발바닥에 불이 나게 따라다녔다. HJ를 볼 때마다 심장이 19살처럼 뛰었고, 뜨겁게 사랑했다. 나와 HJ는 그 해가 가기 전에 결혼했다.

양가 부모님은 서로의 자식을 자신의 자식의 구세주로 여겼다. 늦은 결혼으로 얻게 되는 많은 장점 중에 가장 큰 장점이다 신혼여행지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가진 것도 없는 나와 왜 결혼했는지 물었다. HJ는 놀랍게도 나에게서 발전 가능성, 즉 장래성을 봤다고 한다. 29살도 아닌 39살 남자에게서? 당시엔 HJ의 대답이 엉뚱하다고 여겼지만-실제로 HJ가 엉뚱하긴 하지만- 몇 년 후, 나는 HJ의 권유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세 권의 책을 출간하는 작가가 된다.

HJ와 나는 동산과 부동산을 바라보는 관점이 일치한다. 뿐만 아니라 취미와 취향

이 잘 맞아 대부분의 시간을 둘이서 보낸다. 다만 다음 달에 해도 될 일을 이번

달 초에 끝내야 하는 나와, 다음 달에 할 일도 가능하다면 그다음 달로 미루려

는 HJ와의 명백한 성향차이가 있지만, 취향의 일치로 간극을 메우며 대체적으로

안온한 날을 보내고 있다.


결혼 전, 2세에 대한 나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고, HJ도 동의했다. 그러나 생각은 생각보다 자주 바뀐다. HJ는 결혼 후, 아이를 갖기를 원했고, 우리는 의학의 힘을 빌리지 않는 조건으로 원만한 합의에 이르렀다.

그러나 결혼 오 년이 지나도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우리는 아이를 통해 얻게 될 기쁨이 있겠지만,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둘이서 더 돈독해지기로 결의했으며, HJ는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날 한시에 죽자고 도원결의를 요구했다.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고 느낀 내가 대답을 주저하자, HJ는 자신이 먼저 가게 되면 나를 데리러 올 것이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렇게 우리는 -의식주 전반에 걸쳐 큰 이견 없이- 서로의 베프로 결혼 10년째를 이어가고 있다. 때로 자녀가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며 우리의 결정과 생활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걱정을 하는 이들의 태반이 자녀 양육으로 인해 경제적, 심리적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이런 우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TV프로에서 한 김영하 작가의 대답을 인용한다.

자녀가 없는 김영하 작가에게 자녀를 키우는 경험을 하지 않고 어떻게 글을 쓰냐고 다른 작가가 물었다. 그의 대답은 자신은 자녀가 없이 사는 인생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스스로의 선택을 존중하고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걷기를 좋아하는 우리는 평일 늦은 저녁에도 동네를 산책하고, 주말에는 보고 싶은 영화를 시간 제약 없이 보고, 약속이 없는 날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다. 결혼기념일이나 서로의 생일, 또는 원고료가 입금되는 날에는 아이들 학원비 걱정 없이, 한우나 초밥을 먹으며 하루의 사치를 만끽한다. 제주도를 사랑하다 못해 미쳐버린 우리는 일 년에 서너 차례 올레 길을 걷는다.


자녀 양육에 쏟아야 할 에너지와 관심을 서로에게 주며 결혼의 본질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 연예의 종착지가 결혼이 아니어야 하고, 결혼의 결실이 반드시 출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취향이 통하는 성인 둘이 다름은 인정하고, 즐거운 일과 힘겨운 난관을 공유하고 나누는 것이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남들과 조금 다르지만 우리에게 꼭 맞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남들과 조금 다르면 어떤가? 나의 행복은 내가 규정하고 내가 느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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