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지막 계획

by 김재완

기억을 더듬어 보니 돌아가시기 전 해부터,

도시로 올라가는 내 등 뒤에 비슷한 말을 이따금 남기셨다.

“야야, 이제 기력이 다 된 거 같다”

상념이나 걱정을 쌓아두지 않는 분이라 마음이 쓰였다.


이듬해, 첫 책이 출간되었다

“여 봐라! 우리 아들이 판사보다 대단한 작가가 됐다’

동네 입구에 현수막이라도 걸 기세였다.

고향의 서점에 전화로 입고를 확인하고

어머니를 앞세우고 찾아가 재고를 확인하셨다.


“너희에게 해 준 것이 없어 늘 미안했다

이제 내 마지막 소원은 안 아프고 죽는 거다.”

어느 날, 내 눈을 보며 단호하게 이야기하셨다.


오랜만의 가족여행에서 아버지는 좀처럼 웃지 않고 부유했다.

다음 날, 홀로 깨어있던 아버지에게 목욕탕에 가자고 했다.

늦잠을 자는 나를 깨워 목욕탕에 데리고 가던 젊은 아빠는

노쇠한 아버지가 되어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둘이 같은 탕 안에 다시 들어가는 데 꼬박 삼십 년이 걸렸다.

물이 뜨겁지 않나 걱정이 되어 바라보니

아버지는 천장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나는 탕에서 서둘러 나와 습식 사우나로 갔다.

직감했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목욕이란 것을.


미식가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찾은 것은

아들도, 마누라도, 딸도 아닌 딸기였다고 한다.

중환자실은 고사하고 입원조차 하지 않고,

본인의 마지막 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루셨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고 누가 그랬나!


평소 성격처럼 죽음마저 서둘렀다고 어머니는 서럽게 울었다.

어린 시절 상갓집에서 울지 않는 어른들을 의아하게 여기던 나는

이상하리만치 눈물이 나지 않았다.

반드시 겪어야만 이해가 되는 것이 있다.


49제를 마치고 샤워를 하던 도중 늙은 소년은 기어이 울음을 터트렸다..

쏟아지는 물줄기 속에서 너무도 또렷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야야! 아무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네 걱정 다 가지고 떠난다.”

이전 12화얼굴이 빨개지지만 애주가입니다